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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에밀 졸라 《목로주점 1》

by 답설재 2019. 7. 17.

에밀 졸라 《목로주점 1》

박명숙 옮김, 문학동네 2018

 

 

 

 

 

 

 

 

 

    1

 

세탁부 제르베즈는 괴물 같은 모자 제조업자(말로만) 랑티에와 동거하면서 겨우 열네 살 때 클로드를 낳고 열여덟 살 때 에티엔을 낳았습니다.

그녀는 성장기에도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 마카르는 걸핏하면 발길질을 해댔습니다.

 

그녀는 "아름답고 용기 있는 여성"이었고 언젠가 그녀가 어려움에 처한다면 그녀는 자신을 믿어도 좋을 여자였습니다. 정부 랑티에는 그런 제르베즈의 속옷까지 전당포에 잡혀놓고 창녀 아델의 품으로 달려갑니다.

 

 

    2

 

그녀에게 함석공 쿠포가 접근합니다. 말쑥한 외모에 새하얀 이를 드러내고 활짝 웃는 모습이 매력적인 남자였습니다. 낙천적인 성격의 그는 미래를 걱정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그 쿠포가 제르베즈의 옅은 장밋빛 입술에 푹 빠진 것입니다.

 

"정말로 진지하게 생각하고 하는 얘기는 아니겠지요, 설마. 난 이미 팍 삭은 여자라고요. 게다가 내게는 여덟 살짜리 아들이 있다는 걸 잘 알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뭘 할 수 있겠어요?"

"물론! 남들이 하는 것과 똑같은 것을 하죠!" 쿠포는 눈을 끔뻑이면서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제르베즈는 짜증스럽다는 몸짓으로 쏘아붙였다.

"아! 그쪽은 아직도 그런 게 재밌을 거라고 생각해요? 아직 결혼생활을 해보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요……. 아뇨, 쿠포씨, 난 할일이 많은 몸이에요. 시시덕거리면서 시간 때우는 짓 같은 건 아무짝에도 소용없다고요. 아시겠어요! 난 집에 나만 기다리는 아이가 둘이나 있어요. 아이 둘이 얼마나 큰 입인지 아세요! 그런데 남자랑 신선놀음이나 하면서 어떻게 아이들을 먹여 살리겠어요!…… 그리고 분명히 말하지만, 난 이번 일로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고 생각해요. 이제 남자라면 아주 지긋지긋하다고요. 이젠 누구하고도 사랑 같은 건 하고 싶지 않단 말이에요."(62)

 

 

    3

 

그렇지만 쿠포도 진지합니다.

 

"당신 때문에 정말 미치겠어요. 당신은 날 미치게 만든다고요……."(63)

 

남녀가 합쳐지려면 흔히 그런 식으로 말이 많은 편이지만 둘 사이에 온갖 이야기가 오고 간 끝에 마침내 제르베즈는 이렇게 말합니다.

 

"난 말이죠. 욕심이 많은 여자가 아니랍니다. 별로 바라는 게 없어요……. 내 꿈은 별 탈 없이 일하면서 언제나 배불리 빵을 먹고, 지친 몸을 누일 깨끗한 방 한 칸을 갖는 게 전부랍니다. 침대, 식탁 그리고 의자 두 개, 그거면 충분해요……. 내 아이들을 제대로 키울 수만 있다면, 그래서 좋은 시민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말이죠……. 또 하나 더 바라는 게 있다면, 그건 맞지 않고 사는 거예요. 내가 만약 다시 결혼을 한다면 말이죠. 그래요, 다시는 맞으면서 살고 싶지 않아요……. 그게 다예요. 정말 그게 다라고요…….(71~72)

 

 

    4

 

'아름답고 용기 있는 여성'인 제르베즈가 쿠포 같은 녀석과 재혼하지 말고 지냈으면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러면 이야기가 되지 않겠지요.

그들은 곧장 결혼했고, 잠시 행복했지만 작업을 하다가 지붕 위에서 추락한 쿠포가 제르베즈의 극진한 간호로 몸이 복구되었는데도 타락의 길을 걷게 되고, 게다가 자신을 사랑하는 구제로부터 큰돈을 빌려 세탁소를 차린 제르베즈는 돈을 더 빌려서 엄청난 규모로 자신의 생일잔치를 벌입니다.

 

 그게 『목로주점 1』이었습니다.

 

특이 사항이 있다면 그나마 제르베즈를 '정말로' 사랑하는 또 하나의 멋진 남자 구제가 나타난 것인데, 이런 여성에게는 남자들은 언제나 나타나기 마련이지만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 따위는 제르베즈 같은 여성이 평범하고 행복한 생애를 보내도록 이야기를 바로잡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들고 온 화분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어색한 표정을 짓고 서 있었다. 제르베즈가 그의 두 손을 잡자 그는 그녀의 볼에 키스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말을 더듬었다. 그러자 제르베즈가 발뒤꿈치를 들어 그의 입술에 뺨을 들이밀었다. 몹시 당황한 그는 제르베즈의 눈에 거칠게 입을 맞추다 하마터면 그녀의 눈에 상처를 낼 뻔했다. 두 사람은 동시에 몸을 떨었다.

"오! 구제 씨, 정말 아름다워요!"(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