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세기말 언어학자」

by 답설재 2012. 5. 17.

세기말 언어학자

 

 

차주일

 

 

'사람이 만들었으나 사람이 통제하지 못하는 유일한 것이 종교이다'라고 명명한 지 몇 년 지나지 않아 나는 이 오류를 고쳐 쓴다.

 

지구온난화 다큐멘타리를 시청하는 사람들이 순교를 맞이하듯 발걸음을 버리고 말없이 서 있다.

 

누군가 인간이 건설한 미래를 지우고, 현재를 지우고, 만년설이 냉동해둔 과거까지 지우고 있다.

 

황사가 연둣빛을 처형하는 봄날, 나는 사어를 찾아 사전을 뒤적인다.

겨울 옆에 있던 초봄과 늦가을이란 단어를 삭제한다. '초'와 '늦', 그 아래 덧붙여놓았던, '계절과 계절을 잇는 능선'이란 풀이말을 읽으며,

초저녁이라고 불리었던 시간에 계절의 남은 수명을 잰다.

 

나는 곧, 사계를 지우고 지상에 군림할 만난 적 없는 누군가의 이름과 색깔을 명명해야 한다.

 

사어에 붙어 있던 풀이말들은 사람이란 명사 아래 전리품으로 쌓인다. 풀이말이 가장 많이 덧붙은 사람이라는 단어에 '통제할 수 없는

지우개'라 덧붙이며, 자연을 처음으로 배신한 직립원인을 소환하여 그의 손에서 비롯된 자유를 처형한다.

 

사랑을 고백하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서둘러야 한다. 사람들이 능선을 다 지우고 건축물을 들이면 사람들은 사랑 고백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초봄의 '초'와 같은 설렘, 늦가을의 '늦'과 같은 쓸쓸함이 지워진 사람 또한 지워질 것이다.

 

'대지에서 말을 빌려 온 사람이 만들었으나 사람이 통제하지 못하는 유일한 것이 사랑이다'라고 말할 시기를 놓친 나는 다시 고쳐 쓴다.

 

"사랑한다", 나는 이 짧은 주문을 암송하며 지상에서 사라진 계절을 쫓아가 '첫'과 '늦'을 회생시켜야 한다. 그리하여 설렘과 쓸쓸함이 재림

토록 해야만 한다.

 

누가 내게서 입으로 이르는 앞발의 '첫'과 뒷발의 '늦'을 지웠나.

내가 발과 입 사이에서 "사랑한다"라는 말을 잃어버려, '나'와 '너' 사이가 종교보다 멀다.

 

 

────────────────

차주열 1961년 전북 무주 출생. 2003년 『현대문학』 등단. 시집 『냄새의 소유권』.

 

 

 

 『現代文學』 2011년 7월호, 148~149쪽.

 

 

 

 

 

요즘 같으면 나도 시를 좀 쓸 줄 알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합니다.  뭐 하려고 그러느냐고 물으면, 좀 난처하긴 하지만 정치한다는 사람들에게 경제인들에게 종교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그런 생각을 한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가령 저 종교인들 하는 꼴 좀 보십시오. 어느 종교라고 이야기할 것도 없이 번갈아가며 그러니까 이젠 이슬람교는 어떨까 싶다니까요? 난 숙맥이어서인지 '풀코스'란 말은 이번에 처음 들어봤어요. …… 시를 쓸 줄 알면 이렇게 우울해하지 않고 저 시인처럼 문학적으로 혹은 젊잖게 말하자면 은유적(隱諭的)으로 표현할 수 있지 않겠어요?"

 

 

 

 

오늘 오후에는 남산 한옥마을에서 개최된 제44회 심사임당 추대식에 가보았습니다. 잘 받들어야 할 분인 옛 편수국장 정태범 선생의 부인 허윤정 시인이 44대 사임당에 추대된 것입니다. 대한주부클럽 회장이라는 이가 그랬습니다.

"이제 여자들이 남자들을 끌어안아 주어야 하는 세상입니다!"

"문화가 정치, 경제를 누르는 세상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한옥마을 마당 가득 모여든 여성들이 환호하며 손뼉을 쳤습니다. 그 호쾌한 외침 식(式)으로 이렇게 말할 수 있으면 좋을 것입니다.

"우리가 정치인, 경제인, 종교인들을 보살펴 줍시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 정치인 경제인 종교인들이 가련하지 않습니까? 그들은 우리를 불쌍하다 하겠지만.  그런 사람 만나면 이렇게 말해주면 어떨까요?

"그런 짓 하면 나쁜 사람이지요. 남을 속이고 여러 사람 걱정하게 하고 그러면 못써요. 유치원 새로 가봐야 알겠어요? 나처럼 유치원도 다니지 못했어요? 그래도 그렇지 나쁜 짓하면 안 되는 건 알 거 아니에요."

 

 

 

 

그러나 그렇게 말하면 저 정치인들 경제인들 종교인들이 뿔이 나서 덤벼들겠지요.

"어? 이놈 봐라! 어디다 대고!"

그러니까 그렇게 말하고 싶더라도 참아야지요. 저 시인처럼 '세기말 언어학자' 같은 멋진 시를 쓸 줄 알면 좋겠다고 한 이유는 그것 때문입니다.

 

"여러분! 환경을 보호합시다! 이러다가 우리가 다 죽습니다. 이러다간 '사랑'이고 뭐고 다 사라지고 맙니다!"  그렇게 외쳐봐야 아무도 쳐다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쳐다본다 해도  "저 사람 미쳤지?"  하고 수근대기만 할 것 아닙니까?

 

 

 

'詩 읽은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파도는」  (0) 2012.06.07
「잎, 잎」  (0) 2012.05.21
「기억해 내기」  (0) 2012.05.11
「병 속에 담긴 편지」  (0) 2012.04.26
「새가 울면 시를 짓지 않는다」  (0) 2012.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