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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751

《헤르만과 도로테아》 요한 볼프강 폰 괴테 《헤르만과 도로테아》 지식을만드는지식 2011 "(…) 그 집엔 딸만 셋인데, 그들끼리 재산을 나누어 갖게 될 거야. 내가 아는 바로 첫째 딸은 이미 혼사가 정해졌단다. 둘째와 셋째 딸도 오래 두진 않겠지만, 아직은 데려올 수 있을 게다. 만일 네가 내 입장이라면, 지금까지처럼 우물쭈물 망설이지 않고, 내가 네 어머니를 안아 오듯, 그중 한 처녀를 데려왔을 것이다."(37) 이것이 아버지의 결혼관입니다. 헤르만은 아버지의 뜻과 달리 피난 행렬 속에서 발견한 도로테아를 신붓감으로 데려옵니다. 신부의 모습을 그린 장면입니다. 헤르만은 이 나무 그늘에 마차와 말을 멈추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마차를 세우고서 이렇게 말했다. "어르신들, 이제 내리십시오. 그리고 가셔서 그 처녀에게 제가 청혼.. 2019. 12. 15.
沈復 《浮生六記》 沈復 《浮生六記》 흐르는 인생의 찬가 池榮在 역, 을유문화사 1 이 책을 다시 읽었습니다. 뭘 읽었는지 기억도 없어서 처음 읽은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내가 가진 이 책(1984년, 19판)은 세로쓰기여서 읽기에 힘이 들었습니다. 심복이란 학자가 '부생육기(浮生六記)―흐르는 인생의 찬가'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얘기를 '사랑의 기쁨' '한가롭게 멋지게' '슬픈 운명' '산 넘고 물 건너' '유구국 기행' '양생과 소요' 등 여섯 편으로 쓴 '아름다운 자서전'입니다. 2 '사랑의 기쁨'은 아내 진운(陳芸)에 대한 사랑의 찬가입니다. 앞니 두 개가 약간 내다보이는 점은 관상적으로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의 찰싹 달라붙는 듯한 태도는 사람의 넋을 송두리째 빼앗았다.(13) 옛사람의 이야기인데도 그들의 애틋한 사.. 2019. 11. 23.
장강명 〈한강의 인어와 청어들〉 장강명 〈한강의 인어와 청어들〉 《現代文學》 2019년 11월호 58~83 1 소설의 성격은 참 묘한 것 같았습니다. 뭔가를 가르치려는 기색이 보이기만 하면 정나미가 떨어집니다. 아무리 급하고 긴요하다 해도 소설에서까지 뭔가를 배우고 싶진 않은 것입니다. 일찍이 형편없는 인간인 걸 알아차린 아내가 두어 번 "책을 그렇게나 읽으면서 생각이나 하는 짓거리는 어째 그 모양이냐?"고 힐난한 적이 있는데 그때마다 나는 억울하기만 했습니다. 철학, 역사, 과학 같은 것이, 특히 남녀 간의 사랑 같은 걸 재미있게 써놓은 소설 나부랭이가 내 행동이나 사고방식에 영향을 미칠 리가 없다는 걸 생각하면 정말! 억울해서 아내의 그 핀잔은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억울하다고 하지 그랬느냐고 하겠지만, 그건 하.. 2019. 11. 10.
제이슨 머코스키 《무엇으로 읽을 것인가》 제이슨 머코스키 《무엇으로 읽을 것인가》 김유미 옮김, 흐름출판 2014 1 아마존에서 e리더기 '킨들'을 개발한 사람이 쓴 책이다. 종이책은 사라지고 디지털 책으로 바뀐다, 그것도 몇 년 안에 그렇게 된다는 얘기인데, 그는 종이책이 좋다는 얘기도 많이 하고 있다. 그럴 때는 종이책을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들 약을 올리는 것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가 종이책을 좋아한다는 내용을 모아 보았다. 디지털 음악과 전자책과 다른 미디어만으로 갖춰진 집은 미니멀리스트가 거주할 법한 유치장처럼, 친구나 가족이 살기에는 부적당한 삭막한 곳으로 느껴진다.(88) 화려한 장식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디자인 (…) 종이책 표지에는 그런 매력이 있다.(109) 무엇보다 e-리더는 바삭바.. 2019. 11. 4.
