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 있다는 건 배에 타고 있는 것과 그리 다르지 않은 듯하다.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 지내고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다. 또 살이 물러지고 새로운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다. 달리 할일도 없다.
메리 로취라는 사람은 『죽음 이후의 새로운 삶, 스티프 STIFF』(파라북스, 2004, 권루시안 옮김, 9쪽)에서 주검 혹은 죽음 이후의 상황을 위와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짤막한 문장에서 "누워서 지낸다"느니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다"느니 "새로운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다"느니 "할일도 없다"느니 어쩌고 하며 겉으로는 『죽음 이후의 삶』이라고 한 책의 제목에서처럼 주검에 대해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를 따듯한 눈길로 바라보듯 했지만, 사실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냉정하게, 차갑게 그린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표현해 놓고는 서늘해진 가슴으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는 사람이 앞에 있다면 천연덕스럽게 이렇게 변명하겠지요.
"섭섭해하지 마세요. 전 단지 과학적으로 이야기한 것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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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책의 내용 중에는 주검을 매장하면 볼이나 유방, 배, 넓적다리, 성기, 엉덩이 같은 부분부터 썩어서 그곳에 구더기떼가 들끓게 되고 그러면서 살점이 뚝뚝 떨어져 나가고………… 아, 더 이상 이런 표현을 옮기기가 어렵습니다.
화장을 하는 경우에 대해서도 무슨 생선구이를 하는 모습을 표현하듯 너무나 생생하게 표현해 놓고 있어서 막연하긴 하지만 이런 생각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아, 어떻게 해야 하나? 나는 어떤 결정을 해야 하나?'
매장? 화장? 어떻게, 어떤 방법을 채택하면 좋겠습니까? 메리 로취는 결론삼아 다음 사례를 제시합니다.
우리는 마음의 준비가 됐건 말건 오늘날의 인간퇴비 운동에 이르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스웨덴 예테보리의 서쪽에 있는 뤼뢴이라는 조그만 섬에 가보아야 한다. …(중략)… 그는 액화질소가 들어 있는 통에 담겨 냉동된 뒤 두 번째 방으로 들어간다. 여기서는 부서지기 쉬운 상태가 된 그의 신체를 초음파나 기계적인 진동을 이용하여 잘게 부순다. 갈아놓은 쇠고기만한 조각들로 부서진다. 아직 냉동상태인 이 조각들은 냉동건조 과정을 거쳐, 교회의 추모공원이나 자기집 마당에 심은 기념수의 퇴비로 이용된다.(296~298)
위 인용문에서 "그"가 누군지 알겠습니까? 죽은이, 그러니까 주검입니다. 이 사례가 요즘 우리 사회에 성행하기 시작한 수목장(樹木葬)과 무엇이 좀 다릅니까?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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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런 곳도 있답니다.
거기서는 죽은 자의 피부를 벗겨 생전에 가까웠던 사람들이 나눠 가진답니다. 사람들은 그 가죽으로 자신들이 아끼는 책을 장정(裝幀)하고 그 표지에 죽은 사람의 이름을 새긴답니다. 그러니까 죽은 사람은 죽어서 책이 되는 셈이지요. 아기가 태어나 글을 익히면 가장 최근에 죽은 자의 피부로 감싼 책을 선물한답니다. 죽은 이를 그 아기의 대부로 삼는답니다. 거기서는 그렇게 몇 권의 책을 장정하면서 차츰 성인이 되어가고, 드디어 결혼을 서약할 때는 그 책에 손을 얹고 말한답니다. "여기 장엄한 생을 두고 맹세합니다" 때가 되면, 책을 꽂아놓은 책장에서 죽은 자들의 음성이 들린답니다. 그러므로 가까운 사람의 명단을 유언으로 남겨야 한답니다. 죽은 자는 몇 권의 책이 되고, 문자의 외투가 되는 것입니다. 늙어서 죽은 자는 지혜의 책이 되고, 젊어서 죽은 자는 혁명의 책이 된답니다. 또 아이가 죽으면 예언서가 된답니다. 죽은 자들은, 살아남은 자들이 삶에 관한 의문이 드는 저녁에 쓰다듬는 한 권의 생(生)이 된답니다.
