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김원길 시인의 '손짓'

by 답설재 2013. 10. 30.

 

 

 

 

 

김원길 시인의 '손짓'

 

 

 

 

 

 

 

어제는 편안한 KTX, 그것도 특실 1인석에 앉아, 거기다가 약 40분인 거리를 다녀왔는데도1 집에 도착해서는 그야말로 겨우내내 거기에 있는 줄 모르고 지내다 발견된 홍시처럼 녹초가 되어버려, 일곱 시간이나 잤습니다.

  평소보다 한 시간 반이나 더 자서 에디슨이 들으면 기가 찰 노릇이 된 것입니다. 요즘 자주 볼 수 있는 어느 광고에 등장하는 에디슨이 "잠을 네 시간 이상 자는 것은 나에게는 사치"라고 하며 손을 털고 돌아서는 멋들어진 모습을 보고는, 그렇게는 못하더라도 '여섯 시간 이상 자는 것을 사치로 여기자'고 한 결심이 일순간에 무너진 것입니다.

 

  그런 몸이니 버스나 완행열차를 타고 안동쯤 다녀온다면, 거기에서 며칠 머물며 쉬었다 온다 해도 벅찰 노릇인데, 그 안동 하고도 지례의 예술촌장 김원길 시인은 자꾸 손짓을 합니다.

  이번에는 이런 메일을 보냈습니다.

 

 

 

 

 

  만약에 가을꽃이나 단풍잎이 노랗고 빨갛게 물들지 않고

  칙칙한 칡 빛깔로 온 세상을 뒤덮는다면

  가을에는 사람들이 서로 욕하고 싸움질 만 할 것 같네요.

  하느님

  파란 하늘

  고맙습니다.

 

  오늘 저녁 일곱시에 '안동예술의전당' 백조홀에서 고향의 후배 문인들이 늙어가는 저를 불러내서 용도폐기 되기 전에 문학 이야기나 좀 하고 가라고 합니다.

  갑자기 멀리서 오실 수는 없어도 그런 줄이나 아시라고 말씀 전합니다.

 

  어제 쓴 "나 홀로 래프팅" 첨부했습니다.

 

 

 

나 홀로 래프팅

 

 

  강가에 살다보면 가끔 배나 뗏목을 타고 강물을 따라 하염없이 흘러가 보았으면 하는 동심이 생길 때가 있다. 문제는 내게 배가 없다는 것과 떠내려가긴 쉬워도 여울을 거슬러 돌아 올 수가 없으니 실행이 어렵다. 그러던 내가 마침내 바람 넣는 고무보트 하나를 사게 된 것이다. 노가 딸려 있어서 강을 건널 수도 있고 고기를 잡거나 앞산에 버섯을 따러 갈 때 요긴하게 쓰였다. 바람을 빼면 부피가 줄어서 가방에 넣어서 메고 올 수가 있으니 이제까지 꿈만 꾸던 급류타기도 가능해졌다. 홍수로 탁류가 개가 차게 흐르던 그해여름, 도로가 물에 잠겨 마을이 고립되니 이런 때 이걸 타면 출근도 될 것 같았다. 드디어 나는 마을사람들의 걱정을 뿌리치고 노란색 고무보트를 급류 한복판으로 밀어 넣었다. 빠삐용! 야자열매를 넣은 푸대(부대)를 타고도 바다를 건너던데 상어가 있는 것도 아닌 강을 흘러내리는 것쯤이야! 어릴 적 실러의 '빌헬름 텔'에서 포악무도한 성주를 죽이고 도망치는 마을 사람을 피신시키느라 텔이 폭풍우 속에 배를 저어 호수를 건네주는 박진감 넘치는 장면이 떠오르기도 하고 영화 '돌아오지 않는 강'에서 로버트 미첨이 뗏목을 저어 급류를 따라 내리는 장면도 떠올리며 노를 저었다. 쏜살같이 흘러내려 아랫마을 앞을 지나면서 보니 물구경 하러 나온 마을 사람들과 동네 개들이 노란 보트 위에 양복차림으로 우산을 쓴 나를 보고 매우 놀라는 기색이었다. "놀래렴. 너희 마을에 대안도戴安道같은 친구만 있어도 나는 더 내려가지 않을 거야." 사실 나는 그 무렵 중국의 고사古事 하나를 읽었는데 왕희지의 아들 왕휘지王輝之가 산음이란 강마을에 살 때 어느 폭설이 내리는 밤 흥을 이기지 못해 술을 마시다가 시를 읊다가 문득 하류에 사는 친구 대안도가 생각나서 작은 배를 저어 친구네 동네까지 갔다가 날이 밝자 친구를 만나지 않고 돌아왔다. 사람들이 까닭을 물은 즉 "나는 내 흥에 겨워 갔던 거지 굳이 대안도에게 볼일이 있었던 건 아니었어." 이 일화야말로 사람이 인생을 즐기는 지혜를 귀띔해주는 대목인 것 같다. 나는 도연폭포 위쪽에서 뭍에 내려 헌 옷으로 갈아입고 폭포 밑에서 다시 보트를 저었다. 커다란 암석들이 여울에 즐비하게 깔린 선창이란 데서 물살이 바위를 넘을 땐 마치 서부영화의 로데오같이 껑충거리는가하면 보트가 바위 사이에 꽉 끼여 꼼짝도 않을 때는 물에 내려 헤엄을 치며 꺼내느라 애를 먹었다. 격랑의 협곡을 빠져 나오자 이번엔 넓디넓은 강변에 물이 퍼져서 흐르지를 않는 게 아닌가! 지칠 대로 지친 나는 노 젓기를 멈추고 뱃바닥에 누어 물결과 바람에 배를 맡겨버렸다. 얼마나 지났는지 눈을 떠보니 국도변 강가에 멎어 있었다. 다 온 것이다.

 

 

 

 

 

  안동에는, 아니 안동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는,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가령 키다리 이재호 씨. 낭만적인, 단 한 가지, 가진 것이 없어서 안타까웠던 시인……

  교육대학을 몇 달 다닌, 나처럼 그 대학을 참 싫어하다가, 미적거리는 나를 남겨두고 어느 날 슬그머니 사라져서 영영 돌아오지 않은, 가로수 그늘에서 바둑 두는 노인들을 만나면 함께 몇 판 두거나 갖은 방법의 훈수를 하다가 적어도 두어 시간, 아니면 어두워져야 직성이 풀리는, 더러 술도 한잔 할 줄 아는 조병국 씨.

 

 

 

 

 

  1. 고백할 것은, '고백'이라기보다 잊지 않는 것이 좋겠다 싶은 것은, 이달 31일 목요일 표를 왕복으로 끊어서 타 놓고는 그 좌석이 '내것'이라고 우기다가 지나가는 승무원이 발견하고 밝혀냈고, 내게 아주 좋은 자리로 새 표를 끊어주었습니다. 인생이란 이런 것인가... 잠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본문으로]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