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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새가 울면 시를 짓지 않는다」

by 답설재 2012. 4. 10.

 

 

 

 

 

     새가 울면 시를 짓지 않는다

 

 

                                                           고진하

 

 

벵골 땅에서 만난 늙은 인도 가수가

시타르를 켜며 막 노래 부르려 할 때

창가에 새 한 마리가 날아와 울자

가수는 악기를 슬그머니 내려놓고 중얼거렸다.

 

저 새가

내 노래의 원조元祖라고.

 

그리고

새의 울음이 그칠 때까지

울음을 그치고 날아갈 때까지

노래 부르지 않았다.

 

그때부터 나도

새가 울면

시를 짓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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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하 1953년 강원도 영월 출생. 1987년 『세계의 문학』등단. 시집『지금 남은 자들의 골짜기엔』『프란체스코의 새들』『우주배꼽』『얼음수도원』『수탉』『거룩한 낭비』등. <김달진문학상> 등 수상.

 

 

                                                                                                                                              『현대문학』2011년 6월호 144~145쪽에서.

 

 

 

그러면 시인은, 시를 짓는 시간보다 새 우는 소리를 듣는 시간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고 할까요? 시 한 편 못 써서 굶는 일이 있어도 시인이야 차라리 그게 좋다고 대답하겠지요.

 

그러면 우리는 어떻다고 해야 합니까?

덩달아 새 우는 소리나 듣고 있자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어느 인적 드문 골짜기에서 새 우는 소리에 젖어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시를 짓지 않고 살아도 충분하겠지요. 그가 시인이라 하더라도 얼마든지 그렇게 지낼 수 있을 테니까요.

 

"벵골 땅에서 만난 늙은 인도 가수가 시타르를 켜며 막 노래 부르려 할 때 창가에 새 한 마리가 날아와 울자 가수는 악기를 슬그머니 내려놓고 중얼거렸지요. 저 새가 내 노래의 원조元祖라고. 그리고 새의 울음이 그칠 때까지, 울음을 그치고 날아갈 때까지 노래 부르지 않았지요. 그때부터 나도 새가 울면 시를 짓지 않아요."

 

그런 얘기를 들으면 누구라도 '아, 이분은 참 멋진 시인이구나!' 생각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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