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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작별(作別)

지나가 버린 여름에게(장 프랑소아 모리스 "모나코")

by 답설재 2014. 8. 9.

 

 

 

어제 저녁에 바라본 달은, 가을저녁이 완연했습니다.

스산한 하루였습니다.

 

한가하다면 걸어가도 좋을 곳을 가자고 해서였는지 택시기사가 물었습니다. "덥지요?"

글쎄, 덥지 않은 건 아니지만 산들바람이 부는 걸 보고서도 "예, 덥습니다."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러자 내가 무안해할까봐 그러는지 이번에는 "어제가 입추였다"면서 24절기를 만들어낸 조상들의 슬기를 기리기 시작했습니다.

 

끝났다면 섭섭하지 않을 리 없습니다. 이런 허전한 일이 어디 또 있겠습니까?

그렇게 도도하게 왔으면, 바로 하루 전까지도 맹위를 떨쳐놓고,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단 하룻만에 이렇게 시들해질 수가 있습니까?

나는 정말이지, 해마다 여름이 언제까지라고 정해 놓는 건 아니라 해도, 앞으로도 이어질 줄 알았습니다.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질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왠지 며칠 전부터 모리스(Jean Francois Maurice)가 신비한 나라, 낭만의 도시국가 모나코의 뜨거웠던 해변, 그곳에서의 사랑을 읊은 노래, 시작 부분의 파도 소리, 풀벌레 소리가 자꾸 들려오는 느낌을 가졌습니다. 이렇게 심한 이명(耳鳴)을 건너서 그 파도 소리와 풀벌레 소리가 점점 가까이 다가왔고, 하릴없이 지나가버린 나의 그 여름들이 떠오르는 것이었습니다.

 

  여기 가보더라도 부디 다시 돌아오길...https://youtu.be/AfFb42-MqF8

 

 

오후에는 틈을 내어 역(驛)에 나갔었습니다.

사람들이 오고가는 모습은 여전했습니다. 그렇지만 그곳에는 말을 건넬 만한 아무도 없었고,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었는데도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내게는 이미 지나가버린 사람들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내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내 곁을 지나간 것입니다. 이미 나에겐 아무런 정열이 남아 있지 않고, 나는 계절이 바뀐 줄도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 사실을 노래하거나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걸 말로써는 설명할 수 없으므로 그냥 눈물겨워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기억할 준비도 덜한 것 같은데, 이미 끝나버린 나의 여름……

모든 것은 그렇게 지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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