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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노년일기304

비 오는 날 비 오는 날 어중간한 오전 시간, 새달의 월간지를 펴 들었습니다. 소나기 오는 소리가 들립니다. 문득 수십 년 전 이런 날 오전에도 책을 읽고 있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세월이 흘렀어도 여전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다른 일 같으면 무슨 수가 나도 났을 터인데 책을 읽는 일로써.. 2018. 7. 1.
내 소풍 내 소풍 2018. 6. 29.
내가 왜 여기에? 내가 왜 여기에? 문득 '내가 왜 여기에?' 싶을 때가 있습니다. 무심코 아파트의 다른 층에 내렸을 때처럼 낯선 느낌입니다. 얼마쯤 얼이 빠져 있을 때여서 '내가 그랬었다고?' 나 자신에게조차 잡아떼면 그만인 그런 순간이긴 합니다. 밖에 나가면 당장 나의 이 집을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 2018. 6. 25.
김기택 「대머리」 대머리 김기택 당연히 대머리 아저씨 머리에 있어야 할 대머리가 어느 날, 내 거울에 와 있는 것을 본다. 죽어도 저렇게 살지는 않겠다고 발음하는 주둥이가 달린 대머리 얼굴을 쳐다본다. 암처럼 비행기 사고처럼 당연히 남의 일이어야 할 대머리가 내 목 위에 뻔뻔하게 붙어 있는 것을 본다. 여기까지 찾아온 걸 보니 오라는 곳은 없어도 갈 곳은 참 많았겠구나. ―――――――――――――――――――――――――――――― 김기택 1957년 경기도 안양 출생. 1989년 『한국일보』 등단. 시집 『태아의 잠』 『바늘구멍 속의 폭풍』 『사무원』 『소』 『껌』 『갈라진다 갈라진다』 등. 〈김수영문학상〉 〈현대문학상〉 〈이수문학상〉 〈미당문학상〉 등 수상. 신발장 거울에 비친 머리 모습을 살펴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정수리 머.. 2018. 6. 16.
서성거림 서성거림 나는 초등학교 교사였고 어느 단체 연구위원을 겸임한 적도 있고 교육부 편수관, 장학관, 교육과정정책과장이었고 두 학교 교장이었습니다. 또 퇴임 후 근 10년 간에는 어느 재단 수석연구위원이었고 어느 출판사 교재개발자문이었습니다. 최근의 그 직책으로 살아온 기간은 말.. 2018. 6. 9.
여기 이 방에는 책이 없다 여기 이 방에는 책이 없다 여기 이 방에는 이젠 내가 읽을 만한 책이 없다. 내 책이 있는 곳, 나는 그곳으로 가야 한다. 2018. 5. 31.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1 살아온 시간을 선(線)으로 나타내면 나는 그 선의 어디쯤에 있을지, 남은 선은 어느 정도일지 궁금했습니다. 2 그 선 위를 나는 어떤 것들을 가지고 걸어가고 있는 것일까, 그런 생각도 했습니다. 돈 몇 푼, 몇 권의 책, 메모지와 볼펜, 때가 되면 구해서 먹어야 할 과일과 밥, 빵, 음료수 같은 것들…… 나와 함께 혹은 내 주변 어디쯤에서 걸어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나는 쓸데없는 것들까지 가지고 있고, 쓸데없는 생각, 쓸데없는 기억과 추억 같은 것들도 가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버리고 싶은데도 붙어서 따라오는 것들도 있습니다. 3 이미 사라진 사람들, 무관해진 사람들, 있었던가 싶은 일들, 괜히 자꾸 생각하게 되는 일들, 그런 것들에 대한 누추한 기억…… 그런 걸 생각하면, 그런 것들을 쓰레기 봉투에.. 2018. 5. 21.
꽃잎 털어버리기 1 꽃잎이 떨어집니다. 저렇게 무너집니다.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2 떨어지는 꽃잎이 성가신 사람도 있습니다. 참 좋은 곳인데 그곳 청소를 맡은 분이 보는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걸 확인하고 빗자루로 아예 아직 떨어지지도 않은 꽃잎까지 마구 털어버렸습니다. '참 좋은 곳'이어서 그 여성도 참 좋은 분 같았는데 그 순간 그녀가 미워졌습니다. 그녀를 떠올릴 때마다 괜히 '악녀' '마녀' '해고(解雇)'(아무래도 이건 아니지? 그럼 '경고'! 경고도 심하다면 '주의'!) 같은 단어들까지 떠올라서 속으로 미안하기까지 했습니다. 연전에는 단풍이 든 잎을 길다란 빗자루로 털어버리는 사람들을 본 적도 있습니다. 빗자루를 들었으니 그들은 그걸 "청소"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3 그녀는 지금 그렇게 한 걸 후회하고 있.. 2018. 5. 19.
정신 건강을 위한 열 가지 충고 1 병원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식탁에 깔린 종이에 "정신 건강을 위한 열 가지 충고"가 적혀 있었습니다. 그 '충고'를 하나하나 들여다보았습니다. 1. 정당한 비판이라면 받아들이는 객관성을 가져라 2. 대인관계를 원만히 하는 기술을 익혀라 3. 책임을 회피하지 말고 부딪혀라 4. 관심분야를 넓혀라 5. 여가를 선용하라. 권태와 단조로움으로부터 벗어나라 6. 계획을 세워 행동하라 7. 분노와 좌절감이 들 때 건설적인 배출 방법을 찾아라 8. 머리가 복잡할 때는 격렬한 운동을 해라 9. 어쩔 수 없는 상황은 빨리 받아들여라 10. 먼저 감사의 조건을 찾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이 '충고'를 만든 사람을 만난다면 "왜 열 가지인가?" "왜 이 순서인가?" (특히) "누구에게나 그런 것인가?" …… 몇 가지 기.. 2018. 5. 17.
식욕 식욕(食慾) 제대로 알고나 먹든지 말든지 하라는 경고 1 세상이 좋아진 것을 주로 미증유의 생활수준으로 이야기하고, 더 구체적으로는 대개 식생활을 들어 "먹고살 만하니까 까분다"고도합니다. 그런 관점에 혐오감을 느낄 때도 있어서 다소 덜 먹더라도 사리분별을 더 중시할 때도 있어.. 2018. 5. 13.
내일(來日) 내일(來日) 20일 후…………, 2주일 후, 1주일 후, 3일 후, 이틀 후, 내일! (2018.5.10.) 그 "내일"이 오늘이었다. 오늘은 그런 날이었다. 서글픈 것이긴 하지만, 이 삶의 축약판이 '오늘'이 되는 것이지 싶었다. 해거름에 우리는 이렇게만 지낼 수 있어도 괜찮겠다고 했다. (2018.5.11.) 2018. 5. 10.
작은 일들 작은 일들 세상의, 큰일들을 생각하고 말하던 때를 반성합니다. 목청을 높여 전하고 큰 글씨로 전하는 그 큰일에 마음을 둘 힘이 사라진 것 같습니다. 텔레비전이나 신문 없이 살기가 쉽진 않지만 스스로 그런 일들에 마음 두지 않기로 하고 작은 일들이나 걱정하기로 하였습니다. 그 작.. 2018. 5.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