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매일매일 김씨」

by 답설재 2014. 3. 3.

 

 

 

 

 

 

 

 

 

 

매일매일 김씨

 

 김남호

 

 

  오늘도 출근을 하네 눈도 코도 없는 내가, 눈치도 코치도 없는 내가, 낌새도 모르고 뵈는 것도 없는 내가, 건들건들 출근을 하네 입구도 출구도 없는 직장으로 출근을 하네 퇴근은 없고 출근만 하네

 

  김 과장님 하고 부르면 절대 안 돌아보네 김 선생님 하고 불러도 절대 안 돌아보네 테니스장 옆을 지날 때 어이 김 씨 그 공 좀 던져줘 하면 비로소 돌아보네 저만치 굴러가는 노란 공을 따라 나도 노랗게 굴러가네

 

  그렇게 굴러가다 그만 내가 그 공을 앞질러 가네 공이 어이없어해도 못 본 척하네 어이 김 씨 하며 공이 나를 불러 세워도 절대 안 돌아보네 공이 따라오나 안 따라오나 궁금해도 절대 안 돌아보네 아, 나는 언제나 안 돌아보려고 애쓰는 사람! 그만두려고 애쓰는 사람!

 

  오늘도 그만두기 위해 출근을 하네 그만둘 직장으로 그만둘 사람들이 출근을 하네 매일매일.

 

 

 

  ――――――――――――――――――――

  김남호 1961년 경남 하동 출생. 2005년 『시작』 등단. 시집 『링 위의 돼지』 『고래의 편두통』.

 

 

 

 

 

 

 

 

 

  웃으면 안 될 것 같은데

  "나도 노랗게 굴러가네"

  "공이 어이없어해도 못 본 척하네"

  일단 웃고,

  ('남이 보면 나도 다른 한 명의 김씨일 텐데…… 아니, 내가 봐도 김씨가 분명하지. 그렇지만 우스운 걸 어쩌랴.')

 

  정식으로 다시 읽기로 합니다.

  일부러 '좀 무거운 마음을 만들어 읽어볼까?' 생각합니다.

 

  이 시인이, 나중에는, 가령 정말로 출근을 영 하지 않게 되면 또 어떤 시를 쓸 것인지도 궁금합니다.

 

 

  『現代文學』 2013년 12월호, 134~13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