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2월 둘째 주 어느 날, 블로그 『강변 이야기』의 작품
싸락눈 내리어 눈썹 때리니
싸락눈 내리어 눈썹 때리니
그 암무당 손때 묻은 징채 보는 것 같군.
그 징과 징채 들고 가던 아홉 살 아이……
암무당의 개와 함께 누릉지에 취직했던
눈썹만이 역력하던 그 하인 아이
보는 것 같군. 보는 것 같군.
내가 삼백 원짜리 시간 강사에도 목이 쉬어
인제는 작파할까 망설이고 있는 날에
싸락눈 내리어 눈썹 때리니…….
『徐廷柱詩選』민음사 세계시인선 ⑫, 1974, 111.
설중여인도(雪中女人圖)
김원길
저 눈 좀 보아,
저기 자욱하게 쏟아지는 눈송이 좀 보아
얼어 붙은 나룻가의 눈 쓴 소나무와
높이 솟은 미루나무 늘어선 길을
눈 속에 가고 있는 여잘 좀 보아.
내리는 눈발 속에 소복(素服)한 여인의
뺨이 보이네, 산도화(山桃花) 빛.
입김이 보이네, 물안개 빛.
산꿩도 깃을 오무린 이 설한(雪寒) 속
미룻가지만 바람에 휩쓸리는데
가슴엔 자그마한 보따리 하나,
두 눈엔 아롱진 자수정(紫水晶) 눈물.
설레이는 눈발
눈발 속을
쓸리듯 가고 있는 옥색 고무신...
누구나 도저히 잊지 못할 시가 있을 것입니다.
어느 겨울, 숨이 막히는 것 같아서 몰래 한숨이나 쉬어보려고, 그 산골짜기를 찾아가, 혼자서 툇마루에 앉아 있을 때였는데, 차가운 저녁나절, 도저히 그 바람을 뚫고 걸어갈 마음을 먹지 못하였고,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고, 서정주 시인의 저 시가 떠올랐습니다.
이후로 겨울만 오면 생각났습니다.
이제 또 겨울이 오고, 나는 또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남루한 길이, 징과 징채 들고 가는 아홉 살 저 아이와 뭐가 다른가 싶은 것입니다.
그 아홉 살 아이가 걸어가는 길이 바로 저 자욱한 길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저 길이구나!'
그러면 생각나는 시가 그리운 김원길 시인의 「설중여인도(雪中女人圖)」입니다.
"저 눈 좀 보아,
저기 자욱하게 쏟아지는 눈송이 좀 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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