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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최찬상 「반가사유상」

by 답설재 2014. 1. 16.

 

 

 

반가사유상


최찬상


면벽한 자세만
철로 남기고
그는 어디 가고 없다

어떤 것은 자세만으로도
생각이므로
그는 그 안에 있어도 없어도 그만이겠다

한 자세로
녹이 슬었으므로
천 갈래 만 갈래로 흘러내린 생각이
이제, 어디 가닿는 데가 없어도
반짝이겠다

 

 

"설명이 필요없다"는 말이 있다.

지난 2일 저녁, 신문에서 이 시를 보며 그 말을 실감하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세 줄로 붙여 쓸 수도 있다.

 

면벽한 자세만 철로 남기고 그는 어디 가고 없다.

어떤 것은 자세만으로도 생각이므로 그는 그 안에 있어도 없어도 그만이겠다.

한 자세로 녹이 슬었으므로 천 갈래 만 갈래로 흘러내린 생각이 이제, 어디 가닿는 데가 없어도 반짝이겠다.

 

또 이렇게 다 붙여 놓을 수도 있다.

 

면벽한 자세만 철로 남기고 그는 어디 가고 없다. 어떤 것은 자세만으로도 생각이므로 그는 그 안에 있어도 없어도 그만이겠다. 한 자세로 녹이 슬었으므로 천 갈래 만 갈래로 흘러내린 생각이 이제, 어디 가닿는 데가 없어도 반짝이겠다.

 

이렇게 붙여 놓았다고 해서 "시 같지 않다"는 말을 들을 리는 없을 것 같다.

그러면 行과 聯을 갈라놓았다고 詩가 되는 건 아니고,

한참 들여다보며 몇 번을 더듬어 읽고, 나의 경험들, 내 힘으로 가능한 짐작, 유추, 가상, 가정……

그런 것들 동원해도 알쏭달쏭한 것들을 굳이 詩라고 해야 할 이유도 없을 것 같았다. 또 그렇게 해서 비위를 맞춰줘 봐야 별 수도 없을 것이다.

 

 

 

 

유치한 생각이겠지.

그렇지만 이제 반가사유상 사진이나 글을 보게 되면 '내가 지금 실제로 반가사유상 앞에 있다'는 생각을 해보기로 하고, 반가사유상 앞에 서게 되면 이 詩를 떠올리며 바라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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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2014 신춘문예 시 당선작. 시인은 1960년 경북 칠곡 출생,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심사위원은 황동규, 정호승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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