이 이야기를 도대체 어디서 들었느냐 하면, 유병록 시인의 시 「死者의 書」(『현대문학』 2011년 11월호 164~165쪽)에서 읽었습니다. 멋대로 해석하고 행(行)을 바꾸고 한 점에 대해서는 시인과 독자들에게 양해를 구해야 합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읽고, 매우 흥분해서 그랬습니다. 여러분도 저와 같은 처지가 되면 처음에는 충분히 그러실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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死者의 書
유병록
거기서는
죽은 자의 피부를 벗겨 생전에 가까웠던 사람들이 나눠 가진다더군
아끼는 책을 장정하고 이름을 새긴다더군
죽은 자는 책이 된다더군
아기가 태어나 글을 익히면가장 최근에 죽은 자의 피부로 감싼 책을 선물한다더군그를 대부로 삼는다더군
거기서는몇 권의 책을 장정하며 성인이 된다더군결혼을 서약할 때는 책에 손을 얹고여기 장엄한 생을 두고 맹세합니다, 말한다더군
때가 되면책을 꽂아놓은 책장에서 죽은 자들의 음성이 들린다더군가까운 사람의 명단을 유언으로 남겨야 한다더군
거기서죽은 자는 몇 권의 책이, 문자의 외투가 된다더군
늙어서 죽은 자는 지혜의 책이, 젊어서 죽은 자는혁명의 책이 된다더군아이가 죽으면 예언서가 된다더군
살아남은 자들이 삶에 관한 의문이 드는 저녁에 쓰다듬는한 권의 생이 된다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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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록 1982년 충북 옥천 출생. 2010년 『동아일보』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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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의 「사자의 서」라는 파피루스 그림이 생각나십니까? 저도 그랬습니다. 서가의 책에서 이 자료를 찾기가 어려워서 csp621님의 블로그에서 가져온 그림을 보여드립니다.
☞ http://blog.daum.net/csp9211/7819882
이 안내서 「死者의 書」는 고대 이집트에서 미라와 함께 매장한 사후세계(死後世界) 안내서랍니다. 죽은 사람의 혼을 '바'라고 부르는데, 바는 사막을 통과하고 '부정문답(否定問答)' 절차를 거쳐서 재판을 받게 된답니다.
우선 사막에서는 영혼을 집어 삼키는 딱정벌레가 우글거려서 이들을 물리칠 주술을 알아야 한답니다.
또, 부정문답 과정에서는 신화 속의 모든 신들이 등장하는데, 따라서 수백 개의 문이 있고, 각각의 문을 한 명씩의 신이 수정전갈을 데리고 지킨답니다. 바는 이 신들의 모든 질문에 “아니오”라고 대답할 수 있어야 통과할 수 있는데, 질문은 대부분 생전에 지은 죄에 대한 것이랍니다.
이렇게 하여 모든 문을 통과하고 나면, 저승의 신 오시리스가 직접 영혼을 심판하게 되는데, 바는 저승사자 아누비스 신이 들고 서 있는 천칭에 자신의 심장을 올려놓아서 맞은편의 깃털, 즉 생전에 한 거짓말의 무게와 최소한 수평을 이루어야 천국에 들어간답니다.
만약 깃털 쪽으로 기울어지면 오시리스가 괴물을 풀어 바를 잡아먹게 하여 영원히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므로 그걸로 영영 끝나게 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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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무슨……' 싶다면 우리의 저승 얘기도 살펴봐야 합니다.
전에 한번 소개한 적이 있는, "18금!" 『귀신 백과사전』(이현 글, 김경희 그림, 조현설 감수, 푸른숲주니어, 2010)에 의하면, 서쪽 저 멀리 아득한 곳에 있는 저승을 향해 산 넘고 물 건너서, 마냥 걷고 또 걸어 열두 고개(짝지고개, 망녕고개, 몽달고개, 보따리고개, 호령고개, 잔소리고개, 사랑고개, 처실고개, 조실고개, 도둑놈고개, 청산고개, 돌산고개)를 넘고 황천강에 도착하면, 나루터에서 인상 좋은 바리공덕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나게 됩니다.
