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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김원길 「상모재」

by 답설재 2013. 9. 15.

교육대학을 다닐 땐 곤궁하고, 재미도 없고, 걸핏하면 쓸쓸해서 그 2년이 참 길었습니다.

그나마 당시 안동 어느 여자고등학교 국어 선생 김원길 시인을 만나는 날에는 제법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김원길 시인이 『월간문학』(「취운정 마담에게」, 『시문학』(「꽃그늘에서」 등)으로 등단하고, 고향 지례가 임하댐 건설로 수몰되자 선대 유산인 고건축물 10동을 마을 뒷산으로 옮겨 지어 문예창작마을 <지례예술촌>을 운영하고 있다는 등 그간의 동정은 간간히 들었지만, 모른 척 지냈는데, 얼마 전에, 그러니까 45년만에 덜컥 연락을 해왔습니다.

"만나러 가겠다!"

 

그 시인이 「상모재」라는 시가 들어 있는 글 「상모재」를 보내주며 심심하거든 한번 읽어보라고 했습니다. 심심하거든…… 

 

 

 

 

 

상모재

 

                                                                                                                                            김 원 길

 

 

서울서 심야버스로 안동에 내리면 밤 두 시, 다시 내 차를 몰고 지례로 가야한다. 산길로 접어들자 눈 내린 길이 미끄러워 박실서부터 걸어야한다. 유난히 눈이 많던 지난해 겨울, 나는 두번이나 20 리 상모재를 밤중에 넘어 가며 시 한 수를 얻게 되었다. 상모재란 박실서 지례로 넘어가는 해발 600미터 가까운 신설도로인데 워낙 급커브가 많아서 내가 붙인 재의 이름이다.

 

 

달 아래

눈 위에

그림자 하나

 

밤길

혼자서

재 넘어 간다.

 

열두 발

풀어진

상모같은 길에

 

언듯

사라졌다

다시 보이는

 

아득히

흔들리며

가는 점 하나.

 

                                 ('상모재' 전문)

 

 

읊어보니 목월(木月)의 '나그네' 가락이다.  게다가 '나그네'가 여름 나그네라면 이건 겨울 나그네 아닌가.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 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나그네' 전문)

 

 

강나루의 나그네가 들길을 간다면 상모재의 나그네는 산길을 간다. 밀밭길의 나그네가 낮의 나그네라면 달아래 나그네는 밤의 나그네구나. 목월의 나그네는 달처럼 가지만 나의 나그네는 달 아래 점이 되어 사라진다. 끝없이 유랑하는 목월의 나그네는 집시를 닮았고 밤중에 산을 넘는 사내는 은자(隱者)를 닮았다.

이렇게 멀고 높은 하늘에서 지상을 내려다보고 읊은 시로는 당나라의 유자후(柳子厚)의 ‘강설(江雪)’을 빼놓을 수 없겠다.

 

 

눈 덮인 산들엔 새 한 마리 날지 않고(千山鳥飛絶)

만 갈래 길 위엔 사람 하나 얼씬 않네.(萬徑人蹤滅)

한 척 배 위에 도롱이 걸친 노인이(孤舟蓑笠翁)

혼자 추운 강에 눈송이를 낚고 있네.(獨釣寒江雪)

 

 

나는 이 아름다운 시를 동양적 한적미(閒寂美)의 최고봉이라 여기는데 그렇지 않다는 이견이 있었다. 말인 즉 이 어부가 도롱이를 걸치고 있는 걸로 보아 눈이 그친 뒤 맑은 하늘 아래 낚시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눈이 펑펑 오고 있는데 낚시터에 나앉아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눈이 내리는데도 추운 낚시터에 나앉아 고기를 잡으려고 안달하는 사람이니 집착과 시름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아닐 거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시는 시인이 한 동안 가 있던 귀양지에서 비감에 젖어서 썼거나 어쩌면 부인과 다툰 후에 분통을 삭이지 못한 가운데 쓴, 그래서 탈속한 경지의 글이 아니라는 것이다. 참 대단한 평론가시다.

 

왜 꼭 어부를 시인과 동일 인물로 보려 하는가?  이건 시인의 자화상이 아니라 시로 그린 산수화인 것이다.  여기 삿갓에 도롱이를 쓴 것은 현재의 폭설때문이 아니라 앞으로의 눈발이나 시나브로 내리는 눈발에 대비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리고 햇볕 아래서도 그걸 벗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 그걸 쓰고 있어야  젖은 것들이 마를 것이 아닌가! 영국 신사는 비가 올때 우산을 쓰지만 우산을 말릴 때도 우산을 써야한다. 그리고 이 낚시꾼이 질풍노도의 젊은이라면 몰라도 엄연히 노인(翁)이라고 되어 있지 않는가! 무릇 노인은 눈을 맞으면서까지 고기에 미치는 철딱서니는 아니다. 이 그림은 천지가 온통 눈에 덮여 지상의 모든 움직임이 멎어 버린 눈 갠 한낮의 정적을 효과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강가에 낚시하는 노인을 보일듯 말듯 앉혀 놓은 것이다. 너무 멀어서 그가 잡은 하얗게 반짝이는 물고기가 고긴지 눈송인지 분간이 안되는 거리이다. 이야말로 동양적 한적미의 진수가 아닌가!

 

이런 자문자답을 해가며 넘어가는 상모재는 달이 있어 망정이지 어느 모롱이에선 어둡고 무섭고 어느 모롱이에선 바람 불고 추웠다. 월백설백천지백(月白雪白天地白) / 산심야심객수심(山深野深客愁深)의 실감나는 체험이었다.

나는 졸음에 겨운 산길을 가며, 또 한 수 빠뜨릴 수 없는 명편, 로버트 프로스트의 ‘눈 오는 저녁 숲 가에 서서’의 끝 부분을 떠올리고 있었다.

 

 

나는 지켜야 할 약속이 있어

잠들기 전 몇 마일을 가야만 한다.

잠들기 전 몇 마일을 가야만 한다.

 

 

 

 

을왕리의 겨울, 안동이 아닌 인천, 그것도 2012년 겨울 어느 날의 그 바닷가

 

 

                                                                        

「취운정 마담에게」https://blueletter01.tistory.com/7638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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