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백무산 「국수 먹는 법」

by 답설재 2014. 4. 8.

국수 먹는 법

 

백무산

 

국수 먹을 때 나도 모르는 버릇꼭 그렇게 먹더라는 말 듣는 내 버릇아버지 짐자전거 연장통 위에 앉아먼짓길 따라나선 왁자한 장거리 국수집빈 공터에 가마솥 내건 차일 친 그늘긴 의자에 둘러앉은 아버지들마차꾼들 지게꾼들 약초 장수 놋그릇 장수싸리채 장수 삼밧줄 장수 패랭이 쓴 재주꾼들허기 다 채울 수 없는 한 그릇 국수 받아놓고젓가락 걸치고 국물 먼저 쭉 바닥까지 비우고는메레치궁물 좀 더 주쇼, 반쯤 채운 목에 헛트림하고 나서굵은 손마디에 부러질 듯 휘어지던 대젓가락천천히 놀리던 손톱 문드러진 손가락들남매인지 부부인지 팔다 만 검정비누 든 봇짐 벗어두고둘이서 한 그릇 시켜놓고 멸치국물 거듭청해 마시고 나서 천천히 먹던 국수지친 다리 애간장에 거미줄처럼 휑한 허기숭숭 뚫린 허기 다 메울 수 없었던 한 그릇 국수국수를 받을 땐 그 허기 추모라도 하듯두 손 받쳐 들고 후루루 마시는 내 버릇먹어도 먹어도 어딘가 허기지던 국수국수를 받을 때면 저리도록 그리운 아버지

 

 

 

――――――――――――――――――――――――――――――――――――――――――――――――

백무산 1955년 경북 영천 출생. 1984년 『민중시』 등단. 시집 『만국의 노동자여』 『인간의 시간』 『길은 광야의 것이다』 『初心』 『거대한 일상』 『그대 없이 저녁은 오고』 『그 모든 가장자리』 등. <아산문학상> <만해문학상> <대산문학상> 등 수상.

 

 

   어느 블로그에서 잔치국수를 소재로 철학적인 사유思惟를 적은 <삶의 레시피>라는 제목으로 글을 보고, 아주 단순하게 잔치국수 이야기를 댓글로 단 적이 있습니다. 그건, 잔치국수에 관한 한 사진만 봐도 그냥 넘어가지 못하고 군침을 삼키는 사정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썼습니다.

 

  지금도 있는지 잘 모르지만, 몇 년 전 서해안고속도로 상행 발안 휴게소의 잔치국수는 따뜻하고, 쫄깃하고, 잡맛도 없고, 아주 일품이어서 '언제 또 서해안고속도로를 통행하는 볼일이 생기나?' 했을 정도였습니다.

  저 사진을 보니까 당장 그 생각이 났습니다.

  그걸 먹고 가자고 하면, 동행하는 사람이 "겨우 그걸……' 했지만, 저는 언제나 그걸 먹어야 제대로 다녀온 것 같았습니다.

 

  사실은 장만하기도 '그렇고' 때로는 먹기도 '그런' 한식…… 잔치국수는 '그렇지' 않습니다.(이건 평생 음식 마련하는 데는 젬병으로 살아온 처지에서는 할 소리가 아니긴 하지만.)

  후루룩!

  국물부터! 아, 그 국물 맛!

  국수 가락, 퍼지지 않은 그 가락의 맛!

  그리고는 남은 국물의 맛! 양념이 그대로 남은 그 국물 맛!

  언제나 아주 뜨겁진 않고, 그렇다고 아직 아주 식지는 않은, 후루룩 먹고 훌훌 일어서기 좋은 그 잔치국수……

  간편하고도 맛있는……

 

  저는 한정식 같이 살기가 싫었던 것 같습니다. 고르라면 잔치국수처럼 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잔치국수처럼 산 것이 분명하다면 이번에는 한정식처럼 살고 싶을지는 모르지만……

 

 

  그 잔치국수를 지금은 거의 찾지 않고 지내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한 마디로 밀가루 음식은 가능한 한 못 본 척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식사를 한 뒤인데도 다른 이들을 따라 '까짓거' 한 그릇 먹어 주어도 그리 부담스럽지는 않은 잔치국수. 식사를 하기 전에 한 그릇 먹었다 해서 식사를 하지 못할 정도로 부담스럽지는 않은 잔치국수.

 

   아, 그리운 잔치국수…… 詩만 읽어도 군침이 도는, 그리움이 일렁이는 그 잔치국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