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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김승희 「나에겐 나만 남았네―사랑의 북쪽」

by 답설재 2014. 3. 10.

나에겐 나만 남았네
               ―사랑의 북쪽
 

                                             김승희


어느덧
나에겐 나만 남았네
나에겐 나만 남고 아무도 없네
나에겐 나만 남고
당신에겐 당신만 남은
그런 날
당신은 당신이 되고
나는 내가 되고
서로서로 무죄일 것 같지만
그렇게 남으면 나는 나도 아니고
당신은 당신도 아니고
당신도 나도 아무도 아니고
단어들이 먼저 부서지네
문장이 사라지고
폐가 찢어지고
사전이 날아가고
책이 산화하고
진흙 속에 고동치는 가슴소리뿐
진흙 속에 눈을 감고 중얼거리네
나에겐 나만 남았네
진흙만 남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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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희  1952년 광주 출생. 1973년 『경향신문』 등단. 시집 『태양미사』『왼손을 위한 협주곡『미완성을 위한 연가 『달걀 속의 생』『어떻게 밖으로 나갈까』『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싸움』『빗자루를 타고 달리는 웃음』『냄비는 둥등』『희망이 외롭다』 등. <소월시문학상> <올해의 예술상> 등 수상.


 

 

 


그런 날이 이어집니다.

단어들이 무의미해지는 날.

폐가 찢어지는 날.  사전이 날아가 버리는 날.  책이 필요없게 되는 날.  드디어 흙으로 돌아가 그곳에서 중얼거리게 되는 날. 나만 남았다고. 아무도 없다고…………

 

사람들을 만나면 그렇지 않은 척합니다. 당신에겐 당신만 남고, 나에겐 나만 남았다는 걸 감추고 지냅니다. 언제까지 그렇게 지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현대문학" 2013년 11월호에서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