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보기의 즐거움774 프리드리히 A. 하이에크 《노예의 길》 프리드리히 A. 하이에크 《노예의 길》김이석 옮김, 나남 2006 책 제목을 들었을 땐 흑인노예가 생각났었다. 책을 찾아 들고서 비로소 제목 바로 아래의 부제 '사회주의 계획 경제의 진실'을 발견했다.오래전《소유냐 존재냐》(에리히 프롬)라는 책의 첫머리를 보고 '어떻게 이런 문장이 있을 수 있나!' 감탄했던 것처럼 이 책의 결론 부분을 보고 '하이에크는 이 문장을 몇 번이나 윤문(潤文)했을까?' 생각했다.그 결론의 뒷부분을 옮겨 썼다. 인간의 어리석음으로 만들어졌던 우리의 길을 막았던 장애물들을 제거하고, 개인들을 '지도'하고 '명령'하기 위한 또 다른 기구를 고안하기보다는 개인의 창의적 에너지를 분출하도록 놓아두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우리가 더 나은 세상을 건설하고자 한다면, 이것이 어떤 .. 2024. 8. 8. 여자 : 부정한, 잊을 수 없는, 구원의 우리들은 성스러운 땅에 발을 디뎠다. 선창가에 서서 기다리던 수사들은 손님 가운데 남자 옷을 입은 여자가 숨어 있지는 않은지 찾으려고 배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하나씩 능숙한 눈으로 살펴보았다. 성산이 성모에게 봉헌된 이후로 천 년 동안 어떤 여자도 이곳에 발을 디디거나, 여자의 숨결이 공기를 더럽히거나, 심지어는 양이나 염소나, 닭이나, 고양이 따위 짐승의 암컷들도 발을 들여놓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대기에는 오직 남성의 숨결만 섞였다.(267)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친구 앙겔레스와 함께 배를 타고 아토스 산으로 들어가는 길이다.이런 의문을 가지는 것조차 불경할까? 성모는 여자가 아니었나? 나는 성모가 여자인지 남자인지, 아니면 여자도 아니고 남자도 아닌지조차 모른다.그러므로 "여자의 숨결이 공기를 더럽히.. 2024. 8. 3. 니코스 카잔차키스 《영혼의 자서전》 (상) 니코스 카잔차키스 《영혼의 자서전》 (상)안정효 옮김, 열린책들 2021 많은 책들이 오랫동안 남아 읽히는 것 같아도 곧장 쓰레기가 되고 사라지는 책은 그 몇십 몇백 배가 되지 않을까 싶다. 웬만한 책은 다 그렇지만 특히 자서전은 대부분 '거의 바로' 쓰레기가 되는 것 같다. 자유당 정권이 몰락하고 군사정권이 수립되었을 때 교사가 되었는데, 학교에서는 자료실 관리, 도서실 관리, 서무와 경리(그때는 행정실이 없었지) 등 아무도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일들은 모두 나에게 맡겼다. 덕분에 나는 일요일도 없이 학교에 살다시피 했다.책은 좋은 것이어서 어느 일요일 오전, 오늘은 도서실 정리나 해볼까 싶어 이 책 저 책을 들었다 놨다 하다가 이승만 대통령 자서전(평전이었던가?)을 발견했다. 표지를 넘기자.. 2024. 7. 30. 장세련 《살구나무 골대》 장세련 《살구나무 골대》조혜정 그림, 연암서가 2024 전원주택을 지어 시골로 내려가 사는 은우네 삼대(三代) 이야기다. 삼대 이야기지만 사실은 주요 등장인물은 은우와 동생 은한이(표지화에도 나오는 저 아이들), 할머니와 할아버지이고, 아빠와 엄마는 기꺼이, 자연스럽게 엑스트라가 되고 있다. 책을 읽는 내내 미소를 지었다. 날씨도 그렇고 뉴스도 그렇고(웬 뉴스를 어떤 방송은 거의 하루종일 전하고 있다. 질리지도 않나...) 짜증 나기 딱 좋은데 이 책을 들고 있는 동안에는 무슨 마취제를 맞은 것처럼 '행복'해서 차라리 남은 시간에는 동화나 자꾸 읽을까 싶기도 했다. 일화는 은우네 살구나무를 소재로 이어진다. 살구나무꽃이 피어 살구를 다 딸 때까지. 특별한 일도 아닌, 당연한 이야기들인데도 신선하.. 2024. 7. 28. 