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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해리 클리프 《다정한 물리학》

by 답설재 2024. 9. 19.

해리 클리프 《다정한 물리학》

How To Make An Apple Pie From Scratch

박병철 옮김, 다산사이언스 2022

 

 

 

 

 

 

 

소립자를 연구하는 분야, 즉 입자물리학의 역사를 "무(無)에서 사과파이를 만드는 법"이라는 제목으로 쉽고 재미있게 쓰려고 한 책이다.

이론물리학과 실험물리학을 넘나들며 그동안 이론물리학은 상상의 골짜기를 따라 무한으로 치닫고 있지만 실험물리학은 그 이론(상상)을 실험으로 증명해 내야 하므로 두 분야의 간극이 너무나 크다는 걸 실감하게 한다.

 

아인슈타인과 칼 세이건 등 탁월한 과학자에 대한 무한한 존경과 애정이 느껴지기도 하고, 기라성 같은 학자들의 눈물겨운 혹은 감동적인 '무용담'을 감상하면서 (적절한 비유는 아니지만) "삼국지"나 "수호지"에 등장하는 무수한 영웅·호걸들처럼 걸출한 물리학자들은 끊임없이 명멸하는구나 싶기도 했다.

 

 

19세기 초에는 탄소와 산소로 이루어진 두 종류의 기체가 알려져 있었는데, 하나는 탄화산소carbonic oxide(무색의 독성기체로서, 험프리 데이비가 실험 중에 들이마셨다가 거의 죽을 뻔했음)이고 다른 하나는 탄산carbonic acid(조지프 블랙이 발견한 '고정공기.' 실험실에서 수많은 쥐들이 과학실험이라는 명목하에 이 기체를 마시고 질식했음)이었다. 돌턴은 고정된 양의 탄소와 결합하여 위 두 기체를 만드는 산소의 양을 측정함으로써, 탄산에 함유된 산소가 탄화산소에 함유된 산소보다 두 배 많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여기에 그의 원자 이론을 적용하면 탄화산소는 탄소 원자 한 개와 산소 원자 한 개가 결합한 가장 단순한 화합물이며(현대식 용어로는 일산화탄소이다), 탄산은 탄소 원자 한 개와 산소 원자 두 개가 결합하여 만들어진 화합물이다(현대식 용어로는 이산화탄소이다).(50)

 

일반상대성이론은 아인슈타인이 완성한 최고의 걸작으로, 그 결과가 너무나 심오하여 지금도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블랙홀과 중력파gravitational wave, 그리고 현대우주론은 일반상대성이론이 낳은 결과물이며, 이론 자체가 너무도 아름답고 함축적이어서 적용 분야도 무궁무진하다. 아인슈타인 자신도 "비길 데 없이 아름답다"고 했는데, 이것은 자화자찬이라기보다 본인조차 감탄할 정도로 아름답다는 의미일 것이다. 상대성이론에 용기를 얻은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중력이론(일반상대성이론)과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의 전자기학을 결합한 통일장이론unified theory을 구축하기로 마음먹었다. 일반상대성이론보다 스케일이 훨씬 크면서 한층 더 아름다운 이론을 개발하기로 한 것이다.

(...)

아인슈타인은 결코 실현될 수 없는 꿈을 좇고 있었다. 그는 이 땅에 살다 간 그 어떤 과학자보다 많은 업적을 남겼지만, 생의 마지막 수십 년을 "아름다움으로 자연을 통일한다"는 돈키호테식 발상에 매달리다가(낭비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1955년에 세상을 떠났다.(408~410)

 

 

기억하고 싶은 부분이 많다. 다 열거할 수는 없고, 읽는 사람마다 달라서 그럴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전문적인 분야에 대한 어떤 설명에서는 '전문가가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것이겠지' 혹은 '이론물리학이란 참...' 할 수밖에 없는 부분도 없지 않았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

 

 

운이 좋으면 더욱 먼 과거까지 볼 수도 있다. 앞서 말한 대로 양자중력이론을 검증할 만한 입자충돌기를 만드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나 빅뱅에 아주 가까운 시기에는 우주 자체가 궁극의 입자충돌기처럼 작동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빅뱅의 순간(시간=0인 순간)에서 1조×1조×1조분의 1초까지인데, 이 짧은 시간 동안 우주는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속도로 빠르게 팽창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인플레이션inflation(급속팽창)"이다.

아직은 인플레이션이 정확하게 어떤 과정을 거쳐 일어났는지, 심지어 인플레이션이 정말로 일어났는지조차 확실치 않지만, 이 가설에 의하면 우주는 100억×1조×1조분의 1초 사이에 최소 1조×10조 배로 팽창했다.

(...)

오늘날 관측 가능한 우주에 존재하는 수십억×수십억 개의 은하들은 우주의 첫 순간에 양주 수준에서 뿌려진 "작은 씨앗"이 인플레이션과 함께 자라난 결과이다.

(...)

물론 광학망원경으로 빅뱅 후 1조×1조×1조분의 1초까지 들여다보는 것은 원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나 탐색 수단을 빛에서 중력파로 바꾸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인플레이션이 정말로 일어났다면 시공간이 휘둘리면서 거친 파동이 생성되었을 것이고, 그 여파는 지금도 우주 곳곳에 메아리처럼 퍼져나가고 있을 것이다.(430~431)

 

 

마지막 부분에서 보여준 환원주의(미시세계를 확대하는 방식)의 난관에 대한 니마 아르카미 하메드의 반성도 인상적이었다.

 

"How To Make An Apple Pie From Scratch"(무無에서 사과파이를 만드는 법).

제목이 우리에게는 "다정한 물리학"으로 다가온 것에 대해 여러 번 생각하며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