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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나는 어떤 사람인가?(내가 죽은 후의 일)

by 답설재 2014. 1. 5.

 

 

 

 

   

 

 

가령, 내가 지금 죽으면 어떻게 될까?

어떤 일이 일어날까?

 

'요즘 그가 보이지 않네?' 할 사람이 두엇 있다가 말 것이다. 말하자면 내가 이 세상에서 살았던 사실이 흐지부지하게 처리된 일처럼 되고 말 것이다.

함께 근무한 적이 있는 몇몇 사람들은 더러 그럴 것이다.

"그 사람 죽었다던데?"

"언제?"

"지난달이지 아마?"

"그래?"

"퇴임할 즈음에 심장병이 드러나서 술담배도 못하고 별로 활달하지 못했지."

"…………"

그러면 끝일 것이다.

함께 근무했는데도 이미 함께 근무하지 않았던 사이만큼, 혹은 그보다 훨씬 더 멀어진 사람들이 대부분이므로 오죽하겠는가.

 

 

 

    Ⅱ

 

 

'큰일이다!' 싶은 일?

그런 일은 없다. 내가 없어서 '큰일'인 일은 단 한 가지도 없다.

심지어 '작은일'도 없다.

우선 내가 지금 특별히 하고 있는 일이 없다. 아무도 나더러 "왜 그 일의 결과를 알려주지 않느냐?"고 할 일이 전혀 없다.

 

 

 

    Ⅲ

 

 

남은 물건?

책은, 내 아들이 그렇게 하겠지만, 읽을 만한 몇 권을 남기고 버리면 된다. 좀 성가실 것이다.

 

사무실의 책들도 마찬가지다. 역시 좀 성가시겠지만 직원 두어 명이 한나절이면 거뜬할 것이다.

나중에 볼 생각이었던 메모 같은 것들은 '이게 뭐지?' 하다가 금방 한꺼번에 '별 것 아닌 것'이 되어 쓰레기 신세가 될 것이다.

  

 

 

    Ⅳ

 

 

자식들은 '하루도 빠짐없이 약을 먹으며 살더니 마침내 갔구나……' 하고, 여러 가지 원망스럽던 일보다 좀 딱한 일 몇 가지를 떠올려 눈물을 흘릴 것이다. 더구나 영국에 있는 아이는 당장 오기조차 어렵다.

허구한 날 울어댈 리도 없다. 세상의 어느 자식이 그렇게 하는가. 울어 준다고 좋을 리 없다.

 

손자·손녀에게는 꼭 해야 할 말이 있는데, 그럴 겨를이 있을지 모르겠다. 지금 같으면 말귀가 통하는 아이가 겨우 한 명이다.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건 오랫동안 생각한 것이다.

 

"얘들아, 나는 일을 참 많이 해봤다. 학교에서도 그랬지만 교육부 편수관으로 들어가서는 더욱 많이 했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오히려 회의적이었던 것은 '내가 이 세상에 왜 왔는가?'였다. 일을 하려고 온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너희들을 만나면서부터 마침내 그 의문이 풀리기 시작했다. '아! 나는 이것들을 만나려고 이 세상에 온 것이구나!' 이 이야기를 기억해주면 좋겠다. 얘들아, 고맙다."

 

 

 

    Ⅴ

 

 

이제 남은 건 아내뿐이다.

미안하다. 미안하고, 미안하다. 이 미안함은 정작 나보다 그가 오히려 더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내가 걱정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아내는 내가 없으면 잠을 잘 이루지 못한다. 그게 걱정이다.

나는 '저녁형 인간'이고 아내는 '아침형 인간'이다. 말하자면 나는 밤이 깊어갈수록 생각이 많아지고 깊어지는데, 아내는 새벽에 일어나서 아직 내가 일어날 생각도 하지 않는데 하루종일 할 만한 일을 다 해치운 다음 아침식사 준비를 하고 나서 나를 깨운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간에 아내는 벌써 저렇게 자고 있다.

 

내가 출장을 가서 1박을 하는 날은 걱정 말라고 말은 하지만 이튿날 돌아와 보면 잠을 잔 것 같지가 않다.

죽음에 대해 생각하면서 그 문제에 이르러기만 하면 꼭 암담해지고 만다.

'막상 죽고 나면 하루이틀 힘들어하다가 어떻게 되겠지.'

게 잠정적인 결론이긴 하지만, 가위에 눌릴 때가 많다는 것만 생각해도 다시 걱정에 휩싸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가 가위눌릴 때라도 내가 다녀갈 수 있다면 오죽 좋은 일이랴.

 

 

 

    Ⅵ

 

 

나는 곧 잊혀질 것이다.

교과서 말고도 내가 쓴 책이 몇 권 있긴 하다. 교보문고의 앞자리를 차지한 책도 있었지만, 지금은 이미 거의 다 절판이 되고 말았다.

오래 전에 쓴 몇 편의 글이 지금도 더러 인용되기는 한다. 그렇지만 날이 갈수록 그 횟수가 줄어들고 있으니까 머지않아 그런 경우는 희귀한 일이 되고 말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무얼 더 쓰고 싶지는 않다. 그래봤자 별 수 없는 일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나는 참 단순한 인간이다.

이렇게 단순한 존재에 지나지 않는 것은 한심한 일인가 하면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게 한심하다면 세상을 한심하게 살고 간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한심하지 않은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는가.

흔적 없이 사라져 가는 것도 그리 나쁜 일은 아닐 것 같다.

 

걱정 한 가지를 덧붙여 둔다. 내가 예상외로 오래 사는 것이다. 사람은 언제까지나 살고 싶은 것이어서 스스로 죽지는 않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그것도 참 낭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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