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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노년일기304

돌연 가을? 돌연 가을? 8월 15일, 한 달 가까이 계속된 열대야에 시달리며 "이 무더위는 아직 언제까지일지 모른다"는 이야기에 기가 막혔는데 웬걸, 이튿날부터는 기온이 사정없이 내려가서 만나는 사람마다 즐거움이 담긴 표정, 시원한 느낌이 스민 음성으로 "살 만하다!" 했고, 이번엔 무슨 거창한 .. 2018. 8. 26.
행복하세요! 유럽 사람의 눈에는 미국의 문화가 인간에게 '행복하기를' 끊임없이 강요하고 명령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행복은 얻으려고 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의 결과로서 나타나는 것이다. 사람이 행복하려면 '행복해야 할 이유'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일단 그 이유를 찾으면 인간은 저절로 행복해진다. 알다시피 인간은 행복을 찾는 존재가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 내재해 있는 잠재적인 의미를 실현시킴으로써 행복할 이유를 찾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빅터 프랭클)* "엄마, 자요?" 엄마가 가끔 화를 내고, 길을 잃어버리고 내가 누군지 잊어버릴 때도 있지만……. ―릴리아 《파랑 오리》(킨더랜드 2018) 중에서 이 블로그를 하기 전에는 '행복'이란 말을 입에 담아 보지도 못했습니다. 텔레비전 광고에서.. 2018. 8. 21.
릴리아 《파랑오리》 릴리아《파랑오리》 킨더랜드 2018 1 우리 동네 도서관 유아실 옆에 전시되어 있는 그림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파랑 오리의 기억들이 조금씩 도망가기 시작했어요." 나도, 더러 내 기억이 도망가기 시작한 것 같고, 나는 일체 내색을 하지 않고 있긴 하지만 내 짝의 기억들도 도망가기 시작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의 기억은 수십 년 전부터의 모든 것들이 바로 어제 일들처럼 생생해서 들을 때마다 내 피부를 바늘로 콕 콕 찌르는 것 같았는데, 언제부터인지 '저 사람이 오늘은 왜 저러지?' 싶었고, 그게 한두 번이 아닌 것 같았고, 정신 차려 들어보니까 아무래도 두서가 좀 없어진 것 같았습니다. 나는 그가 그렇게 수십 년 전 일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언제나 못마땅했습니다. 피부를 바늘로 콕 콕 찌르듯 하는 걸.. 2018. 8. 10.
커피와 키스 스파게티를 처음 먹어본 건 양재동 어느 이탈리아식 레스토랑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칼국수가 낫겠구나!' 30여 년 전 어느 날이었습니다. 스파게티, 피자, 커피를 파는 저 카페를 열흘이 멀다 하고 드나들게 되었습니다. 일전에는 공교롭게도 낮에는 아이들과, 저녁에는 피자, 스파게티, 샐러드 같은 걸 좋아하는 친구와 함께, 두 번이나 드나들기도 했으니 이젠 스파게티를 칼국수와 비교하는 건 무의미한 일이 되었습니다. "커피는 아침에 키스와 함께" 저 지도의 태평양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처음엔 그게 보이지 않았는데 그걸 발견한 후로는 갈 때마다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커피는 아침에 키스와 함께" '아침에 키스를 하며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 많겠지? 어떤 사람들일까?' 사과와 요구르트, 고구마, 커피 같은.. 2018. 8. 8.
꽁냥꽁냥 절대 금지 "음식물 반입은 안 돼요." ('알았고') "퇴실 시 꼭 책상 전등 꺼주세요." ('됐고') "책상이나 벽에 낙서하지 마세요." ('아, 그럼!') "나가실 때 발급기에서 '퇴실처리' 해주세요.(안하시면 다음 이용 시 불이익)" ('알았고') "핸드폰은 진동/무음&통화는 4층 하늘쉼터에서 조용히" ('요주의!!!') "꽁냥꽁냥♥ 애정행각&잡담 절대 금지! (^^ 아무리 보기 좋아도 여기선 아니지, 그럼! 그런데 가만있어 봐봐. 꽁냥꽁냥이 뭐지?' 꽁냥꽁냥이라…… 음, 여기 있구나. 부사 (1) 연인끼리 가볍게 스킨십을 하거나 장난을 치며 정답게 구는 모양. "걸을 때 신발 끌지 마세요(하이힐 × 뒤꿈치 UP)" ('에이, 시시해!') "쓰레기는 복도 휴지통에 버려주세요(음료수캔, 지우개가루)" ('에이,.. 2018. 8. 6.
이 무더위가 지나면 이 무더위가 지나면 이 여름의 더위를 다행히 "죽겠다, 죽겠다" 하지 않고, 책을 읽느라고 고개를 숙이고 있어 목에 거무튀튀하게 땀띠가 나고 또 나고 하는데도 그런 말 하지 않고, 누구를 원망하지도 않고 지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칠십여 년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지만, 이제 이 더위.. 2018. 8. 2.
