최창조 《한국의 풍수사상》
민음사 1992(초판 10쇄)
1984년에 초판이 나왔지만 내가 구입한 건 1992년으로 초판 10쇄본이었다. 그때만 해도 지리학 연구에 관심을 갖고 있기도 했지만, 최창조 교수가 서울대 지리교육학과에서 풍수사상 강의를 하는 걸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을 듣고 호기심이 생기기도 했다.
나는 최창조 교수가 나이가 많은 줄 알았었다. 그건 순전히 '풍수'라는 용어 때문이었는데 지난 1월, 최 교수가 세상을 떠났고 향년 74세였다고 해서 '이런! 나보다 나이가 적었잖아...' 했다.
그러다가 《현대문학》에 연재되고 있는 '유종호 에세이'에서 최 교수 이야기를 발견했다(《현대문학》 9월호, 유종호 에세이 「전보와 전근대─세상사의 그제 오늘」).
고인이 된 민음사의 박맹호 사장은 학생 시절 소설을 쓴 이력이 있다. 그래서 인물에 대한 관심이 많고 접촉한 인사들에 관한 화제도 풍부하다. 최창조 교수의 『한국의 풍수사상』이 민음사에서 나왔을 무렵 저자를 자택에 초대하여 저녁 대접을 하였다.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박 사장이 살고 있는 아파트에 도착한 최 교수는 심상치 않은 표정이 되어 무슨 냄새라도 맡듯이 코를 벌름거리더니 고개를 갸우뚱하더라는 것이다. 최 교수는 어째 불길한 기운이 느껴진다며 이사를 가라고 권하였다. 딱히 믿어서가 아니라 살다 보니 더 좋은 데로 옮기고 싶은 생각이 들어 이사를 했다는 것이다. 그 후 삼풍백화점이 붕괴하여 많은 희생자를 냈는데 최 교수를 대접한 아파트 집이 삼풍백화점 바로 근방이었다. 만약 그 집에 눌러 있었으면 백화점에 들렀다가 가족 중의 누가 일을 당했을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여기까지 읽고 나니까 '이것 봐, 풍수사상은 유용한 것이잖아!' 싶었고, 에세이의 전개에 혼이 팔렸다.
최 교수는 또 대학의 지리학과에서 풍수사상을 가르치는 것에 대해 학내에서 문명개화된 요즘 세상에 말이 되느냐며 빈정거리는 소리가 많았다고 했다 한다. 이런 이들일수록 막상 상을 당하거나 이사를 할 경우엔 명당자리를 알아봐 달라고 부탁을 해온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명당자리는 찾는다고 구해지는 것이 아니라 남 해코지 않고 착하고 반듯하게 살면 만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 말은 자기에 관해 흉을 보는 인사에 대한 분풀이로 한 소리가 아니라 풍수사상의 핵심적 전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삼대 적선을 해야 햇볕 잘 드는 남향집을 만난다는 옛말이 있다. 상호 읽기의 매뉴얼에는 상相보다 성聲이요 성보다 심心이라 적혀 있다. 수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이 옛적부터 숭상해 온 오복이다. 중요한 것은 유호덕이다. "마음이 가난한 자 복이 있나니"란 마태복음의 대목을 추가해도 좋다. 이 모두가 착하고 반듯한 심성을 기르라고 가르치고 있다. 못되고 불결한 짓을 직업적, 조직적으로 자행하는 무리들에게 보내는 저주와 악담이 옛사람들이 말하는 '예언'이었다. 모든 것은 착하고 반듯하게 사는 것이 행복임을 설파하고 있다고 나는 스스로에게 해석해주고 있다.
"풍수는 무슨 풍수!" "풍수사상을 강의한다고? 말이 돼?" 하다가 누가 죽으니까 명당을 알아봐 달라고 한 사람이 있었겠지?
최 교수는 돌변하는 그 꼴을 본 것만으로도 분풀이는 되었겠지?
이 책에는 석사·박사 논문 꼭 그대로 '요약 및 결론'이 있다. 꼿꼿했지 싶은 그 학자가 학자답게 관련 문헌을 많이 읽고 분석한 책이기 때문이다.
요약 및 결론 다음에 '풍수적 이상의 땅 明堂·吉地論'이라는 별도의 장을 두었다. 그중에서 뒷부분을 옮겨 쓰면 다음과 같다(옮겨 쓰면서 문단마다 한 줄씩 비우고, 웬만한 한자는 한글로 바꾸고, 몇 가지 한자어에는 한글을 병기했다).
본서의 내용 전반이 결국은 吉地의 모형을 도출해 보고자 한 것인 만큼 또 다른 길지의 설명은 중언부언에 지나지 않을는지도 모른다.
