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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저 빨간 곶」

by 답설재 2013. 10. 10.

저 빨간 곶

 

 

문인수

 

 

친정 곳 통영 유자도에 에구구 홀로 산다.

나는 이제 그만 떠나야 하고

엄마는 오늘도 무릎 짚고 무릎 짚어 허리 버티는 독보다.

그렇게 끝끝내 삽짝까지 걸어 나온, 오랜 삽짝이다.

거기 못 박히려는 듯 한 번 곧게 몸 일으켰다, 곧 다시 꼬부라져

어서 가라고 가라고

배 뜰 시간 다 됐다고 손 흔들고 손 흔든다.

조그만 만灣이 여러 구비, 새삼 여러 구비 깊이 파고들어 또 돌아본 즉

곶串에, 저 옛집에 걸린 바다가 지금 더 많이 부푼다. 뜰엔

해당화가 참 예뻤다. 어서 가라고 가라고

내 눈에서 번지는 저녁노을,

빨간 슬레이트 지붕이 섬을 다 물들인다.

 

 

 

――――――――――――――――――――――――――――――

문인수  1945년 경북 성주 출생. 1985년 『심상』 등단. 시집 『뿔』 『홰치는 산』 『동강의 높은 새』 『쉬!』 『배꼽』 『적막 소리』 『그립다는 말의 긴 팔』 등. <김달진문학상> <노작문학상> <미당문학상> 등 수상.

 

 

                                                                                         『현대문학』 2013년 3월호, 204~205쪽.

 

 

 

1 

 

엄마에게서 나는 늘 떠났다.

엄마는 늘 가라고, 어서 가라고만 했다. 그러면서 마음으로는 얼마나 오라고, 어서 좀 오라고 하며 살았을까……

 

삽짝은 그 엄마의 그림자다. 엄마에겐 그 삽짝이 내 그림자였을까. 엄마는 그 삽짝을 몇 번쯤 바라보았을까……

 

 

2

 

내 "엄마"는 그럴 정신도 없이 살았습니다. 그렇게 훌훌히 저승으로 갔습니다. 그러니까 다른 "엄마"에 비해 그리 오랫동안 그 빈 삽짝을 지켜보지도 못했습니다.

 

자식들은 자신이 부모에게 잘한 일만 기억하고 싶겠지요? 그래야 견디기가 쉬울 것입니다. 그리하여 잘못한 일은 잊어버리고,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기억 속에서 어거지로 만들기까지 하고, 쬐끔 잘한 일은 부풀리고 또 부풀려서 드디어 거룩한 '신화(神話)'가 되게 하고, 마침내 이 땅에 스스로 효자가 아닌 자식이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버트런드 러셀은 그런 행위를 '기억의 장난'이라고 이름붙였습니다.* 기억의 장난! 그처럼 발버둥을 치지만, 그 '기억의 장난'만 재판에 회부한다 해도 염라국에서는 옥사를 끝없이 증축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이래저래 지옥으로 내쫓길 것이 분명합니다. 어떻게 그 짤막한 시간에 잘못한 일들조차 두고두고 생각나기 때문입니다.

 

그 짧은 세월을 아득해하면서 그 엄마에게 늘 떠나겠다는 말만 한 것입니다.

 

 

 

* 버트런드 러셀 지음, 장성주 옮김, 『인기 없는 에세이-지적 쓰레기들의 간략한 계보』(함께읽는책, 2013), 77쪽. '... 나는 어제 날씨가 맑았다고 거의 확신할 수 있지만, 단언하지는 못한다. 가끔은 기억이 묘한 장난을 치기도 하기 때문이다. 오래된 기억일수록 더욱 의심스럽게 마련이다. 특히 1815년 워털루 전투 당시 자신이 전장에 있었다고 기억한 조지 4세처럼 거짓 기억을 만들어 낼 강력한 감정적 이유가 있는 사람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과학 법칙이 거의 전적으로 확실한가, 아니면 아주 미약한 개연성만을 지니는가 하는 문제는 증거의 상태에 따라 좌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