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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by 답설재 2018. 5. 21.

 

2018.5.21. 횡성

 

 

 

 

    1

 

  살아온 시간을 선(線)으로 나타내면 나는 그 선의 어디쯤에 있을지, 남은 선은 어느 정도일지 궁금했습니다.

 

 

    2

 

  그 선 위를 나는 어떤 것들을 가지고 걸어가고 있는 것일까, 그런 생각도 했습니다. 돈 몇 푼, 몇 권의 책, 메모지와 볼펜, 때가 되면 구해서 먹어야 할 과일과 밥, 빵, 음료수 같은 것들……

  나와 함께 혹은 내 주변 어디쯤에서 걸어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나는 쓸데없는 것들까지 가지고 있고, 쓸데없는 생각, 쓸데없는 기억과 추억 같은 것들도 가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버리고 싶은데도 붙어서 따라오는 것들도 있습니다.

 

 

    3

 

  이미 사라진 사람들, 무관해진 사람들, 있었던가 싶은 일들, 괜히 자꾸 생각하게 되는 일들, 그런 것들에 대한 누추한 기억……

 

  그런 걸 생각하면,

  그런 것들을 쓰레기 봉투에 담아 버리게 되면,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전화번호를 과감히 정리하듯 툴툴 털어버리면,

  나라는 사람에게는 과연 무엇이 얼마나 남게 될까…… 남는 것이 초라하여 얼마나 보잘것없는 상태가 될까 싶고,

  내가 생각하는 나, 혹은 남들이 생각하는 나는 결국 대부분 쓰레기 같은 것으로 이루어진 것이어서

  햇살이 비치면 흔적없이 녹아버릴 눈사람 같은,

  손을 내저어도 잡히지도 않을 '허상(虛像)' 같은 것이 서성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그런 허상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4

 

  그래서 차를 가지고 두어 시간쯤 나가보았습니다.

  거기까지 따라오는 것들도 있었지만, 저 풍경들을 바라보며 어쩔 수 없이 달라붙는 그것들을 모른 체하면 아무래도 좀 가벼웠습니다.

  그걸 실험해본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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