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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세이 쇼나곤의 글

by 답설재 2024. 8. 25.

 

 

 

 

무라사키 시키부의 일기는 관심이 없지는 않은 여학생의 일기가 우연히 눈에 띈 것 같은 느낌이었다. 거기에 비해 세이 쇼나곤은 에세이스트의 전형을 보는 것 같다. 두 여방의 글을 읽은 느낌을 이야기하라면 그렇더라는 의미다.

 

 

가녀린 풀꽃

─ 풀꽃은

 

패랭이꽃이 당나라의 것은 물론이고 일본 것도 멋있다. 여랑화, 도라지꽃, 나팔꽃, 솔새, 국화, 콩제비꽃.

용담은 가지가 엉키기는 했지만 다른 꽃들이 다 서리를 맞아서 말라버렸을 때 매우 화려한 색깔로 꽃을 피우는 것이 풍취 있다.

또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가마쓰카 꽃이 가련하고 예쁘다. 이름이 별로이기는 해도 한자로 쓸 때 기러기가 찾아오는 꽃(雁來鴻)이라고 하니까 그 나름대로 멋이 느껴진다.

동자꽃. 색깔이 그렇게 짙지 않으나 모양이 등꽃과 비슷하고, 봄과 가을에 모두 핀다니 여기에 들어 둔다.

싸리꽃. 차분한 세련미가 있으며, 가지가 아래로 늘어져 아침 이슬에 젖으면 부드럽게 서로 얽히는 모습이 좋다. 노래에서 수사슴이 좋아해서 찾는 풀이라고 읊은 걸 보니 왠지 각별한 느낌이 든다. 죽도화.

박꽃은 꽃 모양도 나팔꽃과 비슷하고 나팔꽃, 박꽃이라고 나란히 불러 봐도(나팔꽃은 아사가오[朝顔 : 아침 얼굴], 박꽃은 유가오[夕顔 : 저녁 얼굴]) 전혀 이상하지 않은데 열매 모양이 좀 한심하게 생겼다. 왜 그렇게 이상하게 생긴 열매가 열릴까? 적어도 꽈리 정도는 생겼어야지. 그래도 이름은 멋지다. 조팝나무꽃, 갈대꽃.

이 단에 억새를 넣지 않으면 납득하기 어렵다는 사람이 있을 것 같다. 보통 가을 들판이라고 하면 억새가 빽빽이 서 있는 풍경을 떠올리니까 말이다. 억새의 불그스름한 이삭 끝이 아침 안개에 젖어 흔들리는 모습은 정말 멋지다. 하지만 가을이 끝날 무렵이 되면 억새 또한 볼품없어진다. 저마다 개성을 뽐내던 풀꽃들이 사라진 들판에 홀로 남아 하얗게 푸석푸석해진 머리채를 바람에 흔들며 겨울이 끝날 때까지 서 있는 모양은 마치 인간의 일생을 보는 듯하다. 억새가 인간의 삶과 비슷하다고 해서 특별한 감회를 느끼는 사람도 있기는 있을 것이다.

 

 

세이 쇼나곤의 이런 글을 읽으면 곧 유사한 에세이 몇 편은 쓸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갖는다. 그렇지만 막상 덤벼들면 쉽지 않아서 그녀의 글을 읽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세이 쇼나곤의 책(《枕草子 : 베갯머리 서책》)에서는 시라고 해도 좋을 글도 자주 눈에 띈다.

 

 

추억의 단편을 찾아서

─ 지난날이 그리워지는 것

 

4월 마쓰리 때 꺾어 둔 족두리풀 잎사귀. 어린 시절 가지고 놀던 인형. 남보라색 혹은 진보라색 천 조각이 납작해진 채 책 사이에 끼워져 있는 것. 또 비가 와서 무료할 때 문득 발견한 옛날 편지. 작년 여름에 쓰던 색바랜 부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