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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2호선」 그리고 「교대역에서」

by 답설재 2013. 11. 11.

 

 

 

 

 

 

 

 

 

                                       2호선

 

                                                                           이시영

 

 

가난한 사람들이 머리에 가득 쌓인 눈발을 털며 오르는

지하철 2호선은 젖은 어깨들로 늘 붐비다

사당 낙성대 봉천 신림 신대방 대림 신도림 문래

다시 한 바퀴 내부순환선을 돌아

사당 낙성대 봉천 신림

가난한 사람들이 식식거리며 콧김을 뿜으며 내리는

지하철 2호선은 더운 발자국들로 늘 붐비다

 

 

 

――――――――――――――――――――

이시영  1949년 전남 구례 출생. 1969년 『중앙일보』 등단. 시집 『만월』 『무늬』 『사이』 『조용한 푸른 하늘』 『은빛 호각』 『바다 호수』 『우리의 죽은 자들을 위해』 『경찰은 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등. <정지용문학상> <지훈상> <백석문학상>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등 수상.

 

 


 

 

 

  『현대문학』 2013년 4월호에 있습니다.

  지난봄 그 4월에는 「교대역에서」라는 시도 봤습니다.

  교대역은 3호선도 지나가는 환승역인데도 "교대역" 하면 2호선이 생각납니다.

 

 

 



 

교대역에서

 

-김광규(1941~ )

 

 

3호선 교대역에서 2호선 전철로

갈아타려면 환승객들 북적대는 지하

통행로와 가파른 계단을 한참

오르내려야 한다 바로 그 와중에

그와 마주쳤다 반세기 만이었다

머리만 세었을 뿐 얼굴은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서로 바쁜 길이라 잠깐

악수만 나누고 헤어졌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다시는 만날 수

없었다 그와 나는 모두

서울에 살고 있지만



 


 

 

 

  곽효환 시인은 이 시를 다음과 같이 소개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사람을 만나면 하는 인사가 있다. 언제 한번 보자고 또는 언제 식사 한번 하자고 으레 건네는 말의 진의는 무엇일까. 3호선과 2호선 전철이 교차하는 교대역, 사람들로 북적대는 통로에서 만난 사람이 있다. 그것도 반세기 만에. 가장 가슴이 뜨거웠을 십대 후반 혹은 스물 초반에 함께 웃고 울었을 얼굴. 하얗게 센 머리만 빼고는 그대로인 그와의 이 기적 같은 만남은 당연히 부둥켜안고 요란을 피우다 어디 가까운 대폿집에라도 가서 이야기꽃을 피우는 자리로 이어졌어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악수만 나누고 헤어졌단다. 서로 얼마나 바쁜 길이었길래. 오늘 우리의 모습이 이럴 것이다. 잠시 반가운 표정으로 악수를 나누고 언제 다시 보자며 총총히 등을 돌리는. 그것이 마지막일지도, 다시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르는데. 작은 약속도 잊지 않고 먼저 전화를 걸어 만남을 잡는 섬세하고 자상한 김광규 시인의 촌철살인에 어느새 속물이 된 내가 더없이 부끄럽다. 어디론가 숨고 싶은 아침이다. (곽효환·시인·대산문화재단 사무국장)

                                                      [중앙일보] 2013.04.15. 28면, [시가 있는 아침]




 

 

  2호선은 왠지 좀 우중충한 것 같고, 그래서인지 사람들도 그렇게 보이는 것 같아서, 그냥두어도 우중충하게 보일 내가 더 우중충해 보이는 게 싫어서 '웬만하면 타지 말아야지' 했는데, 도대체 내가 어디에 기준을 두고 그런 생각했는지……

  그렇지만, 그 교대역에서 나도 반세기 만에 누굴 만나면 어떻게 해야 좋을지는 모르겠습니다.

 

  ― 얼른 외면하고 지나가면서 지난날들을 기억해보기나 하고, 사는 건 다 그렇고 그런 거라고 생각해버린다?

  ― 그 자리에서 회포를 풀기는 좀 어색하니까 일단 거처나 알아보고 헤어진다?

  ― 저 시에서처럼 악수나 하고 헤어진다? 그 대신 만면에 웃음을 띠고 큰소리로 안부를 물으며 반가움을 가장한다?

  ― 무조건 어디 가까운 술집으로 가자고 적극적으로 나선다?

  ― 적극적으로? 그렇지만 그렇게 해서 술집으로 가면 무슨 얘기를 얼마나 하게 될는지, 차라리 헤어지고 마는 게 더 나을 일을 공연히 어색하게 되는 거나 아닐지……

  ― 그것도 아니라면, 그럼 어떻게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