여자들에 대한 또 다른 욕망이 놓아주지 않아서 왕관을 벗어 버리고 이곳에 숨어 수도자 생활을 하려던 열망을 지녔던 비극의 황제 니키포로스 포카스가 건설했다는 유명한 대수도원 라브라스를 어서 보고 싶어서 우리들은 날이 밝자마자 길을 떠났다. 여자들에 대한 또 다른 욕망이 놓아주지 않아서 황제는 속세를 떠날 날을 자꾸만 뒤로 미루고 다시 미루면서 기다렸다. 그러다가 결국 가장 신임했던 친구가 칼을 들고 찾아와서 그의 목을 베어버렸다. 이럴 수가 있나...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를 쓴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영혼의 자서전 ㊤ 》(나의 벗 시인─아토스 산)에 나온 이야기다. 니키포로스 포카스 황제가 아직 젊었던가? 그랬다면, 좀 더 살아보고 나중에 결정해도 좋았을 일을... 그렇게 미련을 둘 일도 아니었건만... 혹 모르는 일이긴 하지. 다 늙어빠져서도 성.. 2024. 7. 24. 박두순 동시집 《칼의 마음 》 박두순 동시집 《칼의 마음 》청색종이 2024 오랜만에 나온 설목의 동시집이 '왈칵' 어린 시절을 불러왔다. 프로필에는 문학활동만 나타내고 있지만 그가 초등학교 교사 출신이어서 그럴까? 책갈피를 펼쳐 책이라고는 교과서와 여름·겨울 방학생활뿐이었던 그때처럼 잉크 냄새를 맡아보았다. 이 굴곡진 삶에 위안을 주는 것들을 찾아보면 '세상의 돈'만큼은 아니겠지만 간단히 열거할 수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무상의 것이라면? 하늘? 구름? 바람? 바다? 음악? 시냇물?...詩는? 시는 무상의 것일까? 불쌍한 로봇 로봇이 태어나 보니사방에 많은 사람이 빙 둘러서 있다박수를 치며 좋아했다그런데!아무리 둘러보아도엄마가 없다엄마, 불러 보고 싶은데엄마, 울어 보고 싶은데예쁜 우리 아기라고 불러 주는엄마.. 2024. 7. 15. 그 시절 그 시절에는 세월이 느릿느릿 무료하게 흘러갔다. 사람들은 신문을 읽지 않았고, 라디오와 전화와 영화는 아직 발명되지 않았으며, 삶은 말없이 진지하게 띄엄띄엄 이어져 나갔다. 사람들은 저마다 폐쇄된 세계를 이루었고, 집들은 모두 빗장을 걸어 잠가 두었다. 집은 어른들은 날마다 늙어 갔다. 그들은 남들이 들을까 봐 조용조용 얘기하며 돌아다녔고, 남몰래 말다툼을 하며, 소리 없이 병들어 죽었다. 그러면 시체를 내오려고 문이 열렸으며, 네 벽이 잠깐 동안 비밀을 드러냈다. 그러나 문은 곧 다시 닫혔고, 삶은 다시금 소리 없이 이어졌다. "영혼의 자서전"(Report to Greco, 니코스 카잔차키스 ㊤)의 그 시절. 지나간 날은 어쩔 수 없다. 그 시절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에도 있었고, 세상 그 어디.. 2024. 7. 15. 정세구 《탐구수업》 & 주입식 교육에 대한 나의 투쟁 정세구 《탐구수업》 배영사 1977 세상에는 좋은 책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도 읽은 걸 또 읽고 또 읽어서 마침내 외워야 한다는 건 도저히 마음에 들지 않고 받아들이기 싫고 지극히 싫증나는 일이었다. 그러니 그 시절엔들 대학에 들어갈 수가 있었겠나.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친구의 권유로 당시엔 2년 제인 교육대학이라는 데를 들어가게 되었다. '가르치는 걸 배우는 학교? 그렇다면 뭘 좀 배울 수 있으려나?' 그런데 웬걸, 그중에서도 과학수업을 가르치는 교수라는 이가 완전 ○○○였다. 멀쩡한 교재를 두고 첫 시간부터 받아쓰기를 시키면서 이걸 암기해서 시험지에 써야 한다고 깨 놓고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당장 볼펜을 놓고 그를 바라보았다. '당신이 교수라고?'나는 다른 교수들로부터는.. 2024. 7. 10. 