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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잎, 잎」

by 답설재 2012. 5. 21.

 

 

 

 

 

 

 

           잎, 잎

 

 

낮은 山도 깊어진다.

비안개에 젖어 무수히 피어나는 속잎,

연하디연한 저 빛깔 사이에 섞이려면

인간의 말의 인간을 버리고

지난겨울 인간의 무엇을 받아들이지 않아야 했을까?

핏줄에 붙은 살이 더러워 보인다, 잎과 잎 사이

벌거벗고 덜렁거릴 것 덜렁거리며 서 있을수록……

 

잎, 잎, 무성하거라 무성하거라 무성하거라

한여름 山 속에 미리 들어와 마음을 놓는다.

 

 

                        ―신대철(1945~ )

 

 

 

 

 

 

 

  아침에 정치인들에 관한 뉴스를 이야기하다가 아내가 말했습니다. "당신도 그 사람만큼 못됐어요."

 

  '못됐다"는 것은 '못돼먹었다'는 뜻이고, '못돼먹다'는 속된 표현으로 '사람이 그 성질이나 언행이 몹시 좋지 않고 고약하다'는 뜻입니다. 다만 우리 내외가 쓰는 '못됐다'는 그 말은 '못돼먹었다'는 말과 똑같지는 않습니다. 뭔가 날카롭고, 직설적이고, 참지 못하고, 너그럽지 못한 그런 성격일 때 '못됐다'고 합니다.

  못된 놈, 못된 성격…… 되지 못한 사람?

 

  아내가 대놓고 하는 말이니 맞는 말이고, 피할 수 없는 평가입니다. 하다못해 주말에 볼일을 보러 갔다가 몰상식하게 구는 놈 때문에 겪은 불쾌함, '천민자본주의'를 벗어나려면 아직도 멀고먼 사람들,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옛날식의 편안한 방법만을 고수하려는 행정가들, 그 방법만으로 끝까지 가려는 교육자들, 사기를 치거나 고약한 수법으로 돈을 긁어모은 것들의 그 돈이 인격·품격이 되어 군림하고 으스댈 수 있는 세태, 신문·방송을 통해 알려지는, 나날이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불편함, 그 불편함으로 터져나오는 투덜거림……

  그런 것들을 넉넉한 시선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꼭 '씹어버려야' 직성이 풀리는 나는, 정말이지 죽을 때까지 이 투덜거림을 멈추지 못하고 말 것입니다.

 

  물론 나를 보고 "못됐다"고 하는 아내의 평가에는 그것만 포함된 것은 아닙니다. 저 정치인들이 하는 꼬락서니를 좀 보십시오. 그런 평가에 그칠 일인가.

 

 

 

 

  그런 사람들에 관한 뉴스와 함께, 신문에는, 저 뒷편이긴 하지만, 「가슴으로 읽는 시」도 한 편씩 게재됩니다.1 얼마나 오래 계속될지는 모릅니다. 한때 그 신문 1면에 짤막한 시들이 한 편씩 게재되기도 했는데, 특히 눈오는 날 아침 같은 때 그 시를 읽으면 스스로 좀 착해져야 하겠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잎, 잎」은, 오늘 아침 아내의 '농담반 진담반'의, 그러나 혹독한 평가를 받으며 읽은 시입니다.

  올해는 여름이 더욱 빨리 와서 나무들이 참 분주합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그 분주한 푸나무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풍덩!' 혹은 무슨 영화에서처럼 슬며시 그 푸르름 속으로 변신하여 들어가버리고 싶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려면 그냥 공짜로는 안되겠지요. 이 "못된" 마음부터 내려놓고, 말도 훨씬 더 줄여버리고―인간의 말이란…… 말을 하는 이 인간들이란…… 좀 험한 것은 먹지도 보지도 말고, 오래 전의 일들은 어쩔 수 없다 해도 최근에, 지난겨울이나 지난봄에 무슨 잘못을 저지르진 않았는가 반성도 해보고…………

  그렇게 한 다음 저 나무들 아래에 앉아 눈을 감아 보든지, 그 나무들 중 하나를 부둥켜안고 서 있든지, 아예 그 그늘 아래 편안하게 누워 하늘 자락을 바라보든지 해야 할 것 아닙니까?

  어쨌든 좀 착해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시를 쓴 신대철 시인이 고맙고, 하필이면 이 시를 가려 보여준 한양여대 교수 장석남 시인에게도 고마움을 느낍니다.

  시인들은 무슨 생각으로 시를 쓰는지……

 

 

 

 

 

 

 

  1. '잎,잎'은 조선일보, 2012.5.21, '가슴으로 읽는 시'에서 옮김.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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