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이만용 「섣달 그믐날」

by 답설재 2014. 1. 30.

섣달 그믐날    

 

해는 가도 나 죽은 뒤에
다시 또 돌아오고
풍경은 전과 똑같고
초당은 한적하겠지.
남은 자들 속에서는
멋진 사람 찾기 어려워
혼백인들 이 세상을
무엇 하러 그리워하랴.
술꾼의 자취 서린 무덤
그 위로 계절은 지나가고
시인의 명성 남은 옛집
강산만은 지켜주겠지.
낙화유수 인생이라
한평생 한이러니
세상만사 유유하다
상관 않고 버려두리라.



除夕(제석)

 

歲去應吾死後還(세거응오사후환)
風光依舊草堂閒(풍광의구초당한)
典型難覓餘人裏(전형난멱여인리)
魂魄寧思此世間(혼백영사차세간)
酒跡荒墳隨節序(주적황분수절서)
詩名故宅有江山(시명고택유강산)
落花流水平生恨(낙화유수평생한)
一切悠悠摠不關(일절유유총불관)
                                  

              이만용(李晩用·1792~1863)
 

 

19세기 전반의 시인 동번(東樊) 이만용이 한 해가 저물어갈 무렵에 썼다. 다산 정약용의 맏아들이자 절친한 시 벗이었던 정학연(丁學淵)에  게 새해를 앞두고 기념 삼아 준 작품이다. 희한하게 해가 바뀌어도 세상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인생의 무상함을 자신의 죽음이란 설정으로  드러낸다. 내가 세상을 뜨는 청천벽력같은 일이 벌어져도 새해는 다시 오고 내가 없는 세계는 풍경 하나 달라지지 않는다. 세상에 미련이 남  아 있느냐고? 남아있는 사람 중에는 번듯한 자를 찾아보기 힘들기에 넋이라도 이 세상을 다시 찾고 싶지 않다. 삶의 애환이 서려 있는 무덤  과 집과 그 밖의 곳곳에도 무정한 세월과 강산만이 지켜볼 뿐, 남아서 살아가는 그 누가 관심을 기울일까? 이제 세상에 큰 기대 걸지 말자.  인생이란 낙화유수(落花流水), 미련 버리고 되어가는 대로 내버려두자.
                           

                         조선일보, 2013.12.16. 안대회(성균관대 교수·한문학) "가슴으로 읽는 한시"

 


 

 

 

 

세상은 매우 복잡하고 떠들썩한 곳인 줄 알았습니다. 내가 얽혀 있는 일들도 이것저것 여러 가지이고, 하루라도 연락이 되지 않거나 연락이 오고가지 않으면 난처해지는 줄 알았습니다.

 

일전에 연세가 그리 많지도 않은 분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한때 교육부에서 그분의 지시를 받으며 근무한 적도 있었습니다. 다 알지는 못하지만 최근까지 이런저런 활동도 활발하게 하고 있었습니다.

 

죽음을 생각합니다.

"당신은 아직 멀었다. 그 나이에 벌써 죽음을 생각하다니, 당치도 않다!"

그런 충고는 '죽음에 이르러 죽음을 생각해야 한다'는 논리여서 어설프고, 따라서 죽음을 당하는 것은 불행한 일이며, 죽음을 당한 사람에 비해 살아 있는 우리는 참으로 다행한 사람들이라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생각일 것입니다.

이 말조차 반박하고 싶다면, 곧 죽을 것 같아야 할 것입니다.

 

떠난 이의 명복을 빌었습니다.

 

 

 

'詩 읽은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매일매일 김씨」  (0) 2014.03.03
김원길 「취운정 마담에게」Ⅱ  (0) 2014.02.19
최찬상 「반가사유상」  (0) 2014.01.16
「치유」  (0) 2014.01.14
김원길 「마법」  (0) 2014.0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