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는
간단없이 밀려드는 파도는
해안에 부딪혀 스러짐이 좋은 것이다.
아무 미련 없이
산산히 무너져 제자리로 돌아가는
최후가 좋은 것이다.
파도는
해안에 부딪혀 흰 포말로 돌아감이 좋은 것이다.
그를 위해 소중히 지켜온
자신의 지닌 모든 것들을 후회 없이 갖다 바치는
그 최선이 좋은 것이다.
파도는
해안에 부딪혀 고고하게 부르짖는 외침이 좋은 것이다.
오랜 세월 가슴에 품었던 한마디 말을
확실히 고백할 수 있는 그 결단의 순간이 좋은 것이다.
아, 간단없이 밀려드는 파도는
거친 대양을 넘어서, 사나운 해협을 넘어서
드디어
해안에 도달하는 그 행적이 좋은 것이다.
스러져 수평으로 돌아가는
그 한생이 좋은 것이다.
―오세영(1942~ )
유치환의 「파도」는 애절합니다. 그 시를 그대로 옮기고 싶은 간절함을 지녔던 가슴들이 많을 것 같았습니다.
이제와서 뭐 하려고 그런 이야기를 꺼내겠습니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해서 그걸 다 이야기한들 시원하겠습니까.
차라리 이 시를 어디 잘 보이는 곳에 붙여 놓고, 오며가며 생각날 때마다 한번씩 읽으면 좋을 것입니다.
간단없이 밀려드는 파도는
해안에 부딪혀 스러짐이 좋은 것이다.
아무 미련 없이
산산히 무너져 제자리로 돌아가는
최후가 좋은 것이다.
…………
조선일보, 2012.5.25, A30. [가슴으로 읽는 시]에서 장석남 시인(한양여자대학교 교수)이 소개한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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