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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김원길 「마법」

by 답설재 2014. 1. 7.

시든 소설이든, 수필, 희곡, 평론이든 우리가 좋아하는 작품을 쓴 작가에 대해, 그의 생애와 업적, 사상 등을 알아보는 까닭이 있습니다. 작품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석사학위나 박사학위 논문, 혹은 저널에 실을 논문을 제출하기 위해서, 문학작품으로서의 평론을 쓰려고, 단순한 호기심으로……

어쨌든 작가를 알면 작품을 더 재미있게, 깊이 있게, 폭넓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니까 46년 전, 지금의 저 안동 지례예술촌장 김원길 시인은 어느 여자고등학교 국어 선생이었습니다. 내가 그 교육대학의 예술제를 만들고 그 프로그램 속에 "문학의 밤" 행사와 "시화전"도 넣겠다고 하자, 대뜸 두 가지 행사에 다 참여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해 어느 안개낀 가을날 밤, 이 시 「마법」도 감상한 것 같은데, 그때 이 시가 탄생한 경위까지 들었는지는 생각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시인의 모습만 그려봐도 '음…… 마법이라, 그런 시를 좋아하는 시인이지.' 하게 되는데, 이번에 아래와 같은 해설을 보여주어 다시 이 시를 읽게 되었습니다.

 

 

두 편의 유명한 서양 동화가 있다. 하나는 17세기 말 샤를 페로가 쓴 "잠자는 숲 속의 미녀"로서 마법에 걸린 공주가 백 년 동안 잠을 자게 되어 있는데 이 잠을 깨울 수 있는 것은 왕자의 입맞춤뿐이란다. 또 하나는 18세기에 보몽 부인이 쓴 "미녀와 야수"인데 이번엔 왕자가 마법에 걸려 사자의 얼굴을 하고 빈 성에 숨어 산다. 이 허울을 벗자면 여자의 진정한 사랑을 얻지 않으면 안 된단다. 보몽 부인이 먼저 쓰인 페로의 작품에 맞춰서 자기 작품을 쓴 것은 아니지만 나는 각각 다른 시대에 쓰인 이 두 동화를 읽고 재미있는 상상을 해본 것이다. 만약 잠든 공주와 야수가 된 왕자가 서로를 구할 사람들이라면 이 마법은 풀릴 수가 없지 않는가? 서로가 상대의 마법을 푸는 열쇠인데 둘 다 마법에 걸려 서로 만날 수가 없는 처지이니 이건 기막힌 비극 아닌가! 그런 가정으로 쓴 시가 내 시 「마법」이다.

 

 

그리운 율리아나
어이 할 꺼나
나는 몹쓸 저주에 걸려
여자의 사랑만이 사슬을 푼다는
별난 마법에 걸려
괴물의 몸으로 빈 성에 숨어 사는
이야기 속 딱한 왕자


율리아나, 그대 또한
멀고 외져 발길 없는 숲속 궁전
백년을 옴짝 않고 누워 잠자니
내 입김 고운 뺨에 닿기만 해도
저승같이 깊은 잠 깨어날 텐데
어이 할 꺼나, 이 마법
어이 할 꺼나.
  
                                     (「마법」, 전문)

 

 

 

여기 율리아나는 가톨릭 세례명이기도한데 시의 소재가 유럽 것이어서 서양 여자 이름을 갖다 쓴 것이다.

상황 설정이 극단적이었지만 우리에게도 남북분단으로 못 만나는 연인, 다른 사람과 결혼하여 남남이 된 연인, 어른들의 반대로 만날 수 없는 청춘들이 있다.

 

 

물은
거기서
이리 흐르고

여기 떠서
그리로 진다.


바람이 오가고
구름 영嶺 넘어
가고 오누나만
 
오고 갈 줄 모르는 사람
 
그대는
거기서
꽃 피는 것 보고

여기서
잎 지는 것 본다.


세월은 흐르고
머리카락
한 올
두 올
희어 가는데


가고 올 줄
모르는
사람.


                                      (「별후」 전문)

 

 

오늘 또 구정을 앞두고 남북 이산가족 상봉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이 시는 이산가족에 한정해 쓴 것은 아니지만 이럴 때마다 이 시가 떠오른다.

 

 

 

 

 

「강변이야기」(2013.12.20)에서

 

 

 

멋진 음악을 들으며 이 사진을 보시려면 이곳으로 가십시오~

http://blog.daum.net/kkjriver/84986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