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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돌연 가을?

by 답설재 2018. 8. 26.






돌연 가을?










  8월 15일, 한 달 가까이 계속된 열대야에 시달리며 "이 무더위는 아직 언제까지일지 모른다"는 이야기에 기가 막혔는데 웬걸, 이튿날부터는 기온이 사정없이 내려가서 만나는 사람마다 즐거움이 담긴 표정, 시원한 느낌이 스민 음성으로 "살 만하다!" 했고, 이번엔 무슨 거창한 태풍이 온다고 해서 그 바람이 불어올 방향의 창에 넙적한 테이프를 죽― 죽― 붙여놓고 그 두꺼운 유리창이 마치 종이처럼 휘어질 정도로 부는 바람에도 악착같이 견뎌내는 모습을 아내에게 기세 좋게 보여줄 참이었는데 이것도 웬걸, 곳에 따라서는 심했다지만 왔는지 갔는지도 모른 채 간혹 시시한 바람만 불다 말다 해서 '뭐 이런 태풍도 있나?' 오히려 미련을 가진 채 자주 그 테이프 때문에 어수선한 창문들을 바라보며 날이 새고 날이 저물도록 기다렸더니 내가 무안해할까 봐였는지 그런 일에는 손도 대지 않던 아내가 손수 죽― 죽― 그 테이프를 떼어내 버렸었다.


  이러므로 그 치열한 무더위, 열대야, 태풍 따위도 사실 지나고 나면 별 볼 일 없는 것이다.


  섭섭하다.

  간혹 빗방울 듣는 소리가 들리는 오늘 밤은 이미 가을인 듯 서늘하여 심사조차 울적하다.

  열대야가 지난 지 겨우 열흘 정도가 아닌가.

  또 그 열흘이 그 이전에 비해 얼마나 속절없이 지나갔는가.

  시간이란 것이 한여름에 비해 이토록 빠르게 흘러버린다면 무슨 수로 감당하겠는가.

  이것저것 챙겨볼 겨를도 없이 가버리니까 괜히 너무 많이 가져가 버린다는 느낌이지 않은가.

  이런 식으로 가져가 버리면 남아나는 것이 있기나 하겠는가.

  이렇게 해서야 사람이 어떻게 견뎌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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