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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멍멍이들을 위한 고백

by 답설재 2013. 12. 10.

 

 

 

 

 

멍멍이들을 위한 고백

 

 

 

 

 

 

 

 

 

 

 

 

 

  우리 집 마당에서 살던 그 멍멍이는, 저렇게 귀엽고 이쁜 개가 아니었습니다. 이름조차 없는 똥개여서 동네 다른 개들처럼 그냥 "워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다시 전쟁이 나면 죽을까봐 늦게 입학해서 읍내 중학교에 갔을 때는 이미 1960년이었지만, 그조차 아무런 목적 없이 다녀서 그저 주말에 집에 가는 게 유일한 목표였습니다. 부모님께서는 눈에 드러나게 반가워해 주지는 않았지만, 그 만남에 대한 속마음을 멍멍이가 전해 주었습니다.

 

  "개를 오래 키우면 영물(靈物)이 된다"느니 했지만, 그건 아마도 적당한 시기에 내다 팔아야 하기 때문에 정(情)을 떼기 위한 핑계 혹은 설명이었을 것입니다. 영물은 무슨…… 게다가 요즘은 "걸핏하면 개나 소나"라며1 '걸핏하면' 애꿎은 개나 소를 들먹이지만, 성형술의 발달로 "개나 소나 여신(女神)"은 말이 될지 몰라도 그 정(情)으로 말하면 "개나 사람이나" "소나 사람이나" 마찬가지, 혹은 (적어도 나의 경우라면) "개나 소가 사람보다 조금 낫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입니다.

 

  주말 아침, 식구들이 내가 귀가할 예정이라는 얘기를 하면, 그걸 마당에서 엿들은 멍멍이는, 그 어둔 밤에 혼자서 마을을 벗어나고, 논둑 밭둑을 지나고, 저수지를 지나서, 집에서 2킬로미터는 됨직한 그 나지막한 산기슭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별만 총총한 밤에 그 야산에서 내가 놀라 나자빠질까봐 그랬는지 짓지도 않았습니다. 이 생각 저 생각, 생각에 잠겨 산길을 내려오면 갑자기 '후다닥' 덤벼들었습니다.

  놀라움도 놀라움이지만, 까만 교복 차림에 흙 묻은 두 발을 들어 마구 덤벼들어 이래저래 단 한 번도 다정하게 대하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멍멍이는 잽사게 집으로 달려가서 이번에는 내가 저만큼 걸어오고 있다는 사실을 가족들에게 알렸습니다.

 

  요즘에는 한밤중이나 첫새벽에 잠이 깨면, 불현듯 그 '전령사'가 생각납니다. 그의 영혼은 어디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을까………… '도련님'처럼 모셨는데도 결국 그렇게 남루하냐며 측은해 하지는 않을까…………  

 

 

 

 

 

 

  1990년 1월엔가 만난 강아지는 말하자면 '비루먹은 것'이었습니다. 아니, 어느 못되먹은 사람이 그 강아지의 몸에 일부러 본드로 떡칠을 했는지 털이 온통 달라붙어 있었습니다. 그 꼴로 오들오들 떨면서 귀가하는 내 뒤를 무작정 따라왔습니다.

 

  그 즈음, 나는 일단 혼자 상경(上京)해서 방배경찰서 옆 어느 단독주택 이층에 세 들어 살고 있었는데, 그야말로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으로 귀가 시간도 일정하지 않고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경우도 드문 무질서한 생활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러므로 그 강아지가 나를 따라오는 건 도무지 아무런 계산이 없는 짓이어서 '이건 아니다!' 싶어 자꾸 돌을 집어 던지는 시늉을 했지만 그 강아지는 이미 내게 맞아죽겠다는 작심이라도 한 듯 막무가내였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하겠습니까? 일단 추위라도 피하게 하고 싶어서 데리고 들어가 살펴보며 새삼 깨달은 것은 개는 털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일단 물을 끓였고, 그동안 그 강아지는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물이 끓자마자 곧장 목욕을 시켰는데, 이번에는 물이 너무 뜨거웠는지 아주 죽을 지경으로 겁을 내면서도 내가 하자는 대로 따르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신산(辛酸)한 목욕을 해도 털은 일어날 기미가 없어서 마침내 최후의 결정을 내려 아예 가위로 다 깎아버렸습니다. 살집이 말캉거려서 여간 조심스럽지 않았습니다. 그러자니 밤이 이슥했고, 털이 다 깎인 맨살의 그 강아지는 이제 더욱 심하게 오들오들 떨기 시작했으므로 '이건 아무래도 아주 새 판을 짜야겠다!'는 판단으로 이불로 종이 박스 안팎을 싼 다음 그 안에 집어넣었습니다.

 

  무얼 먹였는지, 사무실에 나가 있는 낮 시간에는 어떻게 지내게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강아지는 종일 짓지도 않았고, 어디로 갈 생각도 없는 것 같았으며, 애완견에 대한 지식이 정말로 전무한 내가 넣어 주는 대로 먹으며 근근히 목숨을 부지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아래층 초등학교 여학생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는 아름다운 여대생에게 넌지시 물어봤습니다.

  "애완견 한 마리가 있는데, 털이 새로 나는 중이지만 말은 세상에서 가장 잘 듣습니다."

  거래가 성사되어 그 학생은 레슨을 마치자마자 강아지를 안고 떠났습니다. 강아지는 아마도 잠시 눈물을 흘렸던 것 같습니다.

  그것이 떠나자 참 시원했습니다. 아침에 나갈 때도 아무 부담이 없었고, 늦게 귀가해도 아무런 걱정이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도 인연이었다고 잠시 섭섭하고 허전하다는 느낌을 가지기는 했습니다.

 

  그 섭섭함이 '텔레파시'가 되었던 것일까요? 며칠 후의 퇴근길이었는데, 무심코 뒤를 돌아본 나는 기겁을 했습니다. 녀석이 어떻게 돌아왔는지 뒤를 밟으며 얼마나 반가워하는지…… 흡사 다시는 만나지 않아도 좋을 사람이 마주보며, 그것도 세상에서 가장 반가운 사람을 만났다는 듯 웃으며 걸어오는 꼴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어서 데리고 들어와서는 아래층으로부터 그 여대생 전화번호를 알아내어 다짜고짜 당장 데리고 가라고 했습니다. 나는 그 여대생이 개에게 무슨 몹쓸 짓이라도 했다는 양 제법 큰소리로 꾸중하듯 했을 것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했기에 삼십 리는 된다는 그 길을, 그것도 이 서울바닥에서 이 녀석이 나를 찾아오도록 했습니까!"

 

  더러 그 강아지도 생각납니다. 녀석은 그때 나를 보고 그랬을 것입니다.

  '아, 매몰찬 인간, 기어이 나를 내쫓고 만 저 인간…… 정(情)으로 치면 나보다 못한……'

 

 

 

 

 

저 위의 저 행복한 강아지가 노는 마당 옆, 꿈길 같은……(2013.5, 괴산)

 

 

 

 

 

 

  1. - 가령 '소나 개나 여신(女神)이라니...'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