그분들에게 길값을 내고 황천강을 건너면 저승에 도착하게 되고, 그곳에서 갈라지는 왼쪽 길은 지옥, 오른쪽 길은 극락, 가운데 길은 서천서역국으로 통하며, 염라국은 갈림길 입구에 있답니다.
제1단계, 영혼은 죽은 지 7일째 날에 진광대왕전(염라국 첫 건물)에서 이승에서 생명을 어떻게 대했는지 따지는 재판을 받습니다.
제2단계, 죽은 지 14일째 날에 초강대왕전(삼도천 너머)에서 초강대왕의 저울로 죄의 무게를 달아 보게 됩니다.
제3단계, 죽은 지 21일째 날에 송제대왕전(업관 너머)에서 이승에서 저지른 잘못에 따라 형벌을 받게 되며, 특히 거짓된 말과 행동에 대해 무서운 형벌이 내려집니다. 이런 형벌도 지옥에 비하면 유치한 수준이랍니다.
제4단계, 죽은 지 28일째 날에 오관대왕전(송제대왕전 맞은편 뜨겁고 큰 강 너머)에서 죄의 무게에서 착한 일의 무게만큼을 덜어내게 됩니다.
제5단계, 죽은 지 35일째 날에 염라대왕전(염라국 한가운데)에서 비록 죄인이라 하더라도 변명할 기회를 갖습니다.
제6단계, 죽은 지 42일째 날에 변성대왕전(염라국에서 걸어서 이레가 걸리는 바윗길 끝)에서 이승의 가족과 친지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살펴보게 됩니다. 그들이 착하면 그 복으로 죄를 덜게 됩니다.
제7단계, 죽은 지 49일째 날에 태산대왕전(변성대왕전 뒤)에서 그동안 계산된 죄에 따라 운명이 정해집니다. 가장 죄가 많은 자는 지옥문, 그 다음은 배고픈 귀신들이 우글거리는 아귀문, 그 다음은 짐승으로 환생하는 축생문, 또 그 다음은 사나운 귀신들의 아수라문, 그 다음은 인간으로 환생하는 인간문, 끝으로 죄가 전혀 없는 이는 천상문으로 들어가 영원히 극락에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곳이 마지막 관문은 아닙니다.
제8단계, 죽은 지 100일째 되는 날에 평등대왕전(철빙산 너머)에서 진심으로 죄를 뉘우친 자는 그 죄를 덜게 됩니다. 이걸 보면, 우리의 저승길이 다른 세상(가령 이집트)보다는 좀 여유롭고 너그러운 것 같기도 합니다.
제9단계, 죽은 지 1년째 되는 날에 도시대왕전(평등대왕전 오른쪽)에서 그동안 여러 대왕들을 만나며 얼마나 올바른 마음을 갖게 되었는지를 평가받고, 긍정적이면 또 한 번 죄를 덜게 됩니다. 저는 8단계, 9단계를 알아보며 마음이 좀 놓이기는 하는데, 저처럼 생각하는 이가 어디 한둘이겠습니까? 말하자면 안일한 생각을 하면 목사고 중이고 뭐고 간에 여지 없을 것 아닙니까?
제10단계, 죽은 지 3년째 되는 날에 전륜대왕전(염라국 맨 뒤편)에서 운명이 정해집니다. 제7단계의 태산대왕으로부터 판결을 받았지만, 평등대왕과 도시대왕으로부터 죄를 용서받았다면 지옥문으로 가라는 판결을 면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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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생각하면 쓸쓸해집니다. 막막해지기도 하고 참담하기도 합니다. 또 허전하고 허망하기도 하고 '그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싶기도 하고 뭐라고 한 마디로 말할 수 없는, 그동안 생각지도 않았던 느낌까지 몰려옵니다. 이래저래 걱정스럽고 착잡해집니다.
그런데 이런 얘기를 하면, 사람들은 대안(代案)도 주지 않으면서 "그러지 말라"고만 합니다. 대안이 있을 리 없지만………… 또, 저는 아직 전혀 죽을 생각이 없는데도 마치 '죽음' 가까이 간 사람을 바라보듯 합니다.
