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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싸락눈 내리어 눈썹 때리니」&「설중여인도(雪中女人圖)」

by 답설재 2013. 12. 1.

  재작년 2월 둘째 주 어느 날, 블로그 『강변 이야기』의 작품

 

 

 

싸락눈 내리어 눈썹 때리니

 

싸락눈 내리어 눈썹 때리니

그 암무당 손때 묻은 징채 보는 것 같군.

그 징과 징채 들고 가던 아홉 살 아이……

암무당의 개와 함께 누릉지에 취직했던

눈썹만이 역력하던 그 하인 아이

보는 것 같군. 보는 것 같군.

내가 삼백 원짜리 시간 강사에도 목이 쉬어

인제는 작파할까 망설이고 있는 날에

싸락눈 내리어 눈썹 때리니…….

 

 

『徐廷柱詩選』민음사 세계시인선 ⑫, 1974, 111.

 

 

설중여인도(雪中女人圖)

 

김원길

 

저 눈 좀 보아,

저기 자욱하게 쏟아지는 눈송이 좀 보아

얼어 붙은 나룻가의 눈 쓴 소나무와

높이 솟은 미루나무 늘어선 길을

눈 속에 가고 있는 여잘 좀 보아.

 

내리는 눈발 속에 소복(素服)한 여인의

뺨이 보이네, 산도화(山桃花) 빛.

입김이 보이네, 물안개 빛.

 

산꿩도 깃을 오무린 이 설한(雪寒) 속

미룻가지만 바람에 휩쓸리는데

가슴엔 자그마한 보따리 하나,

두 눈엔 아롱진 자수정(紫水晶) 눈물.

 

설레이는 눈발

눈발 속을

쓸리듯 가고 있는 옥색 고무신...

 

 

 

누구나 도저히 잊지 못할 시가 있을 것입니다.

어느 겨울, 숨이 막히는 것 같아서 몰래 한숨이나 쉬어보려고, 그 산골짜기를 찾아가, 혼자서 툇마루에 앉아 있을 때였는데, 차가운 저녁나절, 도저히 그 바람을 뚫고 걸어갈 마음을 먹지 못하였고,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고, 서정주 시인의 저 시가 떠올랐습니다.

이후로 겨울만 오면 생각났습니다.

이제 또 겨울이 오고, 나는 또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남루한 길이, 징과 징채 들고 가는 아홉 살 저 아이와 뭐가 다른가 싶은 것입니다.

그 아홉 살 아이가 걸어가는 길이 바로 저 자욱한 길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저 길이구나!'

그러면 생각나는 시가 그리운 김원길 시인의 「설중여인도(雪中女人圖)」입니다.

"저 눈 좀 보아,

저기 자욱하게 쏟아지는 눈송이 좀 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