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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악수

by 답설재 2013. 12. 26.

 

 

 

 

 

악수

 

 

 

 

 

  어느 고위직 공무원의 악수하는 모습이 눈길을 끌었습니다.1

  그는 만면에 미소를 짓고 있고, 상대방은 왼손을 오른팔 아래의 가슴에 붙인 채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고 있는 사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는 사람은, 그 상대방이 아니라 그 옆 사람이었습니다.

 

  다행인 것은, 상대방은 고개를 숙이고 있기 때문에 지금 그 '고위직'이 자신을 바라보지 않고 딴짓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나중에 신문에 난 그 사진을 봤다면 씁쓸하긴 했겠지만…….

 

 

 

 

 

 

  인사란, 대충 해도 괜찮을 때가 흔한 것 같지만, 우리의 마음을 들여다보면 전혀 그렇지 않아서 내가 정성을 들이면 상대방도 백발백중 진심을 주고받는다는 사실을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초등학교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초보적이고 기본적인 이야기입니다. 1600명의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의 교장을 해봤는데, 그 1600명 녀석들이 내가 보이면 개미떼처럼 지나가며 인사를 했고, 그러면서 깨달은 것은 녀석들이 인사를 할 때마다 내 눈을 바라본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인사를 하는 그 녀석의 눈을 제대로 바라봐 주면 내 인사를 받는 그 녀석의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나를 교장으로 인정해 준다는 사실도 확인하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한심한 것은, 어른들은 아이들의 그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쳐다보지도 않고 지나가기 일쑤입니다. 내가 정년을 앞두고, 아이들이 말을 걸어올 때 제발 몸을 돌려서 그 아이들을 바라봐 주기를 바란다면서 전 교직원에게 회전의자를 구입해 주게 했는데, 그분들이 지금 나의 그 말을 실천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이것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요즘은 날씨가 여간이 아니어서 심장질환을 앓는 사람들은 꼭 모자를 써야 합니다. 나는 나처럼 모자를 쓰고 다니는 어느 선배에게 인사를 할 때 가볍게 모자를 벗는 제스처로 예를 표시했는데, 어느 날 이번에는 그 선배가 나에게 먼저 그렇게 해주는 걸 보며, 예의란 분명히 주고받는 것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요즘은 일상적으로 악수를 하는 문화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만나면서 악수를 하고, 헤어지면서 악수를 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악수란 연령이 많은 쪽이 먼저 청하는 것이고, 남녀 간에는 여성이 청하는 것이라는 기본 예법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긴 하지만, 그것이 지켜지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입니다.

 

  더구나 남성이 나이가 많고, 여성이 나이가 적다면, 어느 쪽이 먼저 악수를 청해야 하는 것인지, 그런 것을 따져보는 사람들이 있기나 한지 의심스럽기도 해서, 남들은 덥석덥석 악수를 하고 즐겁게 헤어지건만, 나의 경우에는 '내가 먼저 저 아리따운 여성에게 손을 내미는 무례를 저지를 수는 없지' 하고 엉거주춤 서 있다가, 내내 좋은 분위기였는데 헤어지는 자리의 그 짧은 순간이 오히려 어색한 장면이 되어버리고 만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므로,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 나보다 젊은 여성이 있어서 다음에 나를 만나게 되었을 때, 악수를 해도 좋다는 판단을 했다면 부디 먼저 좀 손을 내밀어 주기를 바란다는 것을 여기 이렇게 밝혀 두는 바입니다.

 

 

 

 

 

 

  악수 중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악수도 없지는 않습니다. 정치가들의 악수가 그것입니다. 매우 불쾌한 말, 심지어 '아, 이젠 정말 제각기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는구나!' 싶은 말이 오고가는 상황이 벌어졌는데도 만나면 악수를 하는 모습이 신문, 방송에 나오는 것입니다.

  그 경우, "우리가 언제 그랬느냐?"는 듯 만면에 미소를 띄는 경우가 더 많아서 잠시 당혹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조마조마하고 초조하기만 했던 가슴을 그 표정 하나만으로도 진정시켜 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만남 자체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하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이제 그들은 화해를 했거나 화해를 할 용의를 가지게 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설득력이 있을지조차 의심스럽긴 하지만, 그들은 왜 손을 맞잡은 상대방을 바라보지 않고 이쪽, 그러니까 카메라를 들이대고 사진을 찍는, 그래서 그 사진을 보게 될 사람들을 바라보는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 "고위층은 본래 이렇게 하는 것이다."

  ― "이 역사적인 순간을 이끌어낸 장본인은 바로 나다!"

  ― "중요한 것은 내 얼굴을 알아보는 것이므로 악수를 나누고 있는 상대방보다는 카메라를 바라보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글쎄, 이 문제는, 기자들로부터 "의원님, 이쪽을 좀 봐 주십시오!" 같은 요청을 받아본 적이 없는, 그러므로 평생 그런 사진의 주인공이 되어 본 적이 없는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짐작할 수 없는 문제로 남겨 놓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나보다 젊은 여성에게, 다음에 나를 만나거든, 그리고 악수를 좀 해도 괜찮은 경우라면 부디 먼저 손을 좀 내밀어 달라는 요청을 적었지만, 한 가지 더 부탁하고 마치겠습니다.

 

  그런저런 악수를 나눌 때 내가 만약 딴전을 피우거든, 악수할 사람이 줄을 서서 기다리기 때문에 벌써 다음 사람에게 눈이 가 있거든, 그 어떤 자리에서든 내가 정신을 번쩍 차리도록, 한 사람 한 사람과 악수하는 일에 정성을 들이도록, 지금 예의상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 연출출되고 있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도록,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그 자리에서 직접 알려 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따귀를 한 대 '딱!' 때려도 좋겠다는 것입니다.

 

  하기야 내게 그렇게 악수를 하고 싶어서 줄을 서서 기다릴 사람들이 있기나 하겠습니까? 그런 행복한 장면을 가정해 볼 뿐입니다. 그런 행복한 순간에 내가 따귀를 한 대 맞는 상황이 연출되면 어떨지 다만 가정을 해 보는 것입니다.

 

 

 

 

 

 

 

  1. 12월 어느 날, 그러니까 필자의 생일로부터 1개월 27일이 지난 날이었습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