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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by 답설재 2019. 8. 28.

라이너 마리아 릴케 Rainer Maria Rilke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김재혁 옮김 / 문학과의식 / 2001

 

 

 

 

 

 

 

(…) 파리에는 사물들을 몸서리치게 만드는 시끌벅적한 소음이 판을 치기 때문에 모든 것이 본래의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다가 결국은 희미하게 꺼져버리거든요. 이곳, 제 앞에 펼쳐진 무한한 땅 그리고 그 위로 불어오는 바다 바람 속에서 저는 나름대로의 깊은 생명력을 지니고 있는 당신의 그 질문들과 느낌들에 대해서는 이 세상의 그 누구도 답할 수 없음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훌륭한 사람들이라도 아주 은밀하거나 표현하기 힘든 것을 전달하려고 할 때면 제대로 말을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곳에서 제 눈에 다시 생기를 불어넣어주는 것들과 같은 사물들 쪽으로 당신이 접근하신다면, 언젠가 당신의 의문들에 대한 해답을 얻으시리라 저는 믿습니다. 당신이 자연에 다가가신다면, 그러니까 자연 속의 소박한 것, 거의 눈에 띄지 않는 작은 것, 느닷없이 커져 측정할 수 없는 것 쪽으로 다가가신다면, 당신이 보잘것없는 것들에 대한 사랑을 가슴에 품고서, 주인을 모시는 하인처럼 아주 겸손한 태도로 빈약해 보이는 것들의 신뢰를 얻으려고 노력하신다면, 모든 것이 당신에게 보다 쉽고, 보다 당신과 한 몸이 되고 그리고 더욱 친근한 관계가 될 것입니다. 물론 그것은 오성 속에서가 아니라 ― 오성이야 놀라서 입이나 헤벌리고 그냥 제자리에 남아 있겠죠 ―, 당신의 깊디깊은 의식과 각성 그리고 인식 속에서 가능한 일입니다. 당신은 참으로 젊습니다. 당신은 모든 시작을 앞에 두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한 당신께 이런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당신의 가슴속에 풀리지 않은 채로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 인내심을 갖고 대하라는 것과 그 문제들 자체를 굳게 닫힌 방이나 지극히 낯선 말로 쓰인 책처럼 사랑하라고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당장 해답을 구하려 들지 마십시오. 아무리 노력해도 당신은 그 해답을 구하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아직 그 해답을 직접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직접 몸으로 살아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제부터 당신의 궁금한 문제들을 직접 몸으로 살아보십시오. 그러면 먼 어느 날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해답 속에 들어와 살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아니면 당신은 당신의 가슴속에 생을 특별히 행복하고 순수하게 짓고 만들어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쪽을 행해 매진하십시오. 그 길을 가다가 마주치는 모든 것들을 커다란 신뢰로 맞아들이십시오. 그것들이 당신의 의지에서 나올 때, 즉 당신의 내면적 어떤 욕구에서 나올 때에는 그것들을 미워하지 말고 그냥 받아들이십시오. 성(性)이란 어려운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짐 지워진 모든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진지한 것은 거의 모두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은 진지합니다. 당신이 이 사실을 인식하고 당신 자신을 통해, 즉 당신 자신의 성격과 방식을 통해, 당신 자신의 경험과 어린 시절과 힘을 통해 성에 대한 완전히 고유한 (관습과 도덕에 물들지 않은) 관계를 획득한다면, 당신은 더 이상 길을 잃지 않을까, 당신이 지닌 가장 훌륭한 재산인 성에 대해 스스로 자격이 없는 것은 아닐까 하고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육체적인 쾌감은 감각적인 체험으로서, 이것은 순수한 직관 혹은 우리의 혀를 가득 채워주는 달콤한 과일의 순수한 느낌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부여된 크고 무한한 경험이며, 세계에 대한 인식이며, 이러한 모든 인식의 충만이자 광휘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러한 경험을 받아들이는 것이 나쁜 게 아닙니다. 오히려 나쁜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러한 경험을 오용하고 낭비하고 자신들의 성의 따분한 곳을 긁어줄 자극 정도로나 생각하고 최고도의 절정을 위한 집중이 아닌 기분풀이 정도로 생각하는 데 있습니다. 인간들은 먹는 일까지도 다른 쪽으로 변질시켜버렸습니다. 한편으로는 궁핍이, 다른 한편으로는 풍요가 이 먹는 욕구의 해맑은 속성을 탁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생에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다른 깊고 소박한 모든 욕구들도 마찬가지로 탁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개인은 그것들을 스스로를 위해 맑게 만들 수 있으며 그러한 욕구들을 맑게 살 수 있습니다(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물론 남에게 의존심이 강한 개인이 아니라 고독한 사람입니다). 고독한 사람은 동물들과 식물들의 모든 아름다움이 사랑과 동경의 고요하고도 지속적인 형태라는 사실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는 식물들을 마주할 때와 마찬가지로 동물들이 참을성 있게 기다리며 기꺼이 두 몸을 합쳐 번식하고 성장해 가는 것을 봅니다. 동물들은 육체적 쾌락이나 육체적 고통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쾌감이나 고통보다도 훨씬 크고, 의지나 반항심보다도 훨씬 힘찬 그들의 필연적 욕구에 따르는 것일 뿐입니다. 아, 우리가 이 세상의 가장 작은 사물들에까지 속속들이 깃들여 있는 이 같은 비밀을 좀 더 겸허하게 받아들여 그것을 좀 더 진지하게 가슴에 품고 견디며, 그것을 쉽게 생각하지 말고, 실로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몸으로 직접 느껴본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 (54~60)

 

 

 

 

 

 

 

(…) 당신에게 글을 쓰도록 명하는 그 근거를 캐보십시오. 그 근거가 당신의 심장의 가장 깊은 곳까지 뿌리를 드리우고 있는지 확인해보십시오. 글을 쓸 수 없게 되면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이것을 무엇보다 당신이 맞이하는 밤의 가장 조용한 시간에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 (20)

 

다시 읽으며 밑줄 친 부분을 눈여겨보았습니다.

내가 왜 이런 문장을 찾아 밑줄을 그었나 생각하며 읽었습니다.

나는 그때 주로 글을 쓰는 것에 대한 내용을 찾고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다른 눈으로 읽고 있었습니다. 밑줄도 긋지 않았습니다.

'릴케는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일까?'

 

문득 다음에 한 번 더 읽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고, 한 번 더 읽을 수도 있겠지, 희망을 가졌습니다.

그때 나는 무엇을 찾으며, 어떤 생각을 하며 읽고 있을지 생각만 해도 그리워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