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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김혜순 「눈물 한 방울」

by 답설재 2013. 9. 5.

 

 

 

눈물 한 방울

 

김 혜 순

 

 

그가 핀셋으로 눈물 한 방울을 집어 올린다. 내 방이 들려 올라간다. 물론 내 얼굴도 들려 올라간다. 가만히 무릎을 세우고 앉아 있으면 귓구멍 속으로 물이 한참 흘러들던 방을 그가 양손으로 들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그가 방을 대물렌즈 위에 올려놓는다. 내 방보다 큰 눈이 나를 내려다본다. 대안렌즈로 보면 만화경 속 같을까. 그가 방을 이리저리 굴려본다. 훅훅 불어보기도 한다. 그의 입김이 닿을 때마다 터뜨려지기 쉬운 방이 마구 흔들린다. 집채보다 큰 눈이 방을 에워싸고 있다. 깜박이는 하늘이 다가든 것만 같다. 그가 렌즈의 배수를 올린다. 난파선 같은 방 속에 얼음처럼 찬 태양이 떠오르려는 것처럼, 한 줄기 빛이 들어온다. 장롱 밑에 떼지어 숨겨놓은 알들을 들킨다. 해초들이 풀어진다. 눈물 한 방울 속 가득 들어찬, 몸 속에서 올라온 플랑크톤들도 들킨다. 그가 잠수부처럼 눈물 한 방울 속을 헤집는다. 마개가 빠진 것처럼 머릿속에서 소용돌이가 일어난다. 한밤중 일어나 앉아 내가 불러낸 그가 나를 마구 휘젓는다. 물로 지은 방이 드디어 참지 못하고 터진다. 눈물 한 방울 얼굴을 타고 내려가 번진다. 내 어깨를 흔드는 파도가 이 어둔 방을 거진 다 갉아 먹는다. 저 멀리 먼동이 터오는 창밖에 점처럼 작은 사람이 개를 끌고 지나간다.

 

 

 

김행숙 시인이, 김혜순 시인의 시집 『불쌍한 사랑기계』(문학과지성사, 1997)에서 뽑아 『현대문학』 2012년 8월호 「누군가의 시 한 편」(260~261쪽)에서 소개했습니다.

 

 

이 아름다운 시에 붙인 김행숙 시인의 설명이 있었는데, 그 해설은 옮겨 놓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시인에게는 너무나 미안하고 멋쩍은 일이지만 혼자 생각해 보기로 했습니다.

 

사랑을 곁에 두지 못하고, 그 사랑이 너무나 어려워서 눈물이 흐릅니다. 그 한 방울 한 방울에 온 세상이 다 들어 있습니다. 그 눈물은 사랑 때문이므로, 그로부터 흘러오는 강물이 눈물이 되어 흐릅니다. 그가 지켜보고 있을까요? 그가 이 방을 그의 대물렌즈 위에 올려놓은 것일까요? 그가 그의 대안렌즈로 내려다보면, 이 방이, 내가 앉아서 울고 있는 이 방이 만화경 속 같을까요? 그가 이 방을 이리저리 굴려보고 있습니다. 이 방은 그의 장난감일까요? 그가 만화경 속 같은 이 방을 훅훅 불어보기도 합니다. 그의 입김이 닿을 때마다 비누방울처럼 터뜨려지기 쉬운 방이 마구 흔들립니다. 집채보다 큰 눈이 방을 에워싸고 있습니다. 깜박이는 하늘이 다가든 것만 같습니다. 그가 렌즈의 배수를 올립니다……

 

난파선 같은 세상…… 아, 이 흔들림, 이 혼란은 생각의 깊은 골짜기를 지나서 한밤중에 일어난 일입니다. 이 밤에 생각해낸 그가, 그를 향한 이 사랑으로 마구 흔들어댄 것입니다. 이 방은 그를 향한 사랑으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방안 가득 눈물이 흐르고, 세상은 파도처럼 흔들립니다.

 

사랑을 잃고 흐느끼는 이가 떠오릅니다. 가을저녁이어서인지 우리가 세상을 사랑했다면, 세상 또한 우리에게 그런 사랑일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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