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작별(作別)

모두 떠났다

by 답설재 2015. 1. 4.

 

 

 

 

    Ⅰ

 

 

그 식당은 저 산 오른쪽 기슭에 있습니다.

자동차 전용도로로 춘천이나 양평 쪽으로 가면서 먼빛으로 한적한 산비탈의 그 식당 건물을 바라본 사람들은 누가 찾아갈까 싶었겠지만,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점심, 저녁 시간에 걸쳐 종일 사람들이 몰려들어 빈자리를 찾기가 어려울 때도 있었습니다.

 

식당에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계산대 옆에 커피 자판기, 원두커피 포트가 준비되어 있고, 맞은편 주방 앞에서는 분명히 안주인의 친정어머니일 듯한 할머니가 단정한 모습으로 마늘을 장만하고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안주인의 다소곳한 품위를 그대로 물려준 어머니답게 더러 화장실을 갈 때가 아니면 여름에나 겨울에나 늘 그 자리를 지켰습니다.

할머니의 성품은 마늘조각에 그대로 나타나서 어느 조각이나 '무조건' 같은 크기였고 자른 모양도 한결같이 단정했습니다.

 

 

    Ⅱ

 

 

그러던 그 할머니가 처음에는 화장실을 자주 드나들게 되었는가 싶었습니다. 잠시도 자리를 지키지 못하겠다는 듯 연방 일어섰는데, 단 5분도 되지 않아서 또 일어섰고, 그럴 때마다 안주인은 조용하고도 걱정스러운 눈길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할머니는 화장실을 들락거리는 것이 아니라는 걸 곧 알 수 있었습니다. 매번 아무 볼 일도 없이 출입구 쪽의 화장실 입구까지 갔다가 되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다음 주말에 갔을 때, 아무래도 치매를 앓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식당 분위기는 어수선해졌습니다. 안주인조차 별 볼일도 없이 출입구 쪽과 주방 쪽을 괜히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았고, 종업원 아주머니 한 명은 화장실에서 손도 씻지 않고 나오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 것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그 길로 다시는 그 식당을 찾지 않게 되었습니다. 구태여 "그 식당에는 가지 말자"는 말을 하지 않아도, 그런 느낌 때문에 게름직한 느낌을 갖는 것은 누구라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Ⅲ

 

 

그 식당에 발을 들여놓지 않게 된 것은 그럭저럭 2년이 넘어서 이제 잊어버리고 만 것 같았는데, 불현듯 오늘 그 식당이 생각났고 한번 다시 찾아가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건물은 그대로였고, 식당도 그대로 있었습니다.

식당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구조는 그때 그대로지만 분위기는 확 바뀌었다는 걸 당장 알 수 있었습니다. 식탁들도 바뀌었고, 벽화나 메뉴판, 차임벨 같은 것들도 다 바뀌었고, 안주인의 행색도 달라졌고, 게다가 생기가 도는 표정에 친절함이 피어오르는 것 같았고, 무엇보다도 화장실에서 손도 씻지 않고 나오는 것 같은 그 종업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보이지 않게 된 사람이 한 명 더 있었습니다.

그 할머니…… 다소곳하게 앉아서 가끔 손님들을 바라보기는 하지만, 손님들이 큰 소리로 무어라고 하고, 설사 종업원들이 다 바빠서 아무도 그 손님의 요청을 알아듣지 못하는 일이 있더라도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변함없이 마늘이나 까고 있던 그 할머니…… 안주인이 저 할머니의 딸이 틀림없다는 것을 누구라도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쏙 빼닮았던 그 할머니……

 

 

    Ⅳ

 

 

깨끗해진 그 식당에서 전보다 정갈하게 느껴지는 음식을 맛있게 먹으면서도, 혹 그 할머니가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느낌으로 그 할머니가 앉아 있어야 당연하던 주방 앞을 자꾸 바라보았습니다.

긴 생각을 할 것까지는 없을 것입니다. 저세상으로 떠났거나 요양원으로 갔을 것이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싶진 않지만, 그 식당의 분위기가 좋아진 것이나 화장실에서 손도 씻지 않고 나오던 그 종업원이 사라진 것이나 식당 내부의 하나하나의 변화가 모두 할머니가 어디로 사라진 것과 깊은 관계가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습니다.

 

생각이라는 것은, 한 자리에서도 얼마든지 가난하거나 풍부해질 수 있고, 얼마든지 멀리까지 가거나 깊어질 수도 있고, 얼마든지 착해지기도 하고 음흉해지거나 음산해질 수도 있는 것이어서 누가 가르쳐주지 않는 것까지도 알아챌 수 있는 것 같았습니다.

 

 

    Ⅴ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떠날 사람은 떠나는구나. 떠나야하는구나…….'

 

남아 있는 사람이 떠나는 사람에게 그렇게 말할 것까지는 없을 것입니다.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고 말이 없어도 좋을 것입니다.

다만, 떠나게 된 입장이라면 순리에 따르는 것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뿐입니다.

 

'떠날 사람은 모두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