《訓民正音》(영인본) 《訓民正音》 辭書出版社 1967(영인본) 우리 국어 선생님께서 '용비어천가'를 낭독하셨던 그 좋은 날들을 생각하니까 '훈민정음 서문'도 생각났다.1967년에 나온 영인본을 꺼내보았다. 지금 보니까 표지의 제목조차 비뚤게 붙었다. 원본도 아닌데 이미 표지는 표지대로 본문은 본문대로 낱장이 되어버렸다. 하기야 그조차 57년이 지났으니 그럴 만도 할 것이다. 선생님은 이런 글은 아이들더러 읽어보라고 하시지 않았다. 미소를 띠고 다짜고짜 선생님께서 몇 번이고 낭독하셨다.그때 선생님은 교과서에 실린 언해본 원문을 읽어주셨는데 어떻게 읽으셨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는다. 그렇지만 60년간 나는 더러 선생님께서 낭독해주신 그 원문을 상기해보곤 했다.'나무위키' 같은 곳에는 정확한 내용이 나와 있지.. 2024. 7. 9. 정인지 외 《용비어천가 龍飛御天歌》 정인지 외 《용비어천가 龍飛御天歌》이윤식 옮김, 솔 1997 한학(漢學) 공부 좀 할 걸 하고 '엉뚱한' 생각을 할 때가 있었다. 정치인들이 사자성어나 고사, 옛 문헌의 한 구절 혹은 어떤 단어를 들어 남을 헐뜯을 때다. 그런 걸 인용해서 덕담을 하는 경우는 보기 어려웠다. 그렇거나 말거나 '저 사람은 그렇게 분주한 생활을 하는데도 한학을 깊이 한 것 같은데 난 뭘 했지?' 한탄을 한 것이다. 얼마 전에는 시경(詩經)을 한번 읽어봤는데 나로서는 아는 척할 때 써먹을 만한 부분을 눈 닦고 봐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이제 책을 읽을 만한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을 것이므로 아는 척할 때 써먹으려고 책을 들여다보는 무모한 짓은 생각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 노릇도 소질이 있어야 하는 건가?' '.. 2024. 7. 6. 아서 프리먼·로즈 드월프 《그동안 당신만 몰랐던 스마트한 실수들》 아서 프리먼·로즈 드월프 《그동안 당신만 몰랐던 스마트한 실수들》10 DUMBEST MISTAKES SMART PEOPLE MAKE AND HOW TO AVOID THEM송지현 옮김, 애플북스 2011 이 책을 10년도 더 갖고 있었다.누가 내게 선물로 주었을까?('답설재는 실수를 좀 하는 편이니까 이 책이 필요할 거야.')나 자신이 실수를 잘하는 걸 자각하고 그걸 좀 방지해 보려고 내가 산 책일까?지금도 읽히나 싶어서 검색해봤더니 '건재'하고 있다('그렇다면 그냥 버릴 순 없지.') 인지치료에 관한 책이다(발췌). 01치킨 리틀 신드롬 유명한 전래동화로 2005년에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된 〈치킨 리틀〉의 주인공 꼬마 닭 리틀은 머리에 도토리를 맞고서 하늘이 무너지는 것으로 착각해 재앙이 일어났.. 2024. 7. 3. 브뤼노 블라셀 《책의 역사》 브뤼노 블라셀 《책의 역사》권명희 옮김, 시공사 2002 도판(사진)이 많아서 읽기에 좋다나는 박사학위논문도 혹 볼 만한 도표나 그림, 사진이 들어 있지나 않을까 싶어서 훌훌 넘겨보고 대부분 실망스러워서 바로 책장 속에 넣어두곤 했다. 컬러판 그림에 가까운 건 면지에 심사한 교수들이 찍은 도장밖에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사실은 소설책을 들고서도 혹 삽화가 있나 싶어서 여기저기 살펴본다.도판이 많은 이런 책은 당장 읽지도 않으면서 일단 사놓았던 것들이다. 제1장 손으로 만든 책(13)제2장 구텐베르크, 논란의 발명자(41)제3장 인쇄술의 승리(69)제4장 검열의 시대(91)제5장 최고의 책(109)기록과 증언(129) 신기한 얘기를 찾으며 읽었다(예). 책을 뜻하는 그리스어 비블리온(bi.. 2024. 6. 30. 이전 1 ··· 3 4 5 6 7 8 9 ··· 6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