구태여 그 내용을 요약하자면 山水相補한 조화, 균형의 땅에 사람의 마음을 知覺上 포근히 감싸줄 수 있는 有情한 곳, 그러나 속된 기가 흐르지 않는 聖所로 정리되는 듯하다. 매우 어려운 일이기는 하지만 본서의 결론을 대신하여 풍수적 길지를 보다 구체적으로 묘사해 보면 대체로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첫째, 來龍의 脈勢는 北龍의 시조인 崑崙山으로부터 수려·장엄하고 광채나고 둥글며 맑은 생기에 찬 산으로 면면히 이어져 길지 위쪽의 主山에까지 뻗어내려야 한다. 이 連脈은 주위 산들의 호위를 받아야 함은 물론 생동, 변화하면서도 조화, 안정감을 잃어서는 안 된다.
둘째, 局面을 구성하고 있는, 穴을 중심으로 하는 吉地 주변의 산세는 四神砂의 원칙, 즉 玄武垂頭(현무수두), 朱雀翔舞(주작상무), 靑龍蜿蜒(청룡완연), 白虎馴頫(백호순부)의 형세를 갖추어야 한다. 풀이하면 主山은 주인답게 임금답게 위엄을 갖추어야 하나 험악하거나 지나치게 위압적이면 좋지 않고, 案山, 祖山은 신하답게 아내답게, 결코 主山을 압도해서는 아니 되며, 좌우의 靑龍, 白虎는 局面을 감싸 안 듯해야 함은 물론 거역의 자세를 취해서는 안 되고 그렇다고 너무 핍착하여 답답한 감을 주어서도 안된다. 산의 모양은 둥글고, 단정하고, 밝고, 맑고, 유연하고, 중첩하고, 아름답고, 有情하여야 한다.
셋째, 물은 반드시 吉한 방위로부터 흘러들어와 凶한 방위로 나아가야 한다. 물에서 濁臭가 나거나 흐리면 안 되고, 穴前에 공손히 절을 올리듯 悠長하게 지나야 한다. 直急流하며 穴을 향하여 沖射하면 못쓴다. 이때 산은 산대로 물은 물대로 따로 있는 것처럼 보이면 불길한 것이니, 男女相配하고 陰陽相補하는 天理에 따라 山水가 相生해야 된다.
넷째, 穴자리는 陰陽의 조화가 집중적으로 표출된 곳이기 때문에 陰來이면 陽受하고 陽來이면 陰受하는 生氣 聚注한 곳을 정확히 잡아야 한다. 俗의 地에 聖의 所를 정한다는 것으로, 결국 局面의 至高至善의 자리를 뜻하며 경관인식상 중심의 장소가 되니, 이곳이 吉地 중의 吉所가 되는 셈이다. 그러나 산세가 높으면 穴도 높은 곳에 있고, 낮으면 穴 역시 낮은 곳에 있게 되는 만큼 局面 구성이란 면에서는 역시 조화가 바탕이 된다.
다섯째, 座向은 山水로 대표되는 局面 전반이 일정한 형국으로 座定되었을 때 前開後閉, 즉 穴의 앞쪽으로 트이고 穴의 뒤쪽으로 기댈 수 있는 選好性 방위를 선택하면 된다.
끝으로 전체적 局勢는 相克(상극), 散髮(산발), 窮盡(궁진), 跌斷(질단), 無情(무정), 沖射(충사), 逆勢(역세), 悖逆(패역)의 분위기를 일으키지 않고 相補, 相生, 生氣, 變化, 環抱(환포), 有情, 順勢, 聚講(취강) 등 조화와 균형의 이미지를 주어야 한다.
온화 유순하고 부드러우며 결함이 없어 마음을 안정시켜 주는 주위환경, 각이 지지 않는 방위와 유장한 산의 흐름, 찌르듯 달려들지 않는 물길, 그러나 변화무쌍하여 결코 단조롭지 않은 山水의 배열, 이러한 조화를 이룬 자연에 積德한 사람들의 영원한 居所, 이것이 風水的 理想의 땅, 吉地인 것이다.
"이러한 조화를 이룬 자연에 積德한 사람들의 영원한 居所, 이것이 風水的 理想의 땅, 吉地인 것이다."(!)
길지(吉地)란 '풍수적 이상의 땅'이며 '덕을 쌓은(積德) 사람들의 영원한 거소(居所)라고 하지 않는가!
부모형제를 욕되게 하고 인연이 있는 멀고 가까운 사람들을 비굴하게 혹은 비참하게 하는 인간들이 그런 길지를 차지할 리가 있겠는가!
생각하면 뻔한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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