다 죽음에 대해 생각하기를 싫어하고 외면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사실은 그들도 별 수 없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극락?
천국?
그게 어디 커피숍 들어가듯 쉽겠습니까?
그런데도 특히 종교인들은 걸핏하면 극락이나 천당을 들먹입니다. 자신도 모르면서, 따져보기 싫어하면서, 그렇게 떠벌이는 건 일종의 '사기'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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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死者의 書」라는 멋진 시를 보고 생각해 봤습니다. 제가 죽었는데도 책장에서 제 음성이 들리면 제 아내나 누구나 살아남은 사람이 깜짝 놀라겠지요? 다만 그렇게 살아남은 사람이 삶에 관한 의문이 드는 저녁에 쓰다듬는 한 권의 책에 저의 생(生)이 스며 있다면 그건 참 좋을 것 같기도 합니다.
또 한 가지. 저의 경우 제 아내에게 최초의 그리고 마지막 착한 일을 할 수 있다면, 그의 임종을 지켜주는 일이 될 것인데, 그는 자신이 저보다 늦게 가기로 작정한 것처럼 며칠 전 무슨 이야기 끝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49제는 잘 지내줄게요."
가슴이 터질 것 같을 때가 있긴 하지만, 까짓거 그에게 착한 일을 단 한 가지도 못하고 가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칩시다. 49제까지라면 제 영혼이 태산대왕전에 가는 날까지 지켜주겠다는 건데, '그 다음 8, 9, 10단계에서는 나 혼자 어떻게 하나?' 하다가 저 10단계를 자세히 보니까 평등대왕전, 도시대왕전, 전륜대왕전은 자력(自力)으로 총결산을 받는 곳이긴 합니다. 결국 우리는 혼자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덧붙이면, 저의 독자들에게, 저는 지금 당장 죽을 것 같지는 않다는 통지를 함께 보냅니다. 그러므로 부디 우리가 곧 헤어지게 된 것처럼 그러지 마시기를 간곡하게 부탁드립니다. "죽는다" "죽는다" 해도 더 오래 사는 사람이 허다하지 않습니까? 그냥 이런 얘기 하면서 저와 함께 죽음에 친숙해져 보는 것도 결코 손해는 아닐 것입니다.
<자료>
# 이집트인들은 인간의 영혼이 불멸이라 육신이 죽으면 영혼은 갓 태어나는 동물들 몸속으로 들어간다고 믿었지. 영혼은 육지동물, 바다동물, 공중동물의 순으로 세상 모든 동물들의 몸을 거친 후 3천 년 후에야 인간의 몸속으로 들어올 수 있다는 거지. 이런 윤회설을 처음으로 주장한 사람들이 이집트인들이지.
# 미라를 만들 때 내장을 다 꺼내어 카노포스 항아리에 담아둔다고 했는데 심장만은 따로 말렸다가 다시 시신에 넣어준다고 되어 있네요. 심장 대신에 스카라브 갑충석을 넣어주거나 손에 쥐어주기도 했네요. 저승신 오시리스 앞에서 심장 무게를 재는 심판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심장은 어떤 모양으로든지 몸에 지니도록 했군요. 저울 양쪽에 죽은 자의 심장과 진실의 깃털을 올려놓아 만약 저울이 깃털 쪽으로 기울면 탐무트가 심장을 먹어버리는군요. 그러면 심장도 없이 영영 황천인 두-아트를 떠돌게 되네요. 탐무트는 악어 머리에 하마 몸을 하고 있는 여신이군요. 그러나 심장 쪽을오 기울면 오시리스가 다스리는 저승세계로 들어가게 되고, 이 모든 것을 따오기신 토트가 기록을 하는군요. …(중략)… 이집트 사람들은 우리 인생이 깃털만 한 진실도 없이 살아가고 있는 존재라는 걸 이미 꿰뚫어 본 모양이군요.
― 조성기, 「미라 놀이」(단편소설)(『현대문학』 2012년 1월호, 283~308쪽 중 293, 303쪽)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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