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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카운터에 놓여 있는 성모마리아상만은」

by 답설재 2012. 7. 24.

 

 

 

 

 

     카운터에 놓여 있는 성모마리아상만은

 

 

                                                                         신경림

 

 

                                   1

 

큰길에서 벗어나 있는 고풍스러운 마을이다.

바다에 연한 차도를 벗어나자 곧장 골목이고

양철지붕들이 처마를 맞대었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마른 오징어 냄새가 물씬 나는 술집에서는

지붕들 너머로 바다가 보인다.

 

점심을 먹으로 들어갔던 그 집에서 우리는 저녁 늦도록 술을 마셨다. 중년의 여주인은 우리말을 못 알아들었지만 안주를 장만하며 술잔을 채우며 "하이 하이"를 계속했다. 외국 손님은 처음이라 했다. 동네 사람들 몇이 들어와 술을 마시며 인사들을 한다.

 

카운터에는 성모마리아상이 놓여 있다.

 

 

                                   2

 

화면이 보여주는 쓰나미가 휩쓸고 간 바닷말이 바로 그 동네다. 어, 어

하는 사이 양철지붕들이 종이딱지처럼 물에 뜨고 집들이

성냥갑보다 더 가볍게 둥둥 물살 위를 떠다닌다.

사람들은 흡사 장난꾼 아이가 쏘아대는 물대포 앞에 놓인 개미떼다.

필사적으로 육지를 향해 달리던 차들이 헛되이 물속으로 곤두박질치고

마을은 순식간에 폐허가 된다.

 

저들 중에는 매니페스토를 열독한 사람도 있고 적군파에 박수를 보낸 사람도 있을 것이다.

선한 사람도 있고 악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한류에 빠진 사람도 있고 독도를 다케시마라 우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슨 상관이랴, 개미들이 어떻게 살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우리도 모르는데.

 

 

                                   3

 

하느님은 카운터에 놓여 있는 성모마리아상만은 거두시었으리.

 

 

───────────────

신경림 1935년 충북 충주 출생. 1956년 『문학예술』 등단. 시집 『농무』『새재』『가난한 사랑 노래』『쓰러진 자의 꿈』『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뿔』『낙타』 등. <만해문학상><한국문학작가상><이산문학상><대산문학상> 등 수상.

 

 

 

 

 

 

  『현대문학』 2011년 10월호, 164~165쪽에 발표된 시.

 

 

 

 

  따지고보면 우리네 삶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그 동네에 쓰나미가 몰려오던 그 모습을, 우리가 화면으로나 보고 실제로 겪지 않은 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그러나 바로 그 이유로 한 치 앞을 모르고 이렇게 태평으로 살아가는 건 얼마나 우매한 일인가. 또한 우매한 것조차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그걸 기가 막히다면서도 그렇게 태연하게 앉아서 화면으로나 보고 있었으니……

 

  참 어처구니없는 혹은 시답잖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장난감 자동차, 장난감 모형주택, 도로, 전신주, 허접쓰레기들을

  '이까짓 것 가지고 이 인간들이…………'

  싶다는듯 순식간에 아주 간단히 둘둘 말아가며 밀어붙이고, 내동댕이치고, 뒤엎어버리고, 바수어버리고…………

 

  그 잠깐을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연속극, 주말의 영화 한 장면 보듯이 보고 보여준 이유는 또 뭘까.

  그걸 1인당 몇 번씩 뉴스 시간만 되면 보고 또 보면서도

  "봐라! 우리를 못살게 한 몹쓸 것들이 당하는 꼴을!"

  그렇게 말하는 사람 단 한 명도 없고, 그렇다고

  "저것 봐라! 착한 일 하는 사람은 살아남고, 착한 일 하지 않고 잔머리나 굴리면 벼락을 맞는다!"

  혹은

  "아하! 이제는 쓰나미가 덮쳐도 끄덕 없는 탱크 같은 자동차, 거대한 바위 같은 주택을 짓자!"

  그렇게 외치거나 다짐하는 이 하나도 없는 이유는 도대체 뭘까…………

  그렇다고 "이제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되는 대로 지내자"고 하지도 않는 이유가 뭘까…………

  왜 인간들은 자연에 대해서는 논평을 하지도 않고, 비판을 하지도 않고, 못본 체 넘어가는 걸까…………

 

  그냥 "우리가 저 동네에서 살았었는데……"

  아니면 "접때 우리가 저 동네에서 한잔 했었는데……" 그러고 마는 걸까.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福島) 원전사고 조사·검증위원회가 7월 23일 최종 보고서를 냈다고 한다. 그 위원회의 하타무라 요타로(畑村洋太郞) 위원장은 보고서에서 이번 사고의 교훈을 다음과 같이 들었다고 한다.1

  "보고 싶지 않은 것은 보이지 않는다. 보고 싶은 것만 보인다."

  "자신의 눈으로 보고 자신의 머리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보고서에는 이런 내용도 들어 있다고 한다.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일도 일어난다."

  "이 사고는 자연이 인간의 생각에 결함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준 것이다. 이 교훈을 계속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1. 조선일보, 2012.7.24.A.16.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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