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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김신용 「자라─외편」

by 답설재 2014. 1. 2.

자 라 ─외편

 

 

김신용

 

 

연못이 반짝, 눈을 뜬다

 

자라 한 마리가 물의 부력에 전신을 맡긴 채, 떠오른다

 

꼭 물의 눈 같다

 

수면 아래, 감은 물의 눈꺼풀 속에 깊숙이 잠겨 있다가

 

고요한 한낮, 물의 눈꺼풀을 열며 떠오르는 것

 

1, 2, 3, 4…… 마치 파문처럼 번져나가는 무수한 숫자들의 고리를 끊고

 

마지막 0이 하나 만들어지는 것

 

0이 만들어져, 그 숫자들을 물의 집으로 데려가는 것

 

그리고 그 0에서 숫자 1만을 꺼내, 발을 저어

 

다시 가만히 물 아래로 잠기어가는, 저 물의 눈망울

 

잠깐 동안 저 물의 눈에 비친 것이 선한 구름이었으면 좋겠다

 

나뭇잎을 흔드는, 바람의 얼굴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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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용  1945년 부산 출생. 1988년 『현대시사상』 등단. 시집 『버려진 사람들』『개 같은 날들의 기록』『몽유 속을 걷다』『환상통』『도장골시편』 등. <천상병시상> <노작문학상> 등 수상.

 

 

 

『현대문학』 2013년 7월호

 

 

 

 

 

시인이 연못을 들여다보고 있겠지요.

할 만한 일이 아무것도 없었던 어린 시절, 자주 그렇게 들여다보던 연못이 있었습니다.

 

세상은 복잡하고, 얽혀 있고, 어디선가 왁자지껄 떠들어대기도 하고, 숨가쁘게 돌아가고 하는 것 같지만, 나와는 거의 무관한 일들이라는 것만 깨닫고, 인정하고, 그렇게 앉아 있으면, 더구나 이런 겨울날 저녁, 세상은 얼마나 고요한지 모릅니다. 여러 말 할 것도 없이, 내가 찾지 않으면 나를 찾아올 사람은 세상에 단 한 명도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은 시인이 보여주는 저 물의 고요와 다르지 않다고 하거나, 저 시인이 세상은 그 물의 눈망울 같다고 한 것이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눈여겨 볼 것은, 시인의 저 눈입니다.

 

잠깐 동안 저 물의 눈에 비친 것이 선한 구름이었으면 좋겠다

나뭇잎을 흔드는, 바람의 얼굴이었으면 좋겠다

 

내가 여기에 와서 이렇게 '잠깐' 있는 것이 저 '선한 구름' 같다면, 저 '바람의 얼굴' 같을 수 있다면, 무얼 더 바라겠습니까? 더구나 이 고요한, '물의 눈' 같은 세상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