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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꽃잎 털어버리기

by 답설재 2018. 5. 19.

 

 

 

 

 

 

1

 

꽃잎이 떨어집니다.

저렇게 무너집니다.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2

 

떨어지는 꽃잎이 성가신 사람도 있습니다.

참 좋은 곳인데 그곳 청소를 맡은 분이 보는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걸 확인하고 빗자루로 아예 아직 떨어지지도 않은 꽃잎까지 마구 털어버렸습니다. '참 좋은 곳'이어서 그 여성도 참 좋은 분 같았는데 그 순간 그녀가 미워졌습니다.

그녀를 떠올릴 때마다 괜히 '악녀' '마녀' '해고(解雇)'(아무래도 이건 아니지? 그럼 '경고'! 경고도 심하다면 '주의'!) 같은 단어들까지 떠올라서 속으로 미안하기까지 했습니다.

 

연전에는 단풍이 든 잎을 길다란 빗자루로 털어버리는 사람들을 본 적도 있습니다. 빗자루를 들었으니 그들은 그걸 "청소"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3

 

그녀는 지금 그렇게 한 걸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그걸 확인하려면 그녀가 그 마음을 고쳤다는 걸 두 눈으로 보려면, 봄이 다시 와서 그 나무의 하얀 꽃이 다시 안개처럼 피어올라야 할 텐데 그러자면 또 일 년이라는 세월이 흘러야 합니다.

일 년……

나는 충분히 기다릴 수 있지만 그녀가 정말 그 마음을 고쳤을지 그렇지 않다면 일 년이라는 결코 짧지는 않은 그 시간에 그녀가 그 마음을 충분히 고칠 수 있을지 치료를 받지 않고도 스스로 고칠 수 있을지 그게 문제일 뿐입니다.

 

다른 방법이 없진 않습니다. 그녀가 있는 '참 좋은 그곳'의 대표가 그녀에게 '주의'를 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건 보나 마나 아주 복잡하고 귀찮은 일이고 그녀가 무슨 근무 규정 같은 것에 저촉되는 일을 하지 않으면 '주의'의 조건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며 더구나 꽃을 털어버린 일이 과연 규정에 저촉되는 건지 의문일 뿐만 아니라 그 장면을 본 사람조차 나뿐이었므로 이 일로 그녀가 주의를 받을 까닭은 전혀 없을 것입니다.

 

 

 

4(餘談)

 

나는 전직 교사였기 때문에 학교에 관한 경험밖에는 할 이야기가 별로 없습니다.

내가 교사로 처음 발령받아 근무한 학교 교장은 엄청나게 무서웠습니다. 그런데다가 학교 뒤뜰 청소구역이 우리 반인 것이 두려운 일이라는 건 뒤늦게 그해 가을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으므로 어떻게 손을 쓸 겨를도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내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한두 명이 남아서 어둑어둑할 때까지 무시로 떨어지는 낙엽을 줍고 있었고, 그렇게 하는 걸 당연한 일로 여겼습니다.

내가 마지못해 그 뒤뜰에 '사색의 뜰'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낙엽을 치우지 못하게 했을 때 선생님들은 틀림없이 벼락이 떨어질 걸로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그 벼락이 떨어질 것은 다만 시간 문제일 뿐이라는 표정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우상(偶像) 김위복 교장선생님께서는 끝내 아무 말씀을 하시지 않으셨고 선생님들은 한동안 '참 이상하다'고들 하다가 마침내 실망스러워 했습니다.

 

그 가을, 교육청 이철하 장학사가 나와서 그 '사색의 뜰'을 내다보며 "나뭇잎 하나만 떨어져도 곧 치우는 학교가 대부분인데, 낙엽이 쌓인 이 학교의 뒤뜰은 참 푸근한 느낌을 준다"고 한 것은 더욱 의아하고 신기한 일이어서 그런 평가(!)를 제대로 이해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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