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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행복하세요!

by 답설재 2018. 8. 21.

유럽 사람의 눈에는 미국의 문화가 인간에게 '행복하기를' 끊임없이 강요하고 명령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행복은 얻으려고 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의 결과로서 나타나는 것이다. 사람이 행복하려면 '행복해야 할 이유'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일단 그 이유를 찾으면 인간은 저절로 행복해진다. 알다시피 인간은 행복을 찾는 존재가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 내재해 있는 잠재적인 의미를 실현시킴으로써 행복할 이유를 찾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빅터 프랭클)*

 

 

 

 

 

"엄마, 자요?"

엄마가 가끔 화를 내고, 길을 잃어버리고 내가 누군지 잊어버릴 때도 있지만…….

 

                                                                                              ―릴리아 《파랑 오리》(킨더랜드 2018) 중에서

 

 

이 블로그를 하기 전에는 '행복'이란 말을 입에 담아 보지도 못했습니다.

텔레비전 광고에서 "행복하세요!"라고 하는 걸 보고 기이하다 여겼고, 그즈음 문자 메시지를 이용한 설날 인사에서 '행복 운운' 하는 걸 보고도 '아, 이런 사람도 있구나! 이런 사람을, 이미 나와는 비교가 불가능한 이 사람을 내가 그동안 가볍게 여겼구나!' 했을 뿐이었습니다.

'촌놈'이어서였을까요?

 

블로그 댓글란에서 더러 "행복한 주말"이란 말을 보면서도 이쪽의 답글에선 차마 그 말을 하지 못했는데 그러니까 저쪽에서는 그렇게 고급진 기원을 해주는데 이쪽은 아주 헐한 인사밖에 하지 못하는 결례를 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함을 느끼게 되었고, 언젠가부터는 '에라, 모르겠다!' 싶어서 곧잘 나도 "행복한 주말" 어떻고 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나저나 이 블로그를 찾는 사람들이 불행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행복한지 불행한지 알쏭달쏭할 필요도 없습니다. 행복하면 행복할수록 좋은 일인 건 분명합니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아니고―이 블로그를 찾았으니 모르는 사람들이라 해도―그 사람들이 행복해진다고 해서 이쪽에서 손해를 볼 일도 없고, 더구나 저쪽에서 먼저 내가 행복하기를 바라는데 왜 굳이 그 행복을 뿌리치듯 해야 하겠습니까?

 

다만 그동안 '행복'이란 것에 대해 우선 여러 가지 면에서 남루하기 짝이 없는 입장에서는 당연히 눈부셔서 함부로 입에 담을 수 없는, 감히 그런 경망스러운 짓을 해서는 안될 것 같은, 나를 '바라본' 가족들에겐 너무나 미안한 일이지만 이렇게 허접한 꼴을 한 인간으로서는 어쩌면 태생적으로 어쩔 수가 없는, 높디높은 권위와 부, 철학, 품격, 문화…… 같은 여러 가지 요소들의 대부분을 상당한 수준으로 갖추어야 비로소 그 주변에서 "행복한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 아닐까, 어렴풋이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온 것인데, 사실은 그렇지도 않은 것이 사실이라면 그 또한 허망한 일이어서 그런 면에서도 좀 실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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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Man's Search for Meaning》(이시형 옮김, 청아출판사 2005), 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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