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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박형준「홍시」, 그리고 죽음에 대하여

by 답설재 2012. 7. 11.

 

 

 

 

고상한 척해 봐도 별 수가 없는 게 인간입니다. 돈이 많아 봐야 별 수 없고, 친구가 많아 봐야 별 수 없고, 자녀가 많고 다 잘 되었다 해도 별 수 없는 게 인간, 죽음입니다.

그것이 생각나게 하는 시 한 편을 봤습니다.

 

 

 

 

아내는, 내가 병원에 드나들게 됐는데도 별 기색이 없었습니다. 저러다가 말겠지, 그렇게 생각했거나 뭐 별 일이야 있을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며칠간 병실에 들어앉아서 별별 검사를 다 하고 있는 걸 좀 못마땅해하기도 했는데, 큰 병원으로 옮겨 가슴을 열고 중환자실에 들어가자 드디어 본색을 드러냈습니다.

 

일반병실에 있다가 수술을 하거나 하여 중환자실에 들어가게 되면 당연히 그 일반병실은 비워야 합니다. 아내는 그걸 모르고 '이제 드디어 죽는구나!' 했답니다. 그러니 그 병실을 비우며, 둘이서 먹으려고 준비했다가 남은 과일이나 음료수를 옆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나오는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중환자실에서 나는 피를 자꾸 쏟았습니다. 가족 면회시간에 아내가 처음 들어왔을 때, 그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많이 기다렸지?"

검사만 했으면 20분 이내에 끝난다는데, 가슴을 열고 1시간 이상이 걸렸으니까요. 우리 맘대로 하는 건 아니지만, 둘이서는 20분 정도 걸려서 나오기로 무언(無言)으로 약속했던 일이었으니까요.

 

그리고 덧붙였습니다. "많이 아프더라."

그건 가슴속에 무언가 약물을 넣었을 때를 이야기한 것입니다. 안 아프면 0, 많이 아프면 10, 보통이면 5로 말하라고 했고, 그간 일반병실에서 의사나 간호사의 물음에 몇 차례 대답한 경험도 있었지만, 그때 그 수술대 위에 누워서는 '조금 더 있으면 이거보다 더 아플 수도 있겠지?' '그렇다면 이걸 7이라고 할까 8이라고 할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점점 더 쓰라려서 얼른 "많이 아픕니다." 그렇게 뭉뚱거려 대답하고는 정신을 잃었습니다. 그걸 아내에게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많이 아프더라."

"아픈 게 10정도 되더라." 우리끼리 그런 식으로 과학적으로 표현하면 뭘 하겠습니까? 

 

 

 

 

그에게 그렇게 단 두 마디 그 말을 하고나자마자 내 피는 다시 콸콸 쏟아졌습니다. 아내는 '긴급히' 쫓겨났고, 의료진 네 명이 사지를 내리눌러 억지로 지혈을 시켰습니다. 그때도 나는 오랫동안 정신을 잃었습니다.

 

그러는 몇 시간에 아내는 거의 초죽음이 되었답니다. 문병 온 사람들이 우선 그를 찾았겠지요. 그는 제정신이 아니었고, 피부가 새파랗게 되었고, 손을 잡아보니 싸늘해졌더랍니다. 사람은 살아서 묻는 말에 대답도 하고 서성거리기도 하는데 피가 통하지 않으니까 그렇게 된 것입니다. 아픈 저보다 더 아파하니까 그렇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 생각을 하면, 나는 그에게, 지금까지 함께 살아온 40여 년은 이미 지나간 세월이니 이제와서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남은 시간, 그러니까 그 시간이 잠시라 하더라도, 그 시간만큼이라도 "잘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나는 아직까지 살아가는 일에 서툴러서 쩔쩔 매고 있으니…………

 

덧붙이면, 나는 그 중환자실에 머문 시간이 남보다 훨씬 길었습니다. 늦게 들어간 다른 환자들이 다 나오는데, 남들은 길어야 하룻밤을 자고 나오는데, 사흘을 그곳에서 지냈습니다. 그동안 아내는 중환자실 복도에서만 지냈습니다. 그 복도는 소파조차 없는 곳입니다.

그도 어리숙하지 않거나 상황판단을 객관적으로 하는 사람이라면, 그 시간에 뭘 사먹기도 하고, 그 넓은 병원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가 어디서 눈도 좀 붙이고, 바람도 좀 쐬고, 할 만한 일, 구경할 만한 일도 더러 있을 텐데, '저 사람이 혹 나를 찾으면 어떻게 하나?' 오직 그 생각만으로 그곳에서 그렇게 서성거렸습니다.

 

그걸 두고 "사람이 왜 그리 어리숙하냐?" "사람이 왜 객관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느냐?"고 할 수는 없습니다. 도저히 그렇게 말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119를 불러 두 번째, 세 번째로 실려가게 되자 그제야 그도 상황을 제대로 판단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후로는 내가 좀 힘들어하면 물끄러미 바라보며 측은한 표정으로 그냥 이렇게 묻습니다. 요즘도 그렇게 합니다.

"그렇게 해서 살겠어요?"

 

그렇다면, 죽음은 언제나 내 곁을 서성거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며 지내는 것이 속 편할 것입니다.

언젠가 내가 정말로 힘들 때도 그는 그렇게 물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서 살겠어요?"

 

그러면 나는 이렇게 대답해야 하겠지요.

"죽겠어."

 

그날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냥 그렇게 영영 헤어질 수밖에 없습니까?

 

 

 

홍 시

 

 

뒤뜰에서 홍시가

철퍼덕철퍼덕 떨어지는 밤

아버지 돌아가신 자리에

아버지처럼 누워서 듣는다

 

얇은 벽 너머

줄 사람도 없는디

왜 자꾸 떨어진데여

힘없는 어머니 음성

 

아버지처럼

거그, 하고 불러본다

죽겄어 묻는 어머니 말에

음 나 죽겄어

고개를 끄덕이던

 

임종 가까운데

자식 오지 않고

뻣뻣한 사지

이불 밖으로 나온 손

가슴에 얹어주던 어머니

 

큰방에 누워

뒤뜰 홍시처럼 가슴에

둥글게 주먹 말아 쥐고

마을 가로질러 가는

기차 소리 듣는다

 

 

 

 

『현대문학』 2011년 9월호 「누군가의 시 한 편」에서 진은영 시인이 소개한, 박형준 시집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문학과지성사, 2011)에서 뽑은 시.

 

내 아내는 감을 참 좋아합니다. 나는 그래서 서울역이나 용산역에 내리면 청도감 가게에서 무언가를 사들고 들어갑니다. 내 아내는 이 블로그의 독자가 아니어서 다행이지 그런 줄 알면 내가 거기서 그런 걸 사가지고 들어가는 걸 꺼림칙하고 기분나빠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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