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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조숙향 「가을이 오는 소리」

by 답설재 2012. 9. 4.

가을이 오는 소리

  

 

                                 조숙향

  

 

하늘 사이로 구름이 흘러갑니다

구름 사이로 하늘이 흘러갑니다

하늘과 구름, 틈 사이에서

긴 여름을 견뎌낸

연보랏빛 구절초 한 송이

사뿐히 길섶으로 내려와

그대에게 가는 길을 묻습니다

 

 

 

 

태풍 '볼라벤'이 물러가자마자 '덴빈'이라는 게 올라온 날 오후에 불광역 근처에서 회의를 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은, 비바람 때문에 스산했습니다. 차들은 바삐 돌아가고 싶어 초조해하는 것 같고, 다른 날보다 일찍 날이 저물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횡단보도 앞에 서 있는 사람의 우산이 뒤집어질 뻔했고, 어떤 여자 노인은 "아이구 추워!" 하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세상 일이 다 이렇습니다. 아주 더워서 가슴이 다 답답하던 것이 바로 엊그제였는데, 며칠간 태풍들이 오가고 나면, 언제였느냐는듯 당장 가을입니다. 그걸 알아야 하는데, 매년 겪으면서도 처음 겪는 것처럼 살아갑니다.

  

구절초 한 송이를 쳐다보며 결국은 '그대'를 그리워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라면, 세상을 그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뭐가 문제이겠습니까?

머리로는 잘 생각하면서도 정작 가슴으로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대로 살아가려는 듯 하루하루 아무 생각없이 살고 있으니 나라는 인간은 참 한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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