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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로맹 가리! 그의 죽음

by 답설재 2016. 7. 5.

 아, 담배......

 

 

 

 

1914년 모스크바에서 유태계로 태어나 프랑스인으로 살았다. 법학을 공부했고, 2차 대전 때 로렌 비행중대 대위로 참전해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참전 중에 쓴 첫 소설 『유럽의 교육』으로 1945년 비평가상을 받으며 당장 명성을 떨쳤다. 1956년 『하늘의 뿌리』로 콩쿠르 상을 받았고, 1975년 '에밀 아자르'라는 가명으로 『자기 앞의 생』을 발표하여 다시 한 번 콩쿠르 상을 수상, '문학적 천재'라는 이름을 얻었다.

1980년 12월 2일 파리에서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1

 

권총 자살?

 

 

 

로맹 가리……!

얼른 『내가 사랑했던 개, 유리시즈(원제 : 유리시즈의 눈물)』(로제 그르니에)에서 찾아보았다.2

 

1980년 9월 어느 날, 우리는 가리를 바로 그가 사는 집 건물 앞에서 만났다. 그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말했다.

―이리 와봐, 바보야!

우리는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내가 로맹에게 말했다.

―자네가 율리시즈를 만나는 것도 이게 마지막인 것 같네. 살 날이 얼마 안 남았어.

로맹 가리는 갑자기 격렬한 울음을 터뜨리며 자기 집 처마 밑으로 가서 숨었다.

율리시즈는 9월 23일에 죽었고 가리는 12월 2일에 죽었다.(42~43)

 

 

 

로제 그르니에는 다만 이렇게 썼다. "율리시즈는 9월 23일에 죽었고 가리는 12월 2일에 죽었다."

유리시즈가 너무 늙었다고도 하지 않고, 로맹 가리가 석달 후에 권총으로 자살했다는 것도 쓰지 않았다.

 

그렇게 썼구나, 하며

슬픔을 느꼈다.

'죽음에 이른 율리시즈 이야기를 듣고 울었구나……. 두어 달 후에 있을 자신의 죽음을 생각했겠지……'

 

위의 로맹 가리 이야기는 다음 내용에 이어지고 있다.

 

그 옆집은 로맹 가리의 집이었다. 흔히, 아침 일곱시 첫 외출 때부터 우리는 신문을 사러가거나 맞은편 담뱃가게를 겸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러 가느라고 그 길을 어슬렁대는 그를 만나곤 했다. 가리는 바크 거리가 자신의 고향이라고 했다. 그의 몸 속에는 타타르, 유대인, 러시아, 폴란드 등 너무나 여러 가지 출신의 피가 섞여서 흐르고 있어서 그는 세계의 시민도, 유럽이나 심지어 프랑스 시민도 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는 아주 조그마한 지방 소속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아니 심지어 그것도 안 될 일이었다. 그래서 바크 거리가 그의 고향인 것이었다. "이리 와봐, 바보야!" 하고 그가 율리시즈에게 말을 건네면 개는 곧 허리를 길게 늘여 등을 우묵하게 하고는 그에게 슬슬 다가가서 몸을 문질러댔다.(42)

 

 

 

로맹 가리의 책을 읽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책만 들고 있으면 뭐 하느냐"고 하는데도 읽어야 할 책(읽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책)이 자꾸 늘어나는 건 내가 생각하기에도 기가 막히는 일이다. 일찍부터 열심히 읽었어야 했는데 헛된 짓을 너무 많이 하며 세월만 보냈다. 정신이 좀 드니까 이미 세월은 저만큼 가버린 꼴이다.

 

로제 그르니에의 이 에세이(「바크 거리로의 산책」)에는 로맹가리의 개 이야기도 들어 있다.3

 

라스파이유 대로변의 갈리마르 서점 진열장을 장식하는 얼굴 사진들 속에서 나는 내 이웃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대부분이 건재하고 있어서 나는 실제로 그들을 거리에서 마주친다. 그러나 간혹 사라지고 없는 친구들의 사진도 있다. 로맹 가리의 사진의 경우, 더욱 마음 아픈 것은 서점에 걸린 사진에서 가리가 옆구리에 그의 개 판쵸를 끼고 있다는 점이다. 심각하여 거의 엄격한 느낌까지 주는 시선의 그 개는 마이요르카 섬에 갔다가 자동차에 치여서 죽었다. 그들의 사진이 진열되어 있을 때는 서점을 찾아가는 것이 마치 무슨 성지순례 같아진다.(47)

 

 

 

옮긴이(이재룡)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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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로맹 가리 소설집『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김남주 옮김, 문학동네, 2016, 2판18쇄)의 '날개' 페이지에 소개된 약력을 재구성.
  2. 로제 그르니에, 『내가 사랑했던 개, 율리시즈 Les Larmes D'Ulysse』(김화영 옮김, 현대문학 2002)
  3. 이런 책을 읽지도 않고 개와 함께 지내거나 개 이야기를 하는 건 '좀 그렇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