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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목로주점』의 슬픈 그림 구경

by 답설재 2019. 7. 30.

"안티오페"(윈도우 라이브 사진 갤러리)  

 

 

 

 

소설 『목로주점 1』1에서 가련한 제르베즈와 빈털터리 청년 쿠포의, 누가 봐도 무성의하다고 할 결혼식이 시청과 교회에서 이루어진 다음 두 사람의 신혼부부와 하객 열 명은 도중에 소나기를 홈빡 맞고 나서 루브르 박물관으로 들어갑니다.

저녁 시간이 될 때까지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여러 사람의 제안 끝에 우스꽝스러운 연미복을 차려입은 마디니에의 제안에 따라 결정된 프로그램이 바로 루브르 박물관 구경이었습니다.

다음은 마디니에가 아주 잘난 척하며 일행을 인솔하고 있고, 아무래도 무지하고 무성의한 하객들은 짓궂은 관람을 하는 장면입니다.

 

"저기가 샤를 9세가 민중을 향해 총을 발포한 발코니입니다."

그러면서 행렬의 끄트머리를 살피더니 손짓으로 살롱 카페 한가운데서 멈춰 서라고 지시했다. 그는 마치 교회에 와 있는 것처럼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곳에는 걸작들만 모여 있다고 설명했다. 일행은 살롱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제르베즈는 〈가나의 혼인 잔치〉가 무엇에 관한 그림인지를 물어보았다. 액자에 그림의 주제를 적어놓지 않은 게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모나리자〉 앞에 멈춰 선 쿠포는 그림 속 여인이 그의 숙모 중 한 사람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보슈와 비비라그리아드는 벌거벗은 여인들의 모습을 흘끗거리면서 히죽댔다. 그중에서도 그들의 눈길을 가장 끈 것은 안티오페의 허벅지였다. 행렬의 맨 끝에 있던 고드롱 부부는 스페인 화가 무리요의 〈성모마리아〉 앞에 이르자 무지와 감동이 동시에 드러나는 눈빛으로 한동안 그림 앞에 머물러 있었다. 남편은 입을 헤벌리고, 아내는 배에 손을 올려놓은 채.(127)

 

이어지는 관람 이야기에서 또 한 장면을 옮깁니다.

 

마디니에 씨는 효과를 배가시키기 위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곧바로 루벤스의 〈케르메스〉를 향해 갔다. 그 앞에서도 그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음탕함이 묻어나는 짓궂은 눈짓으로 그림을 가리켰다. 그러자 가까이 가서 그림을 들여다본 여자들이 조그만 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얼굴이 벌개진 채 돌어선 남정네들은 여인네들을 붙잡고 농담을 하면서 그림 속의 외설스러운 요소를 열거하기 시작했다.

"어디 한번 볼까!" 보슈가 떠벌리기 시작했다. "이건 돈 좀 되겠는걸. 여기 구토를 하는 친구가 하나 있군. 저기 저 남자는 민들레에 물을 주고 있고2, 그리고 저기, 오! 저 사내는…… 이거 아주 재밌는 그림일세!"

"이제 그만 다른 곳으로 가죠." 마디니에 씨는 사람들이 자기가 원했던 반응을 보이자3 우쭐해하면서 말했다. "여긴 더 이상 볼 게 없습니다."(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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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학동네, 2011.
2. 소변을 본다는 뜻?
3. 얼굴이 벌개진 남정네들이 여인네들을 붙잡고 농담을 하면서 그림 속의 외설스러운 요소를 열거하는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