"개사랑합니다!" 1 '존나(졸라)' 이야기를 쓰고 난 다음 "우리말 123"이라는 사이트에 '개○○'에 대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는 걸 봤습니다. 우리말에서 '개'는 앞가지(접두사)로 쓸 때 세 가지 뜻이 있습니다. 1. (일부 명사 앞에 붙어) '야생 상태의' 또는 '질이 떨어지는', '흡사하지만 다른'이라는 뜻으로 개금, 개꿀, 개떡, 개먹, 개살구, 개철쭉처럼 씁니다. 2. (일부 명사 앞에 붙어) '헛된', '쓸데없는'이라는 뜻으로 개꿈, 개나발, 개수작, 개죽음처럼 씁니다. 3. (부정적 뜻을 가지는 일부 명사 앞에 붙어) '정도가 심한'이라는 뜻으로 개망나니, 개잡놈처럼 씁니다. '개좋다'는 아마도 '무척 좋다'는 뜻인 것 같은데, '개'가 부정적 뜻을 가지는 일부 이름씨(명사) 앞에 붙어 '정도가 심.. 2018. 7. 29.
"꽃밭은 있습니까?" "꽃밭은 있습니까?" 문득 6·25 전쟁 전후쯤, 헐벗고 굶주리던 그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우리는, 나는, 우리가 그렇게, 헐벗고 굶주리는 줄도 모른 채 살았습니다. 그렇게 살았던 것인데도 집집이 채송화, 백일홍, 분꽃, 붓꽃, 나리꽃, 달리아, 맨드라미, 목단, 해바라기, 들국화, 홍초 같은 .. 2018. 7. 23.
퇴고 2018.7.12. 블로그에 실어두면서도 그런 내용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이 있을 수밖에 없으면 읽는 사람이 적었으면 싶은 글이 있고, 일반적으로는 읽어도 그만 읽지 않아도 그만인 글들이다. 이에 비해 '왜 이렇게도 읽지 않을까?' 싶은 글도 있다. 대체로 쓰기는 어렵고(그만큼 애를 쓴다는 의미가 되기도 하지만) 일쑤 따분해서 읽기는 어려운 글이 그렇다. 오늘도 신문사에 논단 원고를 보냈다. 무더위 속에 원고를 쓰고 고치고 하면서 몇 번을 졸았는지 모른다. 그렇긴 하지만 윤문은 겨우 여남은 번밖에 하지 못했다. 이런 글 중에는 아마도 마흔 번, 쉰 번은 읽으며 수정하고 또 수정한 경우도 있다. 그러면 뭘 하나, 열 번 고치면 뭘 하고 쉰 번 고치면 뭘 하나……. 이렇게 읽고 고치고 또 읽고 고치고 해서 마.. 2018. 7. 18.
이 행복한 꽃길 웃으시겠지요. '나의 길'입니다. '행복의 길'. 그렇지 못한 날도 있겠지요? 그런 날은 이 생각을 떠올릴 것입니다. 함께 내려가고 올라옵니다. 이야기하며 걷다가 투스텝으로 뛰어가면 부지런히 뒤따라갑니다. 힘들다고 하면 '그 참 잘 됐다!'며 얼른 어부바를 합니다. 물론 우리의 소지품도 내가 다 든 채입니다. 저 꽃 터널 사진을 보다가 그렇게 오르내리는 우리의 모습을 그려보았습니다. 그런 장면을 누가 봐도 볼 텐데 그렇게 하면서도 부끄럽거나 쑥스럽진 않습니다. 나는 어쩔 수가 없는 인간입니다. 업혀서도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내가 힘들다고 할까 봐 걱정은 하지만 내색은 하지 않습니다. 그냥 나를 자꾸자꾸 불러줍니다.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는 날은 점점 줄어들겠지요. 그게 아쉽습니다. 그러나 그러면 또 .. 2018. 7. 11.
로버트 풀검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로버트 풀검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All I Really Need to Know, I Learned in Kindergarten 박종서 옮김|김영사|1989 사월 어느 날, 열매가 달리는 걸 들여다보고 있는데 누군가 지나가다가 가르쳐주었습니다. "블루베리예요." "아, 예."('아하! 이게 바로 블루베리구나!') 아침에 자주 먹는 그 블루베리의 정체를 알게 되었습니다. 유치원 뜰에서였습니다. 그때 나는 뜻있게 사는 데 필요한 것은 거의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이며 그렇게 복잡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 내 신조는 이렇다.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에 관해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을 나는 유치원에서 배웠다. 지혜는 대학원이.. 2018. 7. 8.
공부 몇 년새 체중이 많이 빠졌다. 피곤하다. 주위에선 책 보지 말고 쉬라고 하지만, 나는 공부를 제대로 못해서 피곤하다고 생각한다. 해서 피곤한 공부는 공부가 아니다. 고통이 되고 숙제가 되는 공부는 공부가 아니다. 시늉만 하는 공부는 공부가 아니다. 즐거운 놀이가 되고 오락이 되고, 말할 수 없이 편안한 휴식이 되는 공부가 공부다. 나를 살아나게 하고, 긴장하게 하고, 숨막히게 하는 공부가 공부다. 일전에 읽은 『스승의 옥편』(정민)에서 본 글입니다. 부럽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는 아마도 돈 다음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 중 한 가지가 공부가 아닐까 싶습니다. "공부해서 남 주자" "공부 좀 해라" "공부를 잘해야지"……. 공부에 관한 그런 관심을 열거하거나 설명하는 건 필요하지도 않거.. 2018. 7.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