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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기억해 내기」

by 답설재 2012. 5. 11.

 

 

 

 

 

     기억해 내기

 

 

혼자

꽃.

 

진 채

내게 배송된 꽃.

 

발송인을 알 수 없던 꽃.

 

그 꽃을 기억해 냈다.

슈베르트 음악제가 한 달간 열린

알프스 산간 마을

한가로이 풀꽃에 코 대고 있는 소 떼들이

목에 달고 다니는 방울

그 아름다운 화음에서

 

             - 조정권(1949~  )

 

 

 

 

 

  기차를 타고 가다가 며칠 전 신문에서 본 이 詩가 생각났습니다.1

 

  詩를 읽을 땐 요절한 기형도 詩人이 생각났었습니다. 詩人이 저승으로 간 다음에 출간된, 딱 한 권으로 된 『기형도 전집』을 읽으며 가는 호남선 열차 안에서 눈물을 글썽인 적이 있었습니다. 때마침 눈발이 날리는 게 보였었습니다.

 

  '내가 어느 글을 읽으며 눈물을 흘렸지?'

  언젠가 다시 그 책을 꺼내어 찾아보다가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내가 지금 왜 이러지? 여고생도 아니고……'

 

  또 몇 해가 지나, 여기까지 와서, 이 詩를 보며 다시 생각난 그 詩人……

 

  詩가 고맙습니다.

  돈을 주지 않아도 읽을 수 있는 詩.

  시집이라고 해봐야 10,000원도 하지 않는 詩.

  그 詩들이 고맙습니다.

 

 

 

 

 

 

  1. 조선일보, 2012.5.9.A38, '가슴으로 읽는 시'에서 장석남 시인(한양여대 교수)이 소개한 시.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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