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사람의 눈에는 미국의 문화가 인간에게 '행복하기를' 끊임없이 강요하고 명령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행복은 얻으려고 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의 결과로서 나타나는 것이다. 사람이 행복하려면 '행복해야 할 이유'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일단 그 이유를 찾으면 인간은 저절로 행복해진다. 알다시피 인간은 행복을 찾는 존재가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 내재해 있는 잠재적인 의미를 실현시킴으로써 행복할 이유를 찾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빅터 프랭클)*
"엄마, 자요?"
엄마가 가끔 화를 내고, 길을 잃어버리고 내가 누군지 잊어버릴 때도 있지만…….
―릴리아 《파랑 오리》(킨더랜드 2018) 중에서
이 블로그를 하기 전에는 '행복'이란 말을 입에 담아 보지도 못했습니다.
텔레비전 광고에서 "행복하세요!"라고 하는 걸 보고 기이하다 여겼고, 그즈음 문자 메시지를 이용한 설날 인사에서 '행복 운운' 하는 걸 보고도 '아, 이런 사람도 있구나! 이런 사람을, 이미 나와는 비교가 불가능한 이 사람을 내가 그동안 가볍게 여겼구나!' 했을 뿐이었습니다.
'촌놈'이어서였을까요?
블로그 댓글란에서 더러 "행복한 주말"이란 말을 보면서도 이쪽의 답글에선 차마 그 말을 하지 못했는데 그러니까 저쪽에서는 그렇게 고급진 기원을 해주는데 이쪽은 아주 헐한 인사밖에 하지 못하는 결례를 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함을 느끼게 되었고, 언젠가부터는 '에라, 모르겠다!' 싶어서 곧잘 나도 "행복한 주말" 어떻고 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나저나 이 블로그를 찾는 사람들이 불행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행복한지 불행한지 알쏭달쏭할 필요도 없습니다. 행복하면 행복할수록 좋은 일인 건 분명합니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아니고―이 블로그를 찾았으니 모르는 사람들이라 해도―그 사람들이 행복해진다고 해서 이쪽에서 손해를 볼 일도 없고, 더구나 저쪽에서 먼저 내가 행복하기를 바라는데 왜 굳이 그 행복을 뿌리치듯 해야 하겠습니까?
다만 그동안 '행복'이란 것에 대해 우선 여러 가지 면에서 남루하기 짝이 없는 입장에서는 당연히 눈부셔서 함부로 입에 담을 수 없는, 감히 그런 경망스러운 짓을 해서는 안될 것 같은, 나를 '바라본' 가족들에겐 너무나 미안한 일이지만 이렇게 허접한 꼴을 한 인간으로서는 어쩌면 태생적으로 어쩔 수가 없는, 높디높은 권위와 부, 철학, 품격, 문화…… 같은 여러 가지 요소들의 대부분을 상당한 수준으로 갖추어야 비로소 그 주변에서 "행복한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 아닐까, 어렴풋이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온 것인데, 사실은 그렇지도 않은 것이 사실이라면 그 또한 허망한 일이어서 그런 면에서도 좀 실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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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Man's Search for Meaning》(이시형 옮김, 청아출판사 2005), 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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