테이아 오브레트 《호랑이의 아내 The Tiger's Wife》 테이아 오브레트 《호랑이의 아내 The Tiger's Wife》 왕은철 옮김, 현대문학, 2011 1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그다음 날 아침부터 40일에 이르는 여정을 시작한다. 그 여정이 시작되기 전날 밤, 영혼은 땀내가 밴 베개에 가만히 누워 살아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손을 잡아주고 눈을 감겨주는 모습을 지켜본다. 또한 문과 창문과 바닥의 틈새로 영혼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사람들이 방 안을 연기와 침묵으로 가득 채우는 모습을 바라본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영혼이 강물처럼 집 밖으로 흘러나가기라도 할 것처럼……. 사람들은 동이 틀 무렵 영혼이 자기들을 떠나 과거에 머물렀던 곳, 즉 젊었을 때의 학교와 기숙사, 근대 막사와 주택, 허물어졌다가 다시 지어진 집들, 그리고 사랑과 회한, 힘들었던 일들과 행복.. 2019. 10. 21.
가브리엘 루아 《내 생애의 아이들》 가브리엘 루아 《내 생애의 아이들》 김화영 옮김, 현대문학 2003 1 16년 전에 읽었는데도 한시도 잊은 적 없는 책입니다. 교육부에 있다가 교장이 되어 나간 학교의 여성 행정실장의 닉네임이 "내 생애의 아이들"인 걸 보고 반가워서 덥석 껴안을 뻔했을 정도였습니다. 『내 생애의 아이들』, 서정적인 이 이야기는 나의 누추했던 교사 시절까지 서정적인 것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가브리엘 루아' 혹은 '내 생애의 아이들'이라는 제목이 떠오르면 곧 처음 발령을 받아 근무한 그 시골 학교가 떠오르고 이 소설의 한 장면을 상기하게 됩니다. 흔히 나는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준비를 다 마치곤 해서, 칠판은 본보기들과 그날 풀어야 할 문제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래서 나는 책상에 가 앉아서 우리 학생들이 나타나기를 기.. 2019. 10. 5.
듀나《아르카디아에도 나는 있었다》 『현대문학』 2019년 8월호(104~199) 이스라엘 히브리대 역사학과 교수 유발 하라리(Harari, 『사피엔스』 등)는 2100년 이전에 나타날 신인류는 "생물학적 한계를 뛰어넘은 신(神)적 존재"가 되며, "21세기 후반의 신인류는 생명을 창조하고, 정신을 통해 가상·증강현실에 접속하며, 신체를 계속 재생해 사실상 불멸에 이른다"고 했습니다. 그는 또 "2100년에 가장 활발히 거래되는 상품은 건강한 뇌, 피, 신체기관이 될 것"이란 전망도 내놓았습니다.1 요즘 그런 소설을 쓰는 작가들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공지능, 가상현실 얘기. 이 소설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눈을 떠보니 천국이었다. 화사하게, 밝지만 눈이 부실 정도는 아닌 사파이어빛 하늘, 솜사탕 모양으로 군데군데 떠 있는 하얀 구름,.. 2019. 9. 26.
기억 혹은 추억 목록 2007.11.1. 실비 지라르데 글, 퓌그 로사도 그림, 이효숙 옮김 《교통안전 이야기, 앗, 조심해!》 비룡소, 2007. 2007.11.17. 디디에 레비 글, 조제 파롱도 그림 《맛있는 냄새가 나요》삼성당, 2006.(교장실) 2007.12.24. 아미 크루즈 로젠달 글, 레베카 도티 그림, 유경희 옮김 《왕짜증 나는 날》 김영사, 2007. 2008.1.23. 알랭 그루세 글, 크리스티앙 오브랭 그림, 이문영 옮김 《우주비행사 초록개미》 삼성당, 2006. 2008.4.1. 허은실 글, 홍기한 그림 《출렁출렁 기쁨과 슬픔》 아이세움, 2007. 2008.4.10. 강무홍 글, 박윤희 그림 《우당탕 꾸러기 삼남매》 시공주니어, 2007. 2008.5. 김리리 글, 한지예 그림 《나는 꿈이 너무 많.. 2019. 9. 19.
