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오는 소리
조숙향
하늘 사이로 구름이 흘러갑니다
구름 사이로 하늘이 흘러갑니다
하늘과 구름, 틈 사이에서
긴 여름을 견뎌낸
연보랏빛 구절초 한 송이
사뿐히 길섶으로 내려와
그대에게 가는 길을 묻습니다
태풍 '볼라벤'이 물러가자마자 '덴빈'이라는 게 올라온 날 오후에 불광역 근처에서 회의를 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은, 비바람 때문에 스산했습니다. 차들은 바삐 돌아가고 싶어 초조해하는 것 같고, 다른 날보다 일찍 날이 저물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횡단보도 앞에 서 있는 사람의 우산이 뒤집어질 뻔했고, 어떤 여자 노인은 "아이구 추워!" 하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세상 일이 다 이렇습니다. 아주 더워서 가슴이 다 답답하던 것이 바로 엊그제였는데, 며칠간 태풍들이 오가고 나면, 언제였느냐는듯 당장 가을입니다. 그걸 알아야 하는데, 매년 겪으면서도 처음 겪는 것처럼 살아갑니다.
구절초 한 송이를 쳐다보며 결국은 '그대'를 그리워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라면, 세상을 그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뭐가 문제이겠습니까?
머리로는 잘 생각하면서도 정작 가슴으로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대로 살아가려는 듯 하루하루 아무 생각없이 살고 있으니 나라는 인간은 참 한심합니다.
'詩 읽은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두순 「새우 눈」 (0) | 2012.09.13 |
---|---|
윤예영 「사이렌, 세이렌」 (0) | 2012.09.10 |
「빈 배처럼 텅 비어」 (0) | 2012.08.26 |
「死者의 書」 (0) | 2012.08.23 |
「카운터에 놓여 있는 성모마리아상만은」 (0) | 2012.07.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