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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에릭 홀테가 이혼한 이유

by 답설재 2019. 8. 7.

 

 

 

 

 

    1

 

에릭 홀테는 골키퍼입니다. 임승훈의 단편소설 「골키퍼 에릭 홀테의 고양이가 죽은 다음날」의 그 에릭 홀테니까요. 소설집 『지구에서의 내 삶은 형편없었다』에 있는 얘기입니다.

에릭 홀테가 이혼한 이유는 다음 부분에 나와 있습니다. 이혼에 대해 생각해보는 사람이나 아니거나 이 부분을 면밀히 읽어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135~136)

 

육 년 후 맨체스타의 중하위권 팀에 입단하면서 홑테는 영국으로 가게 됐다. 그곳에서의 삶은 만족스러웠다. 친구도 생겼고 농담도 배웠다. 그의 미소는 여전히 딱딱했지만 그런 그의 웃음을 좋아하는 여자도 생겼다. 여자의 이름은 린스트라였다. 그들은 동거를 생략한 채 석 달 후 결혼을 했다. 결혼식장에 고양이 고다와 나란히 앉은 할머니는 날카로운 유머와 잔소리를 번갈아서 했다. 고다는 내내 홀테의 뒤를 쫓아다니다 피로연장에서 홀테의 무릎 위에 누워 길게 하품을 했다. 홀테는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린스트라는 말이 없고 현명한 네덜란드 남자를 사랑했다. 하지만 홀테는 과묵한 게 아니라 침울했고, 현명한 게 아니라 까다로웠다. 그는 할머니가 만든 청결의 세계, 모든 것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세계에서 길러졌다. 그는 그 세계의 법칙에서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했다. 홀테는 말을 할 때도 정확한 어순으로 말하는 것을 좋아했다. 특히 부사와 형용사를 섬세하게 사용했다. 그는 누군가가 두루뭉술하게 말하면 곧바로 그 부분을 지적하거나 때때로 신경질적으로 반응하기도 했다. 홀테는 며칠씩 몇 마디 말을 하지 않을 때도 있었으며, 집에 있을 때도 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다.

반면 린스트라는 전형적인 축구선수 아내의 삶을 원하지 않았다. 그녀는 비록 목적어를 자주 생략한 채 말했고, 형용사와 부사는 과장됐으며, 동사의 시제를 헷갈렸지만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분명하게 알았다. 그녀는 행복, 그것도 따뜻한 행복을 바랐다. 그 행복한 세계에서는 한낮에 집안에서 쿵쿵거리며 걷는다고 타박을 받거나, 올바르지 않은 시제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신경질적인 지적을 받지 말아야 했다.

 

 

    2

 

나는 이 부분을 한 번 더 읽었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이혼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그런 결정을 내리는지 이 글에서 찾아내려고 했습니다.


* 홀테는 과묵한 게 아니라 침울했고, 현명한 게 아니라 까다로웠다.* 그는

할머니가 만든 청결의 세계, 모든 것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세계에서 길러졌다. 그는 그 세계의 법칙에서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했다.

* 홀테는 말을 할 때도 정확한 어순으로 말하는 것을 좋아했다. 특히 부사와 형용사를 섬세하게 사용했다. 그는 누군가가 두루뭉술하게 말하면 곧바로 그 부분을 지적하거나 때때로 신경질적으로 반응하기도 했다.

* 홀테는 며칠씩 몇 마디 말을 하지 않을 때도 있었으며, 집에 있을 때도 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다.

* 린스트라는 전형적인 축구선수 아내의 삶을 원하지 않았다.

* 그녀는 비록 목적어를 자주 생략한 채 말했고, 형용사와 부사는 과장됐으며, 동사의 시제를 헷갈렸지만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분명하게 알았다.

 - 그녀는 행복, 그것도 따뜻한 행복을 바랐다.

 - 그 행복한 세계에서는 한낮에 집안에서 쿵쿵거리며 걷는다고 타박을 받거나, 올바르지 않은 시제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신경질적인 지적을 받지 말아야 했다.

 

 

    3

 

이렇게 하나하나 따지며 읽은 다음, 이번에는 그의 이혼에 대해 내가 뭐라고 중얼거리는 것이 적당할지 생각해보았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참을성이 좀 부족한 편이었군.'

 

'가만있어봐 봐. 얘들 이혼 사유가 분명한가?'

 

'에이, 이까짓 걸 가지고 이혼하면 나 같으면 하루에 서너 번씩은 하겠네.'

 

'그래! 충분히 이혼할 만하군. 한두 가지라야지, 원…….'

 

'이런 상태로 단 하룬들 견딜 수가 있었을까? 진즉 헤어졌어야지.'

 

'겉으로는 이렇지만 그의 내면세계는 더 복잡했겠지?'……

 

 

    4

 

그렇긴 하지만 에릭 홀데는 멋진 사내였고, 더구나 운도 좋았습니다.(145)

 

홀테는 다음 해에 사망했다. 그는 술에 취해 운전하다 교회를 들이박았다. 홀테는 탄환처럼 앞유리를 뚫고 나가 십자가 옆에 처박혔다. 그는 할머니 옆에 묻혔다. 린스트라는 매년 두 번, 홀테와 그의 할머니와 할머니라 불렸던 고양이의 무덤을 찾아가 이탈리아산 화이트와인을 마셨는데, 그것이야말로 홀테가 가장 바라던 삶이었다.

 

홀데는 이혼을 해도 린스트라가 자신의 무덤을 찾을 줄 번히 알았거나 헤어진다 하더라도 린스트라와 원수처럼 혹은 데면데면하게 지내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을 것 같았습니다.

그렇다면야 뭐 이혼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을 것입니다. 죽어도 자신의 무덤을 찾아올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을 것 같다면 정말 무슨 결정을 내리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건 누구라도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