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해 내기
혼자
진
꽃.
진 채
내게 배송된 꽃.
발송인을 알 수 없던 꽃.
그 꽃을 기억해 냈다.
슈베르트 음악제가 한 달간 열린
알프스 산간 마을
한가로이 풀꽃에 코 대고 있는 소 떼들이
목에 달고 다니는 방울
그 아름다운 화음에서
- 조정권(1949~ )
기차를 타고 가다가 며칠 전 신문에서 본 이 詩가 생각났습니다.1
詩를 읽을 땐 요절한 기형도 詩人이 생각났었습니다. 詩人이 저승으로 간 다음에 출간된, 딱 한 권으로 된 『기형도 전집』을 읽으며 가는 호남선 열차 안에서 눈물을 글썽인 적이 있었습니다. 때마침 눈발이 날리는 게 보였었습니다.
'내가 어느 글을 읽으며 눈물을 흘렸지?'
언젠가 다시 그 책을 꺼내어 찾아보다가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내가 지금 왜 이러지? 여고생도 아니고……'
또 몇 해가 지나, 여기까지 와서, 이 詩를 보며 다시 생각난 그 詩人……
詩가 고맙습니다.
돈을 주지 않아도 읽을 수 있는 詩.
시집이라고 해봐야 10,000원도 하지 않는 詩.
그 詩들이 고맙습니다.
- 조선일보, 2012.5.9.A38, '가슴으로 읽는 시'에서 장석남 시인(한양여대 교수)이 소개한 시.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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