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김영하 《여행의 이유》

by 답설재 2019. 8. 2.

김영하 산문 《여행의 이유》

문학동네 2019

 

 

 

 

 

 

 

 

 

1

 

상하이 푸등 공항에서 비자가 없어 '추방' 당해 돌아온 일로 '여행'을 정의합니다.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한참의 세월이 지나 오래전에 겪은 멀미의 기억과 파장을 떠올리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는 것."(51)

 

 

2

 

이야기들이 작가의 경험을 통해 펼쳐집니다.

 

* 여행의 필요성을 느끼는 것은 "행복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슬픔을 몽땅 흡수한 것처럼 보이는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 위해서"(데이비드 실즈)라는 이야기.

 

* 생각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은 방랑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이야기.

 

* 인터넷 시대가 되면 수요가 줄어들 거라던 여행은 오히려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는 이야기.

 

* 『읽지 않은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법』의 작가 피에르 바야르의 『여행하지 않은 곳에 대해 말하는 법』이라는 책에 대한 이야기. 「알쓸신잡」(TV 프로그램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에서 보듯 "우리의 여행 경험도 타자의 시각과 언어를 통해 좀 더 명료해진다는 이야기.

 

* 신뢰를 보내는 여행자에게 인류는 환대로 응답하는 문화를 발전시켜왔다는 이야기.

 

* 오디세우스는 자기를 낮추고 노바디가 되었을 때 위험을 피하고 온전히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처럼 여행자들은 때로는 현지인 사이에 숨으려 하고, 때로는 확연히 구별되고자 한다는 이야기.

 

 

3

 

'마사이족으로 산다는 것은 삶이 항구적인 여행 상태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랍니다. 그것을 이야기하는 작가의 경험 중 두 가지가 놀랍고 부러웠습니다.

 

뉴욕 생활을 마치고 우리는 서울이 아닌 부산으로 돌아왔다. 어차피 새로 살 집을 구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였고, 묶여 있는 일터도 없던 터라 굳이 서울에 있어야 할 이유도 없었다. 부산은 서울보다 훨씬 따뜻했고 (…) 휴양지에서 살다 보니 여행이 영원히 끝나지 않는 기분이었다.(192~193)

 

나는 초등학교를 전남 광주에서 들어갔다. 2학년이 되자 경남 진해로 옮겼다. 3학년 때는 양평으로 전학했다가 4학년에는 파주 광탄면, 5학년에는 파주 문산읍에서 학교를 다녔다. 6학년이 되어서는 서울로 옮겨왔다. 육 년 동안 도합 여섯 번의 전학을 했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도 강원도 화천이나 대구 등으로 아버지의 임지를 따라 옮겨 다녔다. (…) 나의 유년기는 마치 긴 방랑처럼 기억된다.(193~194)

 

작가가 대학을 졸업하고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가서 아침에 산 바게트 빵 하나로 세 끼를 때워야 할 정도로 여유가 없었지만 비로소 진짜 여행이 가져다주는 행복감과 자유로움을 알게 되었다고 한 것은 어릴 때의 그 경험 때문에 더욱 선명한 깨달음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뉴욕에서 돌아왔을 때 큰 망설임 없이 부산에 자리 잡은 것도 정착에 대한 그 특별한 경험 없이는 그리 만만하게 결단을 내릴 수 없었을 것으로 보였습니다.

 

 

4

 

이 작가의 『살인자의 기억법』(소설)을 노벨문학상 수상 작품 같다고 했을 때 나는 거의 정신없는 소개라는 비판을 들었습니다.

 

작가는 전문가(소설가)답게, 소설이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우리가 더욱 몰입하게 하듯 여행도 우리를 집중시킨다는 것, 여행도 분명한 시작과 끝이 있다는 점에서는 소설과 닮았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작가의 갖가지 여행 경험이 소설처럼 재미있게 전개되지만, 소설에서처럼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 무엇을 남겨두지는 않고 언제나 왜 그 이야기를 했는지 분명하게 설명해 줍니다.

이야기할 것도 아니긴 하지만 이 산문은 소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