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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최하림 「구석방」

by 답설재 2014. 3. 16.

산 아래 이 층 목조 건물은 긴 의자와 십여 개 유리창이 일제히 남으로 열려 있어 아침이면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밤에는 별들이 내려왔다 개들이 컹컹컹컹 짖어댔다 나는 고해성사실과도 같은 이 층 구석방으로 들어가 옷자락을 여미고 숨었다 구석방은 어두웠다 건축가 김수 선생님은 그날 지은 죄를 고하고 사함을 받으라고 구석방을 마련한 모양이지만 나는 고해할 줄 몰랐다 고해를 해본 적이 없었다 나는 죄의 대야에 두 발을 담그고 이따금씩 잠을 잤다 잠이 들면 새들이 소리 없이 언덕을 넘어가고 언덕 아래로는 밤 열차가 덜커덩덜커덩 쇠바퀴를 굴리며 지나갔다 간간이 기적을 울리며 가기도 했다 나는 자다 말고 벌떡벌떡 일어나 층계를 타고 내려갔다 냉장고 문을 열었다 우유를 꺼내 마셨다 토마토도 몇 개 베어 먹었다 밤은 아직도 멀었는지 창밖으로는 새까맣게 어둠이 흘러갔고 나는 의자에 주저앉았다 의자는 딱딱했다 의자가 밤 속으로 흘러갔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의자는 계속 흘러가고 있었다

 

 

 

 

 

 

 

아마도 단어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에, 어떤 깊은 뜻이 스며 있겠지, 온갖 생각을 다 동원하며 읽었습니다. 그렇지만 발견해낼 수가 없었습니다. 심지어 시에 등장하는 인물을 인터넷에서 찾아보기까지 했습니다.

'아니야, 뭔가 있을 거야. 내가 정신을 차리지 못해서 허탕을 치고 있는 게 분명해.'

 

그러다가 어제저녁에 다시 읽으며 그런 욕심을 버리기로 했고, 그러자 시 속에 등장하는 온갖 것들이 제자리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언젠가 내가 그 구석방에 있었던 듯한 기시감(?) 같은 것도 느꼈습니다.

 

 

산 아래 이 층 목조 건물은 긴 의자와 십여 개 유리창이 일제히 남으로 열려 있어 아침이면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밤에는 별들이 내려왔다 개들이 컹컹컹컹 짖어댔다 나는 고해성사실과도 같은 이 층 구석방으로 들어가 옷자락을 여미고 숨었다 구석방은 어두웠다 건축가 김수 선생님은 그날 지은 죄를 고하고 사함을 받으라고 구석방을 마련한 모양이지만 나는 고해할 줄 몰랐다 고해를 해본 적이 없었다 나는 죄의 대야에 두 발을 담그고 이따금씩 잠을 잤다 잠이 들면 새들이 소리 없이 언덕을 넘어가고 언덕 아래로는 밤 열차가 덜커덩덜커덩 쇠바퀴를 굴리며 지나갔다 간간이 기적을 울리며 가기도 했다 나는 자다 말고 벌떡벌떡 일어나 층계를 타고 내려갔다 냉장고 문을 열었다 우유를 꺼내 마셨다 토마토도 몇 개 베어 먹었다 밤은 아직도 멀었는지 창밖으로는 새까맣게 어둠이 흘러갔고 나는 의자에 주저앉았다 의자는 딱딱했다 의자가 밤 속으로 흘러갔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의자는 계속 흘러가고 있었다

 

 

이 시를 『최하림 시 전집』(문학과지성사, 2010)에서 발견하고 소개한 이 원 시인은 이렇게 썼습니다(『현대문학』 2013. 12, '누군가의 시 한 편).

 

 

아무리 극단적이라고 해도 한쪽만 있으면 생겨나지 않는다. 구석방은 몰아붙인 외부가 있으며 정신없이 도망간 제 발이 있을 때 생겨난다. 도망도 자발自發이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은 없다. 여기가 마지막 공간이다, 라는 외침이자 자발적 투항.

죄의 대야에 두 발을 담근 '나'는 고해할 줄 모르는데 도망 온 두 발은 고해를 안다. 그러므로 이따금 든 잠에서도 소리 없는 새들의 기척에 뒤척인다. 의자에 주저앉은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딱딱한 의자라는 것. 햇빛과 별과 개 짖는 일상은 밤 속으로 흘러간다는 것을.

한 해가 가고 또 한 해가 온다. 다음 날 그 다음 날이 계속 흘러간다는 뜻이다. 다음 날에는 구석방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