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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파블로 네루다 『질문의 책』

by 답설재 2013. 6. 2.

파블로 네루다 시집 『질문의 책』

정현종 옮김, 문학동네, 2013

 

 

 

 

 

 

 

왜 거대한 비행기들은

자기네 아이들과 함께 날아다니지 않지? (시 1의 4연 중 1연)

 

사람들이 네루다처럼 "왜 거대한 비행기들은 / 자기네 아이들과 함께 날아다니지 않지?" 하고 하늘을 올려다보게 되면 좋을 것이다.

전에『현대문학』에 연재될 때 눈여겨 본 시도 있다.

 

사랑, 그와 그녀의 사랑,

그게 가버렸다면, 그것들은 어디로 갔지? (22의 4연 중 1연)

 

누구한테 물어볼 수 있지 내가

이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게 하려고 왔는지? (31의 4연 중 1연)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

아직 내 속에 있을까 아니면 사라졌을까? (44의 5연 중 1연)

 

 

 

난해한 시, 해설을 읽어보면 오히려 더 어려워지는 시,

'아, 시는 어려운 게 확실하구나! 이제 시로써 위로를 받으려는 시도는 무모하고 정신 나간 짓이구나' 싶어지는 시가 너무나 많다.

시인이 나 같은 사람을 위로해 주려고 시를 쓸 만큼 할 일이 없는 건 아니라 해도……

 

그렇게 어려운 시,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를 시들을 보며 '이런 시를 다른 나라 말로 번역하는 게 가능한 것일까, 번역이란 것이 "귀신 곡할 요술"이라 하더라도 실현 가능한 것일까?' 내가 걱정할 일이 아니긴 해도 그런 걱정을 할 때가 있다.

이런 생각도 한다.

'이 시인의 정신세계는 심오할 것이다. 차라리 나는 지금 제정신인가를 물어야 할까? 시 한 편 읽을 줄 모르는…… 이 상태가 병적인 것은 아닐까?'

 

다행한 경우가 있다. 어쩌다가 한두 편 선명하게 다가오는 시가 있다.

『질문의 책』도 그렇다. 더구나 먼 나라에서 와 우리말로 번역된 시집에서 읽히는 시가 눈에 띈다는 사실은 놀랍고 신기하다!

내가 아무리 바보라고 해도 그렇지, 싶어지는 것이다.

바보에게도 읽히는 시! 그것도 먼 나라에서 와 번역된 시!

 

 

 

사실은 나 같은 사람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듯한, 혹은 동정하는 듯한 비판도 얼마든지 있다. 내가 보기로는 그런 비판을 할 수 있는 기회만 있으면, 해야 하는 자리만 있으면 꼭 나오는 비판이다.

 

"이해해버리면 그만인 시가 너무 많고 이해도 안 가고 느낌도 없는(내 감각이 시들어버린 데도 원인이 있겠지만) 시도 아주 많다. 그 재료가 언어이니 이해의 회로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불리함을 딛고 그 영역을 넘어서야 삶의 현장성이 있고 또 그것의 추체험의 의무가 있는 시가 된다는 단순한 사실을 환기해볼 것을 전체적인 소감으로 피력한다."1

 

"젊은 시인들의 영향 때문인지는 몰라도 '어렵게 하기'가 우리 시단에 전반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점도 눈에 띄었다. 오랫동안 시의 미덕으로 여겨져온 서정적인 미학이나 선명한 이미지나 리얼리티가 관록과 타성적인 태도에서 나오는 것은 아닌지 묻는 반성적 태도가 그와 같은 변화 속에서 읽혀졌다."2

 

"꽈배기 문제란 말이 있다. 알쏭달쏭하고 대중없이 작위적이고 부질없이 혼란스럽고 심란하고 곤혹스러운 국어 시험문제를 말하는 것 같다. 그 평행현상이라고나 할까, 꽤배기 스타일의 혈육 같은 줄글이 도처에서 시라는 근사한 이름으로 창궐하고 있다."3

 

"좀 읽어봐! 이런 글 좀 읽어봐!"

내가 이렇게 말할 때 그 난해한 시를 쓰는 사람의 표정을 보고 싶다. 그러면 그는 이렇게 대답할까?

"그래? 좋아! 나도 다 생각이 있어! 점점 더 어려운 시를 써주지."

"아무것도 모르는 작자들이……"

"누군 난해한 시를 쓰고 싶어서 쓰는 줄 아나? 밥 먹고 할 일이 없어서 그러는 줄 아나?"

"두고 봐! 우리처럼 난해한 시를 써야 시인 취급을 받는 날이 올걸?"

"……"

 

 

 

왜 나뭇잎들은 떨어질 때까지

가지에서 머뭇거릴까? (마지막 편(74)의 6연 중 1연).

 

파블로 네루다가 1973년 9월 세상을 떠나기 몇 달 전에 이 시집이 마무리되었다고 한다.

 

"사랑, 그와 그녀의 사랑,

그게 가버렸다면, 그것들은 어디로 갔지?"

 

"누구한테 물어볼 수 있지 내가

이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게 하려고 왔는지?"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

아직 내 속에 있을까 아니면 사라졌을까?"

 

"왜 나뭇잎들은 떨어질 때까지

가지에서 머뭇거릴까?"

 

어린아이 같은 생각의 시가 왜 쓸쓸한가?

나도 지금 머뭇거리고 있는 것일까……

 

 

 

◇ 사람들이 파블로 네루다의 시를 좋아하는 까닭을 생각해 보고, 그의 작품을 예로 들어 설명해 보자.

◇ 시집 『질문의 책』에 실린 74편의 시 중에서 마음에 드는 시 한 편을 골라 왜 그 시가 마음에 들었는지 이야기해 보자.

이런 공부를 하는 학교교육과정을 만들어도 좋은 세상에서, 교사가 시집 『질문의 책』을 교재로 선정하여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재량을 가지게 되면 좋겠다.

 

 

 

201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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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석남, 「서쪽 무늬 읽기와 촛대에 꽂는 해의 체험」(『현대문학』 2012년 6월호, 194쪽, 2012 신인추천작 시부문 심사평) 중에서.
2. 김영승·김기택, 「다양성의 활기와 풍요로움」(제57회 현대문학상 시부문 예심 심사평, 『현대문학』 2011년 12월호, 226~227) 중에서.

3. 유종호, 「시행과 행간의 매력」(제57회 현대문학상 시부문 본심 심사평, 『현대문학』 2011년 12월호, 228~229쪽)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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