로버트 롤런드 스미스 《이토록 철학적인 순간》 로버트 롤런드 스미스 《이토록 철학적인 순간》 DRIVING WITH PLATO 남경태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014 1 태어남, 걸음마와 옹알이, 학교, 자전거, 시험, 첫 키스, 순결의 상실, 운전면허, 첫 투표, 취직, 사랑, 결혼, 출산, 이사, 중년의 위기, 이혼, 은퇴, 늙어감, 죽음, 내세. '삶의 이정표'가 스무 가지로 제시되었습니다. 중요한 순간일 수도 있고, 피할 수 없는 관문일 수도 있습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이보다 중요한 것도 있었고 더 혹독한 이정표도 있었습니다. 밝히기가 난처하거나 부끄러운 것도 있고 자랑스러운 것, 잊지 못할 것들도 있습니다. 그런 줄이나 알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 스무 가지로도 이야기는 충분합니다. 2 '태어남' '걸음마와 옹알이' '학교' '자전거' .. 2019. 9. 13.
책 냄새 1 나는 책 냄새가 좋다. 책갈피에서 피어오르는 냄새가 나는 좋다. 그 냄새 속에는 책이라고는 교과서밖에 없었던 초등학교 때의 내가 들어 있다. 내 책을 내고 싶었던 내가 스며 있다. 나를 두고 가버린 사람들은 갈 때는 뿔뿔이 사라져 놓고 지금은 서로 통성명도 하지 않은 채 거기에 모여 있다. "내 생명의 빛, 내 가슴의 불꽃. 나의 죄악, 나의 영혼. 롤리타", 내가 사랑한 소녀도 들어 있다. 소녀는 한결같다. 혼자 있을 때 나는 마음 놓고 책 냄새를 맡는다. 다른 사람이 나와 같은 공간에서 쓸데없는 일로 서성거리고 있으면 나는 졸음을 쫓을 때처럼 혹은 졸음을 이기지 못해서 그러는 것처럼 책갈피 속에 얼굴을 묻고 눈을 감는다. 책 냄새를 맡는다. 2 나는 책 냄새가 '너무나' 좋다. 잉크 냄새겠지만, .. 2019. 9. 10.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라이너 마리아 릴케 Rainer Maria Rilke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김재혁 옮김 / 문학과의식 / 2001 (…) 파리에는 사물들을 몸서리치게 만드는 시끌벅적한 소음이 판을 치기 때문에 모든 것이 본래의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다가 결국은 희미하게 꺼져버리거든요. 이곳, 제 앞에 펼쳐진 무한한 땅 그리고 그 위로 불어오는 바다 바람 속에서 저는 나름대로의 깊은 생명력을 지니고 있는 당신의 그 질문들과 느낌들에 대해서는 이 세상의 그 누구도 답할 수 없음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훌륭한 사람들이라도 아주 은밀하거나 표현하기 힘든 것을 전달하려고 할 때면 제대로 말을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곳에서 제 눈에 다시 생기를 불어넣어주는 것들과 같은 사물들 쪽으로 당신이 접근하신다면.. 2019. 8. 28.
E L 제임스(소설)《심연 1 DARKER》 E L 제임스 《심연 1 DARKER》 Fifty Shades Darker as told by Christian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황소연 옮김, 시공사 2018 1 젊은 사업가 크리스천 그레이와 대학 졸업생 아나스타샤 스틸과의 5일간에 걸친 로맨스가 펼쳐집니다. "그렇지만 난 이기적인 남자야. 네가 사무실에 온 이후 줄곧 너를 원했어. 넌 정말 아름답고, 정직하고, 따뜻하고, 강인하고, 재치 있고, 묘하게 순수해. 늘어놓자면 끝도 없지. 넌 경이로워. 난 널 원해. 다른 사람이 너를 가진다는 생각만 해도 칼이 내 어두운 영혼을 휘젓는 것 같아."(58) 크리스찬 그레이는 그레이 엔터프라이즈 홀딩스의 CEO, 어느 정도인가 하면 시간당 수입이 10만 달러이고, 멋진 비행기와 배가 항시 대기 상태이고.. 2019. 8.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