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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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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화(단편소설) 〈메모리 익스체인지memory exchange〉

by 답설재 2019. 7. 23.







DAUM 검색창(2019.7.20. 19:00)에 '화성'을 넣어 나온 이미지(부분)






최정화(단편소설) 〈메모리 익스체인지memory exchange

현대문학 2019년 6월호1






    1


  베러지아니, 구니파우다.

  '돈이 덜 드는 만큼 힘을 못 쓴다'는 뜻의 화성어로 지구인에 대한 표현이다. 화성이 지구인들에게 입국을 허가해준 것은 지구인들만큼 싼값에 노동을 제공하는 종족이 드물기 때문이다. 지구인들은 일도 못하고 머리도 나쁘고 성질이 더러운 종족이지만 이윤을 위해서 그 정도는 감수한다는 것이 이곳에서의 일반적 견해다.


  화성의 출입국 기지에 도착된 순간부터 우리는 혼란에 휩싸였다. 화성은 지구인들에게 전혀 친절하지 않았다. 친절은커녕 같은 생명체로서의 최소한의 존중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들은 우리가 옆에 서 있거나 지나가는 것조차 거슬려했다. 단지 곁을 지나갔다는 이유만으로, 욕설이나 폭행을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그들의 눈에는 우리가 같은 생명체로도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기지에서 내려 고작 100미터 남짓한 거리를 걸어 로비를 통과하면서 우리들은 화성으로 이주하기로 한 것이 큰 실수라는 걸 깨달았다.


  이 소설의 첫머리입니다.2

  다음은 '지구를 떠난 이유'에 대한 부분입니다.3 이미 상식적인 내용이지만 그게 오히려 자극적으로 느껴집니다.


  만일 태양이 지구를 끌어당겼거나, 급작스럽게 나타난 별이 지구의 괘도를 바꿔놓지 않았더라도 우리는 떠나왔을 것이다. 지구는 이미 생명체가 살기에 적합한 곳이 아니기는 했다. 집집마다 외벽에 오염물질 차단제를 발라야 했고, 특수 제작된 공기정화장치가 장착된 헬멧을 쓰지 않으면 외출조차 할 수 없었으니까. 헬멧을 구입할 만한 경제적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로드킬을 당한 야생동물처럼 거리 곳곳에 쓰러진 풍경은 이제 더 이상 놀랍지 않았다. 그냥 고개를 돌리고 잠시 숨을 멈추고 계속 걸아가면 된다. 그러다가 시체가 나오면 다시 고개를 돌린다.

  사람들은 돈이 될 만한 것들은 모조리 팔아 티켓을 구입했다. 기회만 된다면 망설일 것 없이 지구를 떠났다. 타행성의 거대기업에서 지구의 노동력을 쉽게 사들이기 위해 비행선을 보냈고, 우리들은 티켓만 구입할 수 있다면 도착할 곳이 어딘지 알아보지도 않고 탑승했다. 그게 유일한 생존 방법이었으니까.

  우리들은 푸른 하늘의 붉은 석양을 그렇게 떠나왔다.



    2


  화성에 도착한 지구인들은 어떻게 사나, 소설의 소재가 되는 얘기 한 도막입니다.4


  화성에서는 그 일을 '메모리 익스체인지'라고 불렀다.


  우리 가족들처럼 갈 곳이 없어져버린 이민자들에게 경제 사정이 어려운 화성의 파산자들이 아이디얼 카드를 팔았다. 아이디얼 메모리를 판매한 이들은 자신의 정보를 완전히 넘기고 기억을 말소시켰다. 그 일은 '제로화'라고 불렸다. 제로화된 화성인들은 특수 구역에 격리되어 살고 있고 일반 구역 사람들과는 단절되어 있었다. 나는 제로화 구역에 한 번도 간 일이 없었지만 기억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유령과 같이 움직이는 사람들을 떠올려보았다. 나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실제로 그들이 어떻게 느끼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지만, 그래서 내 상상이 완전히 그릇된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 삶은 분명히 잘못되어 보였다.

  기억을 판다니!

  그런 거래가 공공연히, 이렇게 공식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니 정말 무서운 일이었다.

  밤이 되면 어른들은 따로 모여 회의를 했다. 출입국 쪽 직원들 몇몇과 공동으로 열리는 모임이라고 했다. 회의가 끝난 뒤에는 식량을 얻어다 주기도 했다.



    3


  우리의 미래가 얼마든지 끔찍할 수 있다는 걸 이야기합니다.

  '나'는 기억을 팔지 않고,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장면이 이어집니다.5


  누군가 내게 들려줬던 말이다.//사람들이 네게 어떻게 대하든 간에, 넌 자유롭고 존중받아야 할 인간이야.//

  나는 이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른다. 자유가 뭔지, 존중이 뭔지 모르지만, 내가 이곳을 벗어나 그것을 되찾아야 한다는 것을 안다. 나는 기필코 그곳으로 돌아갈 것이다. 돌아가서 내가 누려야 할 그것을, 자유와 존중을 되찾을 것이다.



  우리 노년 세대에겐 해당되지도 않고, 전체적으로도 좀 이른 걱정일지 모르지만 이런 소설이 등장한 것은 다행일 것입니다.

  화성에서의 생활은 너무나 쓸쓸하고 삭막합니다.6


  간혹 스쳐 지나가는 바람처럼 지구에서의 기억이 떠오를 때면 하늘 높이 멀어져 가는 애드벌룬을 바라보는 기분이 든다. 잡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이런 시절의 나는 여성이었는데 지금 이곳에서 나는 남성이다. 기억 속에서 나는 지구인이었는데 현실의 나는 화성인이다. 회색 벽과 흰 테이블과 검은 의자, 인조 마당에 펼쳐진 가짜 모래와 자갈, 가짜 식물들에 둘러싸여 있지만 내가 생생히 기억하는 것은 지구의 하늘과 땅과 바다. 푸르고, 환하고, 찬란하게 빛을 내며 숨 쉬고 있던.



    4


  「저커버그 VS 머스크 'AI' 설전」이라는 기사에서 페이스북 CEO 저커버그는 "AI 종말론 부추기는 사람은 상당히 무책임하다"고 했고, 전기자동차 제조업체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는 "AI는 인간 문명에 대한 근본적 위협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저크버그는 "5~10년 내에 인공지능이 삶의 질을 많이 향상시킬 것" "로봇·음성 비서 만들겠다"고 해서 기분이 좋았는데, 그 말에 이어 바로 머스크가 마이크를 잡더니 "AI가 인간세계를 장악할 위험성에 대비해 화성 이주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고 했습니다.



  "미세먼지 나쁨" "미세먼지 매우 나쁨"인 날에는 당장 마음이 착잡해집니다. '나는 곧 떠날 테니까 이러나저러나 그만이지만 저것들이 어떻게 하지?' 실없는 걱정에 휩싸이기도 합니다.

  화성이고 지구고 그 문제는 차치하고 난민을 받아들이는 곳, 받아들이지 않는 곳의 문제도 이럴 땐 더욱 착잡하게 다가옵니다.

  내가 나서서 제발 좀 다정하게 지내라고 부르짖는다고 누가 듣기나 할까요? 마침내 정신착란 상태에 이르렀다며 딱한 표정으로 바라보겠지요? 그렇지만 어느 날 지구인들은 뿔뿔이 흩어질 수 있고, 그런 날은 참 쓸쓸하겠구나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