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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서성거림

by 답설재 2018. 6. 9.






서성거림











  나는 초등학교 교사였고

  어느 단체 연구위원을 겸임한 적도 있고

  교육부 편수관, 장학관, 교육과정정책과장이었고

  두 학교 교장이었습니다.


  또 퇴임 후 근 10년 간에는 어느 재단 수석연구위원이었고

  어느 출판사 교재개발자문이었습니다.


  최근의 그 직책으로 살아온 기간은 말고

  교육행정기관에서 근무한 세월도 말고


  세상모르는 '교사'였을 때,

  무슨 눈치 볼 일이 있어도 그렇거나 말거나 혼신의 힘으로 살던 그때 그 학교에서

  날 찾거나

  아직도 나를 기다릴지도 모른다는

  어렴풋한 느낌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느낌일 뿐입니다.

  그럴 리 없다는 것쯤은 분명히 압니다.

  날 찾거나 부를 리 없고

  내가 떠나온 것처럼 그때 그 사람들도 모두들 뿔뿔이 흩어지고 사라졌다는 것만 생각해봐도 당연한 일입니다.


  이건 그때의 지긋지긋한 일들 때문일 수도 있고

  그게 잡다한 것이긴 하지만 그 당시로는 늘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들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그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할지라도 나로서는 아쉬움을 남긴 인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나는 아직까지도 더러 연락을 하는 그 아이들에게조차

  이런 얘기를 꺼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이건, 말하자면 '멍' 때릴 때뿐이고

  실제로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애들에게 멍 때리는 이야기를 뭐 하려고 하겠습니까?

  "그때 그 담임, 마침내(혹은 비로소)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

  저희들끼리 모여서 잘 됐다며 그러고도 남을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이런 얘기는 다 필요 없는 얘기입니다.

  잠시 서성거리며 하고 지